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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본래 모습이어야 할 전원합의체 심리는 전체 사건의 0.1%에 불과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지난 1월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휴일근로 중복기산금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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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철의 법조외전(37) 개혁 시급한 상고심 ‘민낯’
재판연구관 의견 90%·주심 대법관 1인 판단이 판결로
폭주하는 사건에 치여 부실심리·심리불속행 남발 일상화
김명수 대법원장 1년전 “정상화” 다짐했지만 감감무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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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본래 모습이어야 할 전원합의체 심리는 전체 사건의 0.1%에 불과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지난 1월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휴일근로 중복기산금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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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초는 짧은 시간이다. 세계기록(9초58)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에겐 100m를 완주하고 남을 시간이지만, 대다수 평범한 사람에겐 촌음일 따름이다. 그런데, 그 짧디짧은 시간 안에 누군가의 권리, 경력, 명예, 재산, 인생이 걸린 판결의 결론이 정해진다면? 말도 안 된다, 그런 재판이 어디 있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 판결의 심리는 대부분-‘극소수’ 전원합의체 판결을 제외하면- 10초 안에 끝난다. 추측이나 추론이 아니다. 박시환 전 대법관이 논문을 통해 밝힌 내용이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11월 임명돼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11월까지 6년 동안 대법관으로 일했다. 그때 경험을 살려 2016년 11월 ‘대법원 상고사건 처리의 실제 모습과 문제점’이란 논문을 썼다. 민주주의법학연구회가 펴내는 학술지 <민주법학> 제62호에 실린 이 작은 논문엔 대법원 재판의 실상이 낱낱이 드러나 있다.
박시환 전 대법관, 상고심의 민낯을 보여주다
대법원 재판을 ‘민낯’ 그대로 외부에 보여준 사람은 박 전 대법관이 처음이다. “대법원 상고사건 처리의 구체적 모습이 외부에 너무 알려져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법원에서도 가능하면 이를 외부에 알리지 않으려고 해 왔으며 (…) 이런 현상은 대법원 상고사건 처리 방법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시정하여 더 나은 단계로 발전시키는 데 적지 않은 장애요소로 되어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논문 역시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10초 재판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려면, 재미는 없지만, 대법원 구조 파악이 먼저다. 우리나라 대법관은 대법원장을 포함해 모두 14명이다. 이 가운데 일상의 재판 업무는 대법관 12명이 맡는다. 기관 대표인 대법원장은 전원합의체만 주재하고, 사법행정 업무로 바쁜 법원행정처장은 열외다. 대법관 12명이 각 4명씩 3개 ‘소부(小部)’로 나뉘어 상고심의 대부분을 담당한다. 연간 접수되는 수만 건 상고심 사건 중 전원합의체에 넘어가는 사건은 0.1%, 나머지 99.9% 사건은 소부에서 처리된다. 그래서 소부가 중요하다.
그 아래로는 재판연구관들이 있다. 전국 법원에서 뽑혀온 13년 차 전후 판사들이 전속연구관과 공동연구관으로 나뉘어 대법관의 업무를 보좌한다. 전속연구관은 특정 대법관에게 소속돼 그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사건만 본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부르는 별칭이 ‘사노비’다. 반면 ‘공노비’로 불리는 공동연구관은 모든 대법관이 함께 활용한다. 사노비는 대법관 1인에 3명(부장연구관 1명+13년 차 전후 법관 2명)씩, 전체 36명으로 정해져 있다. 공동연구관은 민사조, 형사조 이런 식으로 구성돼 70명을 넘는다. 그 위론 고법부장급인 수석재판연구관과 선임재판연구관이 있어, 이들을 지휘·감독한다.
이제 대법원 재판이 왜 10초 만에 끝나는지를 알아볼 차례다. 대법원에 상고심 사건이 접수되면, 일단 소부로 배당된다. 주심 대법관이 정해지기 전 공동연구관으로 새 사건 검토를 전담하는 신건조(新件組) 연구관이 기록을 먼저 본다. 검토가 끝나면 사건 처리방향에 대한 의견을 붙여 A4 10매 안팎의 보고서를 주심 대법관에게 올린다. 처리 의견으론 △심리 불속행(대법원이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것) △상고기각(심리 불속행과 달리 간단한 이유를 설명한 상고기각 판결) △전속연구관 검토 △공동연구관 검토 △전원합의체 회부 중 하나를 붙인다.
