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1.23 18:24 수정 : 2019.01.23 19:26

검찰에는 ‘황교안 라인’이 살아 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지난해 9월7일 수필집 <황교안의 답-황교안, 청년을 만나다> 출판기념회에서 책소개를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강희철의 법조외전(47)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줄곧 ‘개혁 1순위는 검찰’ 외쳤지만
‘황교안 라인’ 등 전 정권 귀족검사 상당수 요직에 그대로
과거 청산 개혁인사 뒷전, 공수처 등 제도변화에만 총력
“문 정부에 실망 검사들 마음 흔들” ‘경고’에 주목할 때

검찰에는 ‘황교안 라인’이 살아 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지난해 9월7일 수필집 <황교안의 답-황교안, 청년을 만나다> 출판기념회에서 책소개를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황이 떴다. 뼛속까지 공안검사 출신인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지난 15일 자유한국당에 입당한 뒤 언론의 관심은 온통 ‘당권’에 맞춰지고 있다. 무너진 보수의 새로운 구심이 될지 궁금해하고 저울질하는 시선은 법조 쪽도 비슷하다. 다만 각도가 좀 다르다.

검찰에 ‘황교안 라인’이 있다. 그가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를 연이어 4년이나 지내면서 여러 차례 검사 인사가 있었다. 당시 인사에서 혜택을 입었거나 개인적인 인연 등으로 가깝지만 성향을 숨기고 있는 검사들이 있다. 황 전 총리의 자유한국당 입당은 그들에게 쳐다볼 희망이 생겼다는 뜻이다. (검찰 고위직 출신 ㄱ 변호사)

실제로 황교안 전 총리는 2013년 3월부터 2015년 5월까지 2년 2개월간 법무부 장관을, 2015년 5월부터 2017년 5월까지 만 2년 동안 국무총리를 지냈다. 2016년 말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과 헌재의 파면 결정에 따라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맡았다. 법무·검찰 인사에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막강한 자리에 만 4년 넘게 재임했다.

그가 ‘권좌’에 있을 때 이뤄진 인사명단을 보면 눈에 띄는 검사들이 있다. 그들 중 너무 도드라졌던 일부는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자의 또는 타의로 옷을 벗었지만, 다수는 여전히 법무·검찰에서 건재하다.

집권 1년 반이 지났지만, 지난 정권의 ‘문제적 칼잡이’들이 다 걸러진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뀐 정권 성향에 자신을 맞추는 ‘변신 로봇’에 가깝다는 것이다. 권력이 세모를 원하면 세모가 되고 네모가 되라면 네모로 변신할 수 있는 영리한 검사들이 검찰에는 여전히 많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그가 집권하고 있을 때도 검사였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도 지난해 6월 <한겨레> 인터뷰(박상기 법무 “왜곡수사 원인, 검찰과 정치권력 모두에 있어”)에서 “과거 정부에서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빚은 검사들이 여전히 승진하고 주요 보직에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수백 명 인사를 움직이다 보니 놓치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 인사안은 법무부 장관이 짜지만, 최종 결재는 대통령이 한다. 그러나 일 많은 대통령이 법무·검찰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민정수석 비서관의 역할이 막중하다. “민정수석은 누군가를 되게 할 수도 있고, 안 되게 할 수도 있다. 인사안의 최종 게이트 키퍼는 민정수석이다.” (과거 청와대 민정수석실 근무 경력이 있는 변호사)

조국 민정수석도 검사 인사의 중요성을 잘 파악하고 있었던 듯하다. 교수 시절 김선수 변호사(현 대법관)와 한 주간지 인터뷰에서다.

“2009년 MBC 수사 때 임수빈 검사가 기소할 사안이 아니라며 손을 들었잖아요. 그런데 최교일 검사가 받아서 쭉 밀어붙였고, 1·2·3심 다 무죄가 났는데도 최 검사는 계속 승진했죠. 검사들은 이걸 잘 아는 거예요. 시민의 인권과 자유 침해에 큰 관심이 없죠. 이렇게 해야 다음 승진에 유리하다는 것만 매우 잘 아는 거죠. 원래대로라면 무죄 나오면 검사가 견책을 받아야 하는데, 형벌권을 남용한 거니까.” (‘VIP 심기 관리 법대로 합시다?’, <시사인> 2015년 3월4일)

문재인 정부 법무·검찰개혁은 이 두 사람이 주도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2017년 7월21일 청와대서 열린 신임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 앞서 조국 민정수석과 이야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렇게 말했던 그가 민정수석이 된 뒤 검찰 인사는 어땠을까. 단적인 사례가 조 수석의 부산혜광고 1년 후배다. ‘비비케이(BBK) 사건’ 부실수사 등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비판을 받던 그는 문 정부 첫인사에서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발령이 났다. 검찰 안에선 떠나라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다음번 인사에서 전국에서 두 번째로 큰 지방검찰청의 검사장으로 ‘부활’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 당시 ‘우병우 사단’의 일원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정권 청와대의 ‘하명성’ 대기업 수사에서 통째로 무죄를 받은 2명의 검사도 조 수석이 언급한 ‘견책’은 커녕 무탈하게 잘 나가고 있다.

