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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앞에 게양된 검찰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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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철의 법조외전(54)
“특수부 없는 검찰청은 총장 승인받아야 인지수사”
1월부터 시행 중인 대검 ‘부패수사 지침’에 문제제기
“법에 보장된 검사 수사권, 지침으로 제한하면 위법”
검찰 안팎에서 ‘필요하고 적절한 지적’ 공감 얻어
대검 “문제 없다”면서도 4월초 일부 표현 바꿀 듯
울산지검장 “대검 결론 지켜보고 판단하겠다”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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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앞에 게양된 검찰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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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침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그대로 시행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서면으로 (대검에) 올리고, (문무일) 총장님 뵙고도 말씀드렸습니다. ‘3월 말까지 시간을 달라, 전국 검사장의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해서 기다리는 중입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송인택(56·사법연수원 21기) 울산지검장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표현도 점잖고 완곡했다. 그러나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지 않겠다는 ‘결기’만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 지침은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을 바꾸지 않고는 (시행이) 곤란합니다.” 검찰 조직 문화에서 대검이 내린 지침에 문제가 많다며 문서로 이견을 내고, 검찰총장을 만나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연수원 21기이면 다음번 검사장 인사에서 고검장 승진을 바라봐야 할 기수이기도 하다.
울산지검은 최근 울산지방경찰청(청장 황운하)이 검사의 지휘를 무시하고 기소 의견으로 무리하게 송치한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사건 관련자들을 대거 불기소 처분했다. 그러면서 경찰 수사에 대해 “피의사실이 지속적으로 공표되는 등 수사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 수사권 남용의 논란을 야기했다”, “검사의 지적을 무시하고 신중하지 못한 기소 의견 송치로 수사기관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대체 ‘그 지침’이 무엇이기에 일선 지검장이 정색하고 문제를 제기하게 된 것일까. 논란의 대상이 된 지침은 문무일 검찰총장의 지시로 대검찰청이 만들어 올 1월4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부패범죄수사 전담부서가 없는 지방검찰청 또는 지청은 다음 각호 사건을 제외하고는 부패범죄 수사를 할 수 없다. (…) ⑤부패범죄 수사 전담부서가 없는 지방검찰청, 지청장이 해당 검찰청 또는 지청에서 수사함이 상당하다고 판단하여
검찰총장의 승인을 받은 사건. (대검찰청 제정 ‘부패범죄수사 절차 등에 관한 지침’)
풀어쓰면, 부패범죄수사 전담부서가 없는 검찰청이나 지청은 검찰총장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만 ‘예외적으로’ 부패범죄 수사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대검 관계자는 “솔직히 말하면 그 지침은 ‘특별수사부가 없는 곳은 원칙적으로 인지수사(검사가 고소·고발이 없는데도 범죄 단서를 직접 찾아서 조사하는 일)를 하지 마라’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 문제를 제기한 울산지검은 부패범죄수사 전담부서, 즉 특수부가 없다. 지난해 대검의 ‘부패수사 총량 줄이기’ 방침에 따라 창원지검과 함께 기존에 있던 특수부가 폐지됐다. 특수부가 있는 검찰청은 9곳에서 7곳으로 줄었다.
지침의 발단은 ‘검경 수사권 조정’이다. 검찰은 “너무 많은 수사를 직접 한다”는 비판에 대한 대응책으로 부패범죄 수사를 할 수 있는 검찰청을 대폭 줄였다. 청와대의 압박을 견디는 고육지책으로 ‘특수부 부분 폐지’ 카드를 뽑아 든 것이다. 2017년 8월 전국 41개 지청에 특별수사 전담 검사를 없앴다. 이어 지난해 7월에는 울산과 창원지검의 특수부를 폐지했다(창원은 경남도청 소재지다). 부패수사가 필요한 지검과 지청은 ”아예 부패수사를 못 하게 할 수는 없으니”(대검 관계자) 검찰총장과 관할 지검장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이를 명문화한 것이 ‘부패범죄수사 절차 등에 관한 지침’(아래 지침)이다.
문제는 이 지침이 무엇보다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의 관련 조항과 배치된다-또는 배치돼 보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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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소송법 제195조(검사의 수사) 검사는
범죄의 혐의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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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청법 제4조(검사의 직무) ①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다음 각호의
직무와 권한이 있다.
