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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정윤회 문건’ 사건은 문재인 정부 들어 재수사 가능성이 높아 보였지만, 검찰은 손도 대지 않았다. 정씨가 지난 2014년 12월11일 새벽 검찰 조사를 마친 뒤 굳은 표정으로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나서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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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철의 법조외전(51)
문재인 정부 들어 1년반 넘게 적폐수사 이어졌지만
과거 정부 법무·검찰 고위직들은 ‘다친 사람’ 없어
정윤회 문건·세월호 수사지연·대리기사 폭행 등
청와대 관여와 직권남용 혐의 짙은데도 그냥 넘어가
“단서 없다지만 의지 문제…‘얼굴’ 의식해 못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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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정윤회 문건’ 사건은 문재인 정부 들어 재수사 가능성이 높아 보였지만, 검찰은 손도 대지 않았다. 정씨가 지난 2014년 12월11일 새벽 검찰 조사를 마친 뒤 굳은 표정으로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나서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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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변호사가 물었다. 1년 반 넘게 이어진 검찰의 ‘적폐수사’가 끝나가는 거냐. 그래서 “그런 것 같다”고 답했더니, 질문이 이어졌다.
“사법부에선 ‘직전’ 대법원장이 구속됐잖아요. 적폐수사의 대단원치고는 정말 굉장한 거죠. 그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으니까. 그런데 법무부와 검찰은 왜 무풍지대인 거죠?”
“무풍지대는 아닌 것 같은데… 검찰 출신 중에 구속됐거나 재판받는 사람이 여럿이잖아요.”
그러면서 여러 ‘전직’의 이름을 생각나는 대로 죽 댔다. 전직 법무부 장관, 전직 청와대 민정수석, 전직 검사장, 전직 국가정보원 2차장, 전직 국가정보원 감찰실장 등.
듣고 있던 변호사가 말했다. “그분들 말고요. 전 정권에서 이런저런 수사가 잘못되거나 왜곡될 때 법무부나 검찰 ‘고위직’에 있던 분들 말입니다. 그런 분들은 다 무사하지 않나요? 지금 말씀하신 분들은 법무부나 검찰 ‘고유 업무’로 인해 처벌받은 게 아니잖아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전 국정원장)은 이명박 청와대에 ‘국정원 특활비’를 제공한 혐의(뇌물)로 기소됐으나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도 청와대 재직 때의 불법사찰 등 혐의로 수사와 기소가 이뤄졌다. 김진모 전 검사장(전 서울남부지검장)은 이명박 정부 청와대 민정2비서관 때의 일로,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 역시 내곡동에서 수행한 직무와 관련해, 장호중 검사장(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도 국정원 파견 당시 검찰 댓글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각각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의 혐의는 모두 검찰 고유 업무와 무관하다.
그럼 지난 정권 법무부와 검찰은, 그 변호사의 말처럼, 항상 정의의 편에 서 있었을까. 적폐수사에서 유일한 예외가 되어도 좋을만큼 바르고 정당한 수사만 했던 것일까.
자고 나면 새로운 사건이 어제 사건을 덮어버리는 대한민국에서 기억을 되살리는 건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그래도 가능한 한 더듬어 보자.
박근혜 정부 2년 차인 2014년에 터진 세월호 수사는 시작부터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선사 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 회장이 실제 한 일 이상으로 부각됐고, ‘구원파’가 사고의 원흉으로 지목됐다. “김기춘 실장, 갈데까지 가보자”라고 써붙인 구원파의 현수막, 헬기까지 동원한 진압작전, 시신으로 발견된 유 전 회장의 말로가 그 기이한 풍경을 대변한다. 검찰 내부적으로는 이 부분만을 떼어내 대검 반부패부(옛 대검 중수부)에 수사 지휘를 맡겼다. 사고 원인, 해경 구조실패, 선사·선주 수사 중 맨 뒤의 것만 일부러 비중을 키운 것이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의 ‘7시간 의혹’을 덮기 위해서라는 게 정설인데, 그렇다면 이를 기획하고 실행하도록 한 ‘주재자’는 누구일까.
