등록 : 2017.11.08 21:36
수정 : 2017.11.09 09:59
이기적인 여행
목포에 공동체 꾸린 섬 여행가 강제윤
이훈동정원 등 근대건축물 여행 추천
조선내화 공장, 다순구미 마을 가볼만
인연이란 늘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사람과의 인연이 그렇듯이 공간과의 인연 또한 그렇다. 어디서 날아온 줄도 모르는 풀씨가 땅에 깃들듯이, 자각할 틈도 없이 그가 내 안에 깃들듯이 나는 문득 목포에 깃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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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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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동안 장기여행자로 살던 통영을 떠나 목포로 여행 온 지 8개월째다. 기약 없이 목포 선창가 여관에 머물고 있던 어느 날 자주 가는 식당 문이 잠깐 닫혔기에 유달산 아래 또 다른 단골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숙소의 슬리퍼를 끌고 걷다가 우연히 낡은 여관 건물에 매매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것을 발견했고 나는 그대로 그 낡은 여관에 깃들어버렸다.
지금 그 낡은 여관에는 나와 청년 6명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다. 서울 등지에서 찾아와 함께 목포에 장기여행자로 살기 시작한 디지털 노마드들. 그저 목포 원도심이 너무도 좋아서 자발적으로 이주해 온 청년들이 쇠락해가는 목포 원도심을 어떻게 되살릴까 고민하며 날을 새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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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조선내화 공장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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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의 원도심은 그토록 큰 마력이 있다. 낡고 오래된 도심 그 자체만으로도 무작정 청년들을 빨아들인다. 목포 원도심에는 근대 건축유산들이 허다하다. 한집 건너 한집이 문화재급 건물이다. 많은 도시들이 재개발 과정에서 도시의 원형을 잃어버렸으나 목포는 외곽으로 팽창해 가느라 원도심을 방치해버렸다. 그로 인해 원도심은 쇠락했지만 또 그 덕에 도시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었다. 이 나라에 백년 된 도시의 원형이 살아 있는 곳이 목포 원도심 말고 또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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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앞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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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산을 병풍 삼아 서해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목포 원도심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근대문화유산이다. 날마다 목포 원도심 낡은 골목을 걷고 또 걸었다. 그러던 어느 날 통영 동피랑처럼 바다가 보이는 언덕 마을, 보리마당에 이르렀다. 옛날 유달산 봉수대를 지키던 병사들이 식량으로 쓸 보리를 말렸던 곳. 보리마당 정상부에서 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유달산 자락 아래 움푹 파인 골짜기에 다닥다닥 계단식으로 꽉 들어선 마을. 온금동, 다순구미였다. 다도해 섬에서 건너온 섬사람들이 산기슭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마을은 지붕만 바뀌었지 옛 모습 그대로였다. 보기에도 따뜻한 산동네. 거기에는 또 높은 굴뚝이 서 있는 오래된 조선내화 공장 건물도 있었다. 근대로 시간여행이라도 떠나 온 느낌이었다. 그런데 다순구미 마을과 공장건물이 철거되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라 했다. 와락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아파트가 들어서면 과연 마을 노인들은 쥐꼬리만한 보상금으로 어디 가서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까! 아파트가 들어서도 입주해 살 수 있는 가능성은 1%도 안 될 텐데. 대체 누구를 위한 개발일까 싶었다. 게다가 조선내화 공장은 근대산업문화유산으로 가치가 높다. 오래된 마을과 근대 공장 건물들이 그대로 사라져버릴 것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최근에 문화재청에서 공장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 문화재 지정 예고를 했다. 다순구미 마을은 여전히 불안하지만 조선내화 공장은 살아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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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내화 공장 건물의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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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이 된 조선내화 목포 공장은 지금은 가동을 멈췄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내화벽돌 제조 공장이었다. 산업유산으로서의 가치가 크다. 각종 내화 관련 설비와 건축물이 거의 원형을 잃지 않고 본래의 자리에 그대로 있다. 공장 창립 당시에 설치된 조적식 가마와 굴뚝은 구조와 형태가 무척 독특하다. 독일에서 수입해 국내 기술자가 설치한 터널식 가마 상부 지붕 구조와 공장 건물 지붕의 각종 트러스 구조도 특별하다. 또한 길이가 70m인 터널식 가마 2기와 ‘보이드 프레스’도 보존가치가 큰 산업 유물이란 것이 문화재청의 평가다. 그래서 공장 건물과 굴뚝, 가마 등이 근대산업유산으로 문화재 등록 예고 중이다.