검찰 인사에 새삼 주목한 까닭은 조국 수석이 연초 페이스북에 띄운 글 때문이다. 지난 6일 그가 올린 호소문(?)의 일부다.

“법무부의 탈검찰화, 검사인사제도의 개혁, 검찰 과거사 청산 등 대통령령/법무부령 개정으로 가능한 검찰개혁은 대부분 이루어졌습니다. 공수처법 제정, 수사권 조정 등 (…) 검찰의 불가역적 변화를 위해서는 법률적 차원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국민 여러분, 도와주십시오!”

조 수석은 공수처, 즉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의 제정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제화가 검찰개혁의 완성인 것처럼 말한다. 그의 생각처럼 공수처가 생기고 수사권이 조정되면 검찰은 영영 돌이킬 수 없는-글자 그대로 불가역적인- 개혁의 신천지로 접어들게 될까.

찬찬히 뜯어보자. 공수처는 이름처럼 고위공직자의 비리·범죄를 수사하는 기관이다. 검사와 판사를 비롯해 장·차관 등 고위공직자가 주 대상이다. 검사도 비리나 범죄를 저지르면 수사를 통해 처벌받는 게 당연하다. 지금의 검찰이나 경찰로도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기존 수사기관이 검사나 판사의 비리를 눈감아준 사례가 적잖고, 평소에도 웬만하면 봐준다는 의심이 있으니 독립적인 수사기관을 만들어 전담시키겠다는 게 공수처의 취지다. 검사 입장에서는 자신을 늘 꼬나보는 제3의 수사기관이 있으면 과거보다 행동거지를 각별히 조심할 법하다.

그러나 그 효과는 딱 거기까지다. 공수처가 있다고 해서 검찰의 정권 편향이 저절로 사라지고, 권력 눈치 안 보는 공정한 수사를 한다는 보장은 없다. 공수처가 개입하는 것은 검사 개개인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뿐이다. 검찰이 부당한 수사, 정권 입맛에 맞는 수사를 한다고 공수처가 검찰을 수사한다? 그런 일은 영화에나 있다. 애초에 불가능하다.

검경 수사권 조정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합의문의 골자는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없애고 경찰에게 수사권을 주어 검경을 지휘-복종이 아니라 대등한 협력 관계로 바꿔놓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검사 개개인과 검찰이 너무나 비대하고 막강한 권한을 쥔 채 해서는 안 될 일을 서슴지 않았으니 일부를 빼앗아 경찰에게 주겠다는 것이 요체다.

그러나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문 정부의 바람대로 법제화돼도 검찰의 권능은 큰 타격을 받지 않는다. 여전히 직접 수사권을 갖고, 인지수사에도 아무런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검사의 영장청구권(제12조 3항)도 건드릴 수 없다. 법원에 기소하고 재판에서 공소를 유지하는 것도 여전히 검사와 검찰의 몫이다. 검찰은 혐의가 드러나면 어떤 수사도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공수처나 수사권 조정의 목표가 무엇일까. 검찰개혁이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같은 검찰의 ‘나쁜 수사’가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는 것 아닐까. 문 대통령이 과거 책에도 썼다. 그러나 공수처가 만들어지고, 수사권 조정이 돼도 정권 입맛에 맞는 ‘나쁜 수사’를 완전하고 영구하게 막을 방법이란 건 없다.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공수처와 수사권 조정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난센스다.” (검찰 출신 사정기관 관계자)

그래서 인사가 중요하다. 인사보다 더 분명하고 효과적인 메시지는 없다. 제도 개혁보다 인사가 더 중요할 수 있는 이유다.

“검사도 직업 공무원이다. 인사에 가장 취약하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인사의 일관성과 공정성이 중요하다. 인사가 나면 구성원 대다수가 수긍하고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누가 어느 자리에 가면 ‘갈만한 사람이 갔네’, 이런 게 돼야 한다. 인사의 잣대를 분명히 세우고, 상황 따라 사람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선 그렇지 않았다. 권력 핵심과 가까우면, 잘 보이면 인사에 그대로 반영됐다. 충성과 인사를 맞바꿨다. 그런 인사가 검찰을 망가뜨렸다.” (검찰 간부)

문재인 정부 검찰 인사는 ‘첫 단추’부터 이상했다. 정부 출범 뒤 첫 서울중앙지검장 인사를 청와대가 직접 발표했다. 전례가 없는 일이라 ‘검찰청법 위반’ 논란이 일었다. 김현웅 전 장관이 사임한 뒤 인사 제청권자인 법무부 장관이 공석인 상태에서 청와대가 인사를 주도해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는 검찰청법(제34조 1항)을 어겼다는 것이었다. 검찰청법에 ‘검사의 임용, 전보, 그 밖의 인사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하게 돼 있는 검찰인사위원회(제35조)도 소집되지 않은 채 인사가 이뤄졌다.