한편에선 대규모 참사를 초래한 해경 수사가 법무부의 조직적인 방해에 막혀 표류를 거듭했다. 특히 4·16 참사 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하고도 승객 구조에 손을 놓은 해경 123 정장에 대해 검찰이 청구하려던 구속영장에서 특정 혐의-업무상과실치사상죄-가 법무부 지시로 빠졌다. 적폐수사에서 가장 빈번하게 동원된 바로 그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에 해당하는 일이다. 이는 오직 법무부 장관만이 지시할 수 있는 일이라는, 여러 관여 검사들의 증언이 있지만 황교안 전 장관은 고사하고 그 아래 검찰국장, 검찰국 검사들에 대해서는 어떤 수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더 자세한 얘기는
법조외전(49) ‘세월호 수사 찍어누른 황교안, 끝내 그를 비호한 검경’에 썼다)
그해 9월17일에 일어난 ‘세월호 유족, 대리기사 폭행 사건’도 ‘외압’의 흔적이 뚜렷하다. 애초 서울남부지검이 보고한 구속영장 청구 대상자는 1~2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런데 같은 달 30일 유족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법무부 쪽이 유가족 4명 전원에 대해 구속영장을 쳐야 한다고 난리를 치면서”(검찰 관계자) 검찰의 판단이 변질된 것이다. 검찰에 압력을 행사한 배후가 누구인지는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 수첩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무더기 영장이 청구되기 10일 전 기록이다.
9/17(수)
○김현 의원 폭행건 - 세월호 유족 선동·조종
9/21(일)
○
세월호 유가족 폭행-월요일 지휘-기민하게 일하도록(지휘권 확립토록)
검찰이 무리해서 청구한 유족들의 구속영장은 모두 기각됐다. 당시 사건 현장에 있던 김현 민주당 의원은 공동폭행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으나 1·2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정윤회 문건’ 수사도 빼놓을 수 없다. 2014년 11월28일 “최순실씨 전 남편 정윤회씨가 비선 실세다. 십상시(十常侍)로 불리는 청와대 비서진과 비밀리에 만나 국정에 개입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이 <세계일보>에 보도되고, 정씨가 기자들을 고소하면서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 전 경정이 검찰 조사에서 “우리나라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 2위가 정윤회, 박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진술해 더욱 유명해진 그 사건 말이다.
이 수사는 문건 유출과 비선 개입을 동시에 파헤쳐야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당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지라시에나 나오는 얘기”라고 선을 긋고, “문건 유출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 문란 행위”라고 분노하자 검찰은 문건 유출 과정을 파는 데만 골몰했다. 사건 배당부터 문건 유출은 특수부에, 비선 개입은 형사부에 나눠 맡겼다. “수사 의지가 없었던 것”(검찰 관계자)이다. 왜 그랬을까. 역시 ‘김영한 업무수첩’에 단서가 보인다.
11/29(토)
○세계일보 보도 관련 타사 - 시작
-인상은 진실 X, 조선보도(2박스 유출). 문건 찾아 보도 경쟁 우려, 공직기강 해이
∨신상털기식 보도도 우려 - 대응방향 조언해야. 불필요한 보도
○
검찰수사 촉진 - 수사로 진상규명. 고소 8인 언론대응 방법 - 지도할 것
‘업무수첩’에는 검찰 수사와 관련한 메모가 여러 날짜에 걸쳐 등장하는데, 12월2일 치가 압권이다. 회의 결과를 그대로 옮겨 적은 듯한 이날 치 메모에선 검찰 수사의 성격을 ‘형사(고소)사건 대 정치(의혹)사건’으로 규정하고, 검찰과 ‘협의’할 대목, 정윤회씨 조사의 범위 등을 상세히 검토하고 있다.
※수사의 성격:
형사(告訴)사건 vs 정치(疑惑)사건
○검찰수사가 알파와 오메가
○검찰수사의 신뢰성 보존이 키(열쇠)
○
검찰의 수사상 필요와 요구에 대한 구체적 대응 조절
○수사관련 의사결정 과정 - 보안 - 수사라인 외 관여 경우 누설 위험.
○언론제기 의문사항 정리
○고소인 출석 범위 - 서면제출 - 시기
○휴대폰, 이메일, 통신 내역 - 범위. 기간.
○압수수색
○박관천, 조응천 / 정윤회 / 이재만, 안봉근, 정호성 / ○外 박지만
○
청 3비서관 소환, 통화내역, 이메일 압수수색→협의
○
정윤회 조사 - 범위. 3비서관 조사는 정윤회 관련성 있는 경우에만.
○정윤회 고소(?)
○조선일보 조응천 안봉근 관련 부분은 추측성 대응 불요
○
자료제출, 범위, 방식 → 令狀은 의문
○
수사의 템포. 범위, 순서가 모든 것 → 수사결과
청와대는 ‘형사(고소)사건’으로 수사가 마무리되길 바랐다. 이런 ‘뜻’이 성공적으로 전달된 결과일까. 검찰은 ‘십상시’의 존재에 대해 문건에 나오는 유명 중식당 회동 여부만 파악한 뒤 “사실무근”이라고 결론 냈다. 반면 문건 유출 수사는 강도를 높여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 전 경정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조 전 비서관은 기각돼 불구속 기소됐고, 나중 무죄가 선고됐다)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서울중앙지검은 고소인인 정윤회씨의 주거를 압수수색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러나 대검 지휘부는 “고소인 압수수색은 전례가 없다”며 ‘불가’ 결정을 내렸다. 2년 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일부 검사는 “그때 (최순실씨와 같은 집에 살고 있던) 정씨 주거만 압수수색했어도…”라며 안타까워했지만, 만시지탄이었을 뿐이다.
