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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18 14:41 수정 : 2018.11.18 22:13

차한성 전 대법관이 지난 2014년 3월4일 박근혜 대통령한테서 청조근정훈장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강희철의 법조외전(43)
‘철벽수문장’·‘박카리’로 불리며 앞뒤로 법원행정처장 지내
“박근혜 정부 존속했으면 둘 중 양승태 원장 후임 나왔을 것”
퇴임하며 ‘몸가짐 경계’·‘사법권 독립’ 강조했지만 피의자로

차한성 전 대법관이 지난 2014년 3월4일 박근혜 대통령한테서 청조근정훈장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정부에서 유력한 대법원장 후보로 거론되던 두 사람이 ‘사법농단’ 사건의 피의자가 됐다. 한 사람은 19일 검찰에 출석하고, 또 한 사람은 지난 7일 검찰에 비공개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주인공은 박병대, 차한성 전 대법관이다. 법조계에선 두 사람의 영욕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두 사람은 박근혜 정부 말기 유력한 대법원장 후보로 꼽혔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임기가 2017년 9월까지였으니, 박근혜 정부가 존속했다면 후임 사법부 수장은 둘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크다. 한 법관 출신 변호사는 18일 “법조계, 특히 법원 내부에서는 차·박 중 한 사람이 박 전 대통령의 ‘낙점’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고 말했다.

나름의 근거가 있다. 차한성(64·사법연수원 7기) 전 대법관은 경북 고령 출신으로 경북고와 서울법대를 나온 ‘정통 대구·경북(TK)’ 인사로 2008년부터 2014년까지 대법관에 재임했다. 법원행정처의 요직인 인사관리심의관, 사법정책실장을 거쳐 법원행정처장을 지냈는데 이때 얻은 별명이 ‘철벽수문장’이라고 한다. 매사 빈틈없는 일 처리와 업무장악력에 혀를 내두른 후배·동료들이 붙여줬다고 전해진다. 그는 법원 내 ‘보수적 주류 엘리트’ 모임인 ‘민사판례연구회(민판연)’ 회원이기도 했다. 보수 정권의 기준으로 보면 대법원장이 될만한 요건을 두루 갖춘 셈이다.

특히 법조계에서 그를 양승태 대법원장 후임으로 유력하게 봤던 이유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한 10·26 사건의 김재규 군사재판과 관련해서다. 차 전 대법관은 법관으로 임관하기 전인 1979년 12월 김재규의 1심 재판에서 군 주임검찰관으로 사형을 구형했다. ‘수첩 인사’로 유명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기억에 뚜렷이 남았을 법한 일화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2014년 10월7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인사말을 하기 위해 박병대 법원행정처장 뒤를 지나 단상으로 가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박병대(61·연수원 12기) 전 대법관은 서울 환일고-서울법대를 나왔지만, 경북 영주 태생이라 ‘범 대구·경북(TK)’으로 분류되곤 했다. 그도 2011년부터 2017년까지 대법관을 지냈는데, 경력에서 특히 법원행정처 근무 기간이 눈에 띈다. 32년 법관 생활 중 9년을 행정처에서 일하며 송무국장, 사법정책실장, 기획조정실장 등 요직을 섭렵했다. 대법관이 돼서는 차한성 후임으로 법원행정처장을 맡았다. 그 역시 ‘민판연’ 회원이었다.

성씨인 ‘박’에 ‘카리스마’를 붙인 ‘박카리’라는 별명은 법원 내에서 그의 존재감을 보여준다. 행정처 근무가 누구보다 오랜 만큼 ‘사법행정의 달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가 퇴임할 때 후배 법관들이 헌정한 문집 <법과 정의 그리고 사람>에는 “국장님 모시는 동안 제가 느낀 심정은 석가여래와 손오공”, “나의 슈퍼에고, 박병대 대법관님”, “국장님의 번뜩이는 기지와 참신한 아이디어는 마법의 열쇠” 등의 표현이 나온다. 양 전 대법원장과는 누구보다 ‘호흡’이 잘 맞았다고 전해진다.

두 사람은 법원에서 차지했던 비중만큼 묵직한 퇴임사를 남겼다. 차 전 대법관은 2014년 3월 퇴임하면서 “재판 당사자 등 국민의 거울에 비친 법관의 모습이 어떠한지, 진정 국민이 바라는 법관의 모습은 무엇인지를 늘 고민하고 자기 자신의 몸가짐을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라며 “법관에게는 강자가 아닌 군자의 굳셈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박 전 대법관도 2017년 6월 퇴임사를 통해 “재판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공정성과 중립성, 권력에 대한 감시 그리고 소수자 보호의 가치도 사법권 독립의 토대 위에서 실현될 수 있다”며 “사법권 독립과 법관 독립은 오로지 국민권익을 위한 것이라는 대의가 명경지수처럼 투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그래픽을 누르면 확대됩니다.

그러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에 나타난 두 사람의 모습은 퇴임사와는 많이 달랐다. 차 전 대법관은 일제 강제징용 사건 판결 연기를 위해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2013년 12월 소집한 이른바 ‘소인수회의’에 참석해 전원합의체 회부·피해자들의 소취하 유도를 동시에 추진하는 ‘투트랙’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는 그 자리에서 “왜 이런 이야기를 2012년 대법원 판결 때 안 했느냐, 브레이크를 걸어 줬어야지. 현재 송달 절차는 몇 달 더 지연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시효문제가 있는데 운 좋으면 1년 이상도 지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청와대 방침에 적극 공감한 것이다.

박 전 대법관은 임 전 차장의 많은 혐의에 ‘윗선 공모자’로 등장한다. 징용소송 ‘재판 거래’ 의혹,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 탐지·수집, 법관사찰,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 개입, 공보관실 운영비 횡령 등에서다. 그는 또 김기춘 전 실장이 강제징용 사건 대응방안을 논의하려고 소집한 2014년 10월 ‘2차 공관 회동’에 참석해 법원에 계류 중인 과거사 소송을 취합해 보고했다. 이듬해 8월에는 양 전 대법원장의 박근혜 전 대통령 독대를 앞두고 대법원 판결 중 ‘국정운영 협력사례'로 내세울 만한 사건들을 직접 선별하기도 했다.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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