산업혁명 시대를 다룬 영화에나 나올 법한 거대한 굴뚝과 옛 공장 건물들의 모습은 살아 있는 역사다.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옛 문화유산을 폐기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문화재청이 산업화 초기의 유산인 조선내화 공장을 문화재로 인정한 것은 더욱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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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건물인 동봉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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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목포는 무안 땅에 있던 작은 포구에 불과했다. 일본 나가사키와 중국 상하이의 중간에 위치한 목포는 그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일찍부터 제국주의 열강의 주목을 받았다. 1897년 10월1일 개항 후 목포에는 이주민들이 몰려들었고 일제강점기에는 호남지방의 미곡과 면화 등의 수탈 통로로 기능하면서 몸집을 키워나갔다. 1930~40년대에는 식민지 조선의 3대 무역항이자 전국 6대 도시로 성장했다. 하지만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되면서 내내 쇠락의 길을 걸었다.
목포 여행은 원도심에서 시작해 원도심에서 끝나도 무방하다. 목포 원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유달산은 목포의 상징이다. 내내 다도해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종주 트레킹은 참으로 황홀한 여정이다. 유달산 둘레길을 걸어보는 것도 더없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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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산 자락에서 바라본 목포 앞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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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순구미 뒷산 유달산 등산로에는 동네사람들이 ‘장사 바위’라 부르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여기에 암각이 있는데 ‘경상도우회 회장’이라 쓰여 있다. 목포 개항 초기 경상도에서 이주해 온 경상도 출신 목포 주민들이 이 부근에서 야유회를 한 뒤 새긴 암각이다. 이 비문이 의미 있는 것은 우리가 본디 동서로 나뉘어 지역감정 때문에 서로 미워하며 살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반도 안에서 늘 서로 섞이고 섞여서 살아왔다. 박정희 시대와 사악한 정치 모리배들이 조장한 지역감정의 맹목이 얼마나 어리석은 편견인가를 이 유적은 증명한다. 참으로 소중한 암각이다. 이 부근에서 내려다보는 다순구미와 조선내화 공장, 고하도 풍경도 장려하다.
목포 원도심에 또 하나 빼놓지 말아야 할 장소는 ‘이훈동 정원’이다. 1930년대 목포에 살던 일본인이 만든 정원이지만, 이후 조선내화 창립자였던 고 이훈동 회장이 매입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일본식 정원에 한국식이 추가된 6611㎡(2000여평)의 정원. 조선시대 석탑들과 113종의 수목이 배치된 빼어난 정원이다. 일제강점기 제국의 자본가가 식민지를 수탈해가며 얼마나 호사스럽게 살았던가를 엿볼 수 있다. 한때는 목포 신혼부부들의 결혼사진 촬영장으로 유명했고, <야인시대>나 <모래시계> 등의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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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동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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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근대문화역사관 1관 건물도 빼놓지 말아야 한다. 1900년 12월에 일본영사관으로 지어진 건물은 해방 뒤 목포시청과 시립도서관 등으로 사용되다 지금은 근대역사관이 됐다. 백년이 지난 건물이지만 그 견고함과 붉은 벽돌 건물의 우아함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건물 입구에는 위안부 소녀상이 세워져 있다. 저토록 아름다운 건물에 앉아 그토록 잔혹한 행위를 일삼았던 자들의 정신세계는 어떤 것일까. 저 건물은 불현듯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란 따위의 근거 없는 언설이 얼마나 허언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목포 여행 팁>
목포 원도심은 걸어서 여행해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유달산에도 꼭 올라볼 것을 권한다. 목포와 다도해의 진면목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이훈동 정원은 토요일엔 오후 2~4시만 개방한다. 성옥미술관도 빼놓지 마시길. 소치, 남농, 이응노 화백 등의 귀한 작품들이 상설 전시된다. 원도심에는 게스트하우스, 모텔 등 숙소가 충분하다. 진정한 목포 맛을 담은 식당도 많다. 선어회의 정수는 자유공간, 장어탕은 별미식당, 생선구이정식은 오거리식당, 송어(밴댕이)와 마른 생선국은 만선식당이, 낙지 요리는 압해도 도선장 횟집이 좋다. 청년들이 운영하는 목포의 여행사 ‘익스퍼루트’(http://emptypublic.com/)에서는 ‘목포 한달살이’ 참가자를 모집 중이다.
글·사진 강제윤/시인, ㈔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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