정윤회 문건 사건에 대해선,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주목할 만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의 일이다.
“정윤회 문건이 현재 상황의 출발점이다. 이걸 폭로했던 박관천 경정이 감옥에 갔는데, 진실이 무엇인지는 우리가 다 알고 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조사와
검찰 수사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것이 재발되지 않도록 민정수석실을 조사해야 한다.” (<문화일보> 2017년 5월12일 치 1면)
조 수석은 임명 첫날 “검찰이 권한을 제대로 사용해왔는지 국민적 의문이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도 검찰이 막강한 권한을 제대로 사용했더라면 미연에 예방됐을 것”이라고 말해, 검찰의 부실수사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그가 이 ‘국민적 의문’을 나중에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알려진 게 없다. 검찰이 정윤회 문건 수사를 수사했다는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검찰 출신들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나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사법농단 수사’ 때 검찰은 대법원장, 법원행정처장 등의 지시사항을 샅샅이 찾아내 증거로 활용했다고 들었다. 그 과정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이 현직 법원행정처장까지 자기 맘대로 불러서 강제징용 판결을 뒤집으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나. 김 실장은 문체부 블랙리스트 작성에도 관여했다. 그런 김 실장이 장관·총장을 지낸 법무부와 검찰에 대해서만 자율적으로 알아서 하라고 놔뒀을까. 그 ‘그립’(장악력) 강하기로 소문난 양반이? 게다가 김영한 수석의 업무수첩에는 청와대의 외압 또는 관여를 시사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이규진 수첩’이 사법농단 사건의 유력한 증거라는데, ‘김영한 수첩’도 못지 않다. 최소한 세월호와 정윤회 문건 사건 정도는 왜 그렇게 지연·왜곡 처리됐는지 수사할 줄 알았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겨냥한 노력만큼을 기울인다면 증거를 못 찾아내겠나? 전직 장관·총장은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남들만 직권남용으로 가혹하게 처벌한 것이 결국은 검찰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어쩌면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이미 토사구팽이 시작됐는지도 모르지만….” (검찰 고위직 지낸 변호사 ㄱ)
그럼 왜 검찰은 세월호 수사 지연, 정윤회 문건 수사 왜곡 같은 사건들을 손도 대지 않은 것일까.
“공식적으로 물어보면 ‘하고 싶어도 (수사의) 단서가 없는데 우린들 어떻게 하냐’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속내는 ‘면(얼굴)이 받쳐서’가 정답이다. 지금 검찰 지휘부라고 해봐야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아니다. 지난 정권, 특히 보수 정권들에서도 검찰에서 간부를 지냈고, 그때 법무부와 검찰의 지휘부를 ‘모셨던’ 사람들이다. 누구라고 거명하긴 그렇지만, 알게 모르게 인사상 특혜를 받은 사람들도 있고. 수사는 결국 의지의 문제다. 예를 들어 국정농단 특검에서 나왔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검찰 간부들의 통화내역 같은 것도 직권남용이나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두고 수사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 조금 건드려보다 말았다. 검찰이 안 하면 그뿐이다. 누가 하겠나?” (검찰 고위직 지낸 변호사 ㄴ)
또 다시 ‘나쁜 역사’를 검찰이 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사와 사람의 문제를 짚으면서다. 마침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도 검·경의 과오를 언급하며 ‘칼찬 일제 순사’에 빗댄 적이 있다.
“과거 어느 사건에 파견을 갔다가 조사대상이던 최고 권력자의 아주 가까운 인척과 알고 지내게 된 검사가 있었어요. 수사는 망쳤지만, 사람을 얻은 거죠. 그가 그 사건 직후 ‘이번 인사에서 나 ○○○○○ 간다’고 주변에 말했는데, 실제로 인사가 그렇게 나는 거예요. 그 권력자의 인척이 미리 자기한테 알려줬다는 말도 하더군요. 근데 그 검사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잘 나가요. 과거에 심각하게 왜곡됐던 사건을 다시 수사하지 않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쳐도, 그런 사건에 관여했던 검사들을 이 정부가 제대로 걸러내지 않는 걸 보면 암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후배들이 그런 선배를 보며 무엇을 배우겠어요. 그런 검사들이 정권 바뀌면 또 어떻게 표변할지, 이 정권 사람들은 생각이나 해봤을까요?”
어느 검사가 물었다.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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