1.
범죄수사, 공소의 제기 및 그 유지에 필요한 사항
검사는 개개인이 ‘단독 관청’으로서,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수사를-할 수 있다가 아니라-”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것도 우리 형사법 체계의 기본법인 형사소송법에서다. 검찰청법도 “범죄수사”를 검사의 “직무와 권한”으로 정해 놓았다.
그러니 송 지검장의 문제 제기는, 법률에 정해져 있는 검사의 직무와 권한을 왜 검찰총장 지침으로 규제하려 드느냐, 지침으로 검사의 법적 권한을 제한하는 것이 정당하냐, 지침을 강행하려면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부터 고쳐놓고 하라는 소리다. 대검 지침이 갖는 법적 규정력은 형사소송법, 검찰청법 같은 법률은 물론 법무부령보다도 하위인 것이 사실이다. 법령 체계상 법률과 어긋나는 지침은 유효하지 않다.
검찰 일각에선 울산지검의 문제 제기가 구체적 사건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관내 어느 기관과 관련된 수사를 하려고 하는데, 그 기관과의 마찰을 우려한 대검이 지침을 근거로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다. 송인택 지검장과 대검은 공식적으로 “구체적인 사건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대검의 다른 관계자는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아무튼, 검찰 안엔 송 지검장의 문제 제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검이 말하는 승인은 ‘사전 승인’이다. 수사하기 전에 승인부터 먼저 받으라는 것이다. 자, 그럼 이건 어떤가. 과거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때 윤석열 특별수사팀장(현 서울중앙지검장)이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의 승인이 없는 상태에서 국정원 심리전단 요원들을 체포했었다. 이게 위법인가? 당연히 아니다. 왜냐. 형사소송법에 정해진 검사의 정당한 직무 권한을 행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대검이 말하는 승인은 결국 사전에 허가를 받으라는 것이니, 울산지검장의 항변이 맞다.” (검찰 간부 ㄱ)
수사 현실에 대한 걱정도 크다. 사전 승인을 받으라고 하면 검사들이 위축돼 인지수사 자체를 꺼리게 될 거라는 우려다. 그렇게 해서 사건의 총량을 줄이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는 물음도 깔려 있다.
“범죄 첩보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첩보다. 어느 정치인이 어느 업자의 돈을 받았다는 첩보가 있으면 확인과 검증이 필요하다. 그래서 관련자를 조사하게 되면 그 단계부터는 수사 개시나 마찬가지인데, 대검 지침은 그 전에 (수사에) 들어갈지 말지를 승인받으라는 것이다. ‘얘기’가 될지 어떨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검에 승인 요청을 한다? 승인받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어렵게 승인을 받았다 해도 수사 실패라는 경우의 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승인까지 받아서 수사했는데 결과가 안 좋으면 담당 검사는 얼마나 부담이 커지겠나. 결국 저렇게 하면 검사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검사가 수사를 주저하면 혜택은 지역 토호나 그들과 유착된 정치인들에게 돌아간다.” (검찰 간부 ㄴ)
당연히, 검찰총장의 참모 조직인 대검의 입장은 다르다. 지침이 “잘 시행되고 있다. (일선 검찰청의) 부정적 인식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직 ‘뭐가 문제다’라는 것은 드러나지 않았다. 두 달이 넘었는데, 승인 요청이 들어온 사건은 딱 1건 밖에 없다.” 올 1월 시행 이전에 두 차례나 전국 검찰청의 의견을 조회해서 들었고, 각 검찰청의 관련 간부들이 예상되는 문제점을 짚어 보는 화상회의까지 열었다고 했다. 그만큼 철저한 준비를 거쳤다는 얘기다. 특히 대검은 인지수사의 총량이 2017년 1만1천 건에서 2018년 8천 건으로 줄었다고 되풀이 강조했다. 앞으로 “더 줄이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지침은 거시적으로 양해되어야 한다. 