“과거 보수정권은 물론 노무현 정부에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검사 인사권자는 대통령이다. 임명장도 대통령 명의로 나간다. 그러나 발표는 법무부에서 한다. 왜 그러겠나. 검찰총장을 굳이 (대통령이 아니라) 법무부 장관이 지휘하도록 해놓은 원리를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서울중앙지검장은 검찰총장보다 한참 아래다. 이 정부 들어선 ‘급’도 고검장급에서 일반 검사장급으로 낮춘다고 했다. 그런데 청와대가 직접 발표하길래, 정말이지 깜놀했다.” (검찰 고위직 출신 ㄴ 변호사)

그다음 인사에선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검사들을 법무·검찰의 핵심 요직-이른바 ‘빅2’라고 부르는-인 법무부 검찰국장, 대검 반부패부장(옛 중앙수사부장)에 나란히 앉혔다. 청와대가 강조하는 ‘유전자’ 때문일까. 과거 보수정권은 물론 군사정권에서도 ‘검찰의 정치적 종속’이라는 시비를 우려해 이런 식의 인사는 하지 않았다.

특히 사법연수원 25기인 검찰국장은 전임자가 사법연수원 21기였으니 무려 네 기수를 건너뛰었다. 그 사이 기수에는 검찰국장을 맡을 만한 인재가 없었을까.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할 때 휘하 사정비서관실의 행정관이었다. 검찰 역사에서 검사장 승진과 동시에 검찰국장으로 직행한 사례는 없다.

대통령 탄핵으로 정권이 바뀌었는데 이전 정권에서 잘 나가던 검사들이 계속 잘 나가고, 연줄이 능력보다 우선하는 듯한 인사가 반복되면 마음이 흔들린다, 혹시나 했던 기대를 접게 된다고 일부 검사들은 말했다. “이 정부도 결국 크게 다르지 않구나. 역시 연줄이 중요하구나.” 검찰 인사를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한다고도 믿지 않게 된다.

1년 반 넘게 지속된 ‘적폐수사’는 또 다른 차원의 인사 문제를 야기했다. 서울중앙지검의 과도한 인력 집중이다. ‘블랙홀’처럼 일선 검사들을 빨아들였다. 일선 검찰청에서는 주로 일 잘한다는 검사들이 뽑혀갔다. 화려한 조명은 전부 서울중앙지검에 쏠렸다. 차출된 검사들이 갖고 있던 사건은 나머지 ‘기타 검사’들에게 배분됐다. 중간에 업무에 치여 순직한 검사까지 나왔다. 하지만 검찰은 여전히 문재인 정부의 개혁대상 목록 맨 위에 이름이 올라 있다.

“적폐수사로 빛나는 서울중앙지검과 일선 검찰청 검사들 사이에 인식의 갭이 크다. 일선 검사들은 소외감을 호소한다. 파견 간 사람들 몫까지 열심히 일하는데, 늘 도매금으로 개혁대상이다. 파견 간 검사들은 공로를 인정받아 다음 인사에서 대부분 서울에 남거나 좋은 자리로 가겠지만, 자기들은 뭐냐는 생각이 있다. 공정한 인사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지면서 마음이 많이 떠났다고 할까. 검찰 전체로 보면 서울중앙지검은 혼자서만 빛나는 섬 같은 존재다. 서초동(대검·서울중앙지검)에선 서초동 바깥(일선 검찰청)의 사정을 잘 모른다.” (검찰 관계자)

쌓인 불만은 ‘출구’를 찾게 마련이다. 오는 4월3일에는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가 치러진다. 내년 4월이면 문재인 정권의 명운이 걸린 국회의원 총선이 있다. 선거 전후 검찰에는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몰려들 것이다. 사건은 경향 각지에 산재해 있다. 벌금 100만원이면 의원직이 결딴난다. 검찰 지휘부의 일선 장악력은 과거보다 눈에 띄게 약화했다. 강원랜드 재수사, 검찰발 미투 등을 거치며 검찰의 조직 문화가 바뀌었다. ‘지휘’의 개념과 현실이 달라졌다. 높은 간부, 중간 간부 할 것 없이 “아래 검사들한테 수사 관련해서 뭐라고 하기가 겁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까.

“검찰의 6급 수사관(김태우)은 대놓고 폭로하지만, 노련한 검사들은 사건(수사)으로 흐름을 끊어버린다. 2004년 4·15 총선에서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152석을 얻었던 열린우리당이 1년 조금 넘어 과반이 무너졌다.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당선무효형(100만원 이상 벌금형)이 연거푸 선고되면서다. 문재인 정부도 출범하고 1년 반이 지났으니 이제 슬슬 중요 정보가 야당 쪽에 새어 나가고, 여권에 곤혹스러운 사건들이 하나둘 검찰로 올 때가 됐다. 나중에 돌아보면 김태우 사건이 분수령일지 모른다.” (검찰 고위직 출신 ㄱ 변호사)

‘힘’ 있던 정권 초기가 속절없이 지나갔다. 총선까지는 사실상 1년이 남았다.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강희철의 법조외전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