부패범죄 수사와 관련해 (대검이) 일선 검찰청과 소통하고 조율하는 규정이 있어야겠다, 그래야 ‘지휘의 투명화’가 가능하다고 판단해 작년부터 지침 두 개를 새로 만들었다. 하나가 ‘자체 첩보 수집·검증 등에 관한 지침’이고, 다른 하나가 이번에 문제 제기가 들어온 그 지침이다. 둘 다 취지는 특수 사건의 총량을 줄이고, 꼭 필요한 수사만 집중해서 하자는 것이다. 앞의 지침은 청부수사 같은 위험성을 배제하기 위해 일선 검찰청이 인지한 첩보도 대검에 보고해 검증을 받도록 했다. 두 번째 (문제 제기된) 지침에서 방점은 ‘승인’이 아니라 ‘절차의 투명화’에 찍혀 있다. ‘승인’의 의미는 ‘특수부가 없는 청은 수사를 못 하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협의를 하자, 수사에 총력을 모으자’는 것이다. 인지수사를 못하게 간섭하거나 개입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승인) 절차를 밟으면 수사가 가능하다.” (대검 반부패부 관계자)
대검 관계자는 이런 설명과 함께 “(검찰의 직접 수사를 제한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에 맞춰 검찰 지휘부가 (인지수사의 총량을 줄이기로) 결단을 한 것인데, 형사소송법의 검사 권한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너무 검사의 입장만 강조한 것으로 (국민에게) 비칠 수 있다”고 했다. 검찰의 직접 수사를 줄여야 한다는 ‘시대의 화두’에 공감한다면, 형사소송법의 ‘사소한 자구’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주문이다. 그러나 ‘법률과 상충하는 지침을 그냥 둘 거냐’는 질문에는 아직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검찰 울타리 바깥에선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 전직 검찰총장에게 견해를 물었다. 그는 늘 검찰의 ‘아킬레스건’이 되곤 했던 집권 세력 수사에서 지침에 있는 ‘승인’ 권한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침을 만든 근본 취지는 좋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적폐 수사’가 오래 계속되면서 ‘수사 지휘’라는 검찰 본연의 직무와 역행하는 현실이 벌어지긴 했지만, 지금부터라도 직접 수사를 최소화하자는 방향은 맞다. 일본도 도쿄·오사카·나고야 딱 세 군데만 특수부가 있다. 그처럼 제한된 범위에서 불가피한 경우에만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대검이 지침을 만들어 인지수사를 승인하겠다는 것은 신중한 접근법이 아니다. 일일이 승인을 하게 되면 일선에선 ‘수사 덮으라는 거야?’라고 오해 내지 반발을 할 수 있다.
만약 인지한 대상이 여당 실세라거나 여당 출신 지자체장이면 어떻게 되겠나. (지침의)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자칫 잘못하면 한순간에 직권남용이 될 수 있다. 과거 신승남 검찰총장도 울산지검 내사를 중단시켰다가 직권남용으로 처벌받지 않았나. 일괄해서 지침으로 묶고 승인을 받으라는 건 지나친 통제다. 대검은 ‘인지수사 자제하라’, ‘수사권 남용 여부 살펴보겠다’는 정도 주의와 경고를 하고, 구체적인 수사 여부에 대한 판단은 일선 지검장들에게 맡겨 놓는 게 맞다. 무리한 통제는 안 하느니만 못할 때가 많다.”
대검은 4월 초에 문제의 지침 개정 여부를 정하기로 했다. 그에 앞서 대검은 오는 25일 열리는 전국 검사장 간담회에서 의견을 들어 보고, 이달 말에 마감할 예정인 전국 검찰청 의견 조회 결과를 모아 결론을 내겠다고 밝혔다. 대검의 지침 손질은 ‘승인’을 다른 말로 바꾸는 정도에 그칠 공산이 크다. 대검 관계자는 “승인이라는 용어가 표현상 오해를 살만한 문제가 있다. 표현을 순화하는 수정이 불가피할 것 같다”면서도 “울산도 직접 수사의 총량을 줄이자는 (지침의) 취지는 이해할 것”이라고 했다. 지침을 통해 인지수사를 제한하겠다는 애초 방침은 변경 불가라는 얘기다.
송인택 울산지검장이 이 정도 선에서 수긍하고 문제 제기를 접을까. 그는 최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인지수사를 자제하라는 지시는 구두로 할 얘기지 (지침에) 조문화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3월 동안 지켜보고, (문제 제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4월 중 여러 방법을 놓고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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