재판연구관의 ‘포스트잇’이 판결 좌우한다면?
이때 낸 재판연구관의 의견이 상고심 사건 10개 중 9개의 운명을 결정한다.
“신건 검토보고를 받은 주심 대법관이 기록과 관련 자료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면 재판연구관이 빠뜨리거나 방향을 잘못 잡은 쟁점에 대하여 수정·보완할 기회가 있을 것이지만, 실제로는 한 번에 수십 건씩 올라오는 신건 기록을 자세히 살펴볼 시간 여유가 없다. (…) 신건조 재판연구관이 보고한 의견과 동일하게 처리하는 비율이 90%를 넘는다.” 이쯤 되면 상고심 재판의 주체가 대법관인지 재판연구관인지 아리송해진다.
주심 대법관의 검토까지 끝나면 사건은 소부의 합의에 붙여진다. 소부에 속한 대법관 4명이 날 잡아 처리할 사건을 매듭짓는 절차를 ‘합의’라고 부르는데, 이 합의는 “매달 두 번씩(통상 둘째와 넷째 수요일 또는 목요일) 열린다. 이 자리에 각 대법관이 가지고 가는 사건은 각자 100건 가까이 된다.” 건당 분량이 엄청난 1, 2심 재판 기록을 모두 회의실로 옮길 수 없어, 합의 기일에는 같은 소부 소속 대법관들이 각자 방을 돌며 회의를 이어간다.
이 과정은 놀라움 그 자체다. “그날 다른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사건은 어느 사건이 합의에 회부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합의에 임한다.” 각 대법관이 내용을 아는 것은 ‘내 사건’들뿐이다. 나머지 3명이 각자 무슨 사건을 합의에 붙였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깜깜이’ 상태로 합의 절차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대법원 판결은 4명의 대법관이 선고 내용에 만장일치로 합의해야 하기 때문-끝내 합의가 안 되면 전원합의체로 넘어간다-인데, 정작 판결 대상 사건을 합의 자리에 가서야 아주 간략히 몇 줄 정도만 알게 되는 희한한 구조다.
“(한 달에 두 번뿐인) 합의 기일에 각 주심 대법관별로 2시간, 길어야 3시간이 주어지는데, 그 시간 동안 100건의 사건을 합의하려면 1건의 합의에 허용되는 시간은 기껏해야 1분 30초 정도를 넘지 못한다. 물론 아주 간단히 설명하고 지나가는 사건도 (…) 적지 않아서 실제로 내용을 설명하는 사건 수는 100건보다는 상당히 적어진다. 그렇다 하더라도, (개별 사건의 개요와 쟁점, 주심 대법관의 판단을 말하는) 평균 설명 시간이 3~4분을 넘어가기 힘들다. (…) 합의할 사건의 내용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합의에 임하게 된 다른 대법관들이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잠시 침묵이 흐를 수밖에 없는데, 주심 대법관은 잠시 기다리다 더 이상 질문이나 이견 제시가 없으면 자신이 제시한 의견에 찬성한 것으로 보고 다음 사건의 설명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필자의 경험으로는 그
침묵 상태의 대기 시간이 불과 10여 초를 넘지 못한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10초! 그 안에 주심 대법관이 보지 못했거나 놓쳐 버린 쟁점과 의견을 다른 대법관이 잡아내지 못하면 그 사건의 결론은 거기서 끝이다. 재론의 여지는 거의 없다. 판결문 초안조차 제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합의 과정이 끝난다. 알고 보면 주심 대법관 1인의 단독 판결이나 마찬가지인데도, 재판 결과는 소부-대법원 1부, 2부 하는 식의-의 이름으로 나간다. 상고한 당사자는 그래도 대법관‘들’이 사건을 한 번 더 꼼꼼히 살펴봐 주길 기대했겠지만, 실상은 전혀 딴판인 것이다. 이걸 합의라고, 국민이 기대하는 정상적인 ‘대법원 재판’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기각하면서 이유조차 밝히지 않는” 심리 불속행(심불)은 더하다. “(신건조 혹은 전속이나 공동조) 재판연구관의 의견대로 처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주심 대법관은 다른 대법관들과 합의에서 “사건 내용과 쟁점을 설명한 뒤 ‘중요 쟁점이 아니므로 심리 불속행으로 처리하겠다’고 첨언하는 방식으로 처리한다.” 이 과정에서 다른 대법관들이 “심리 불속행 처리 여부에 관해 의견을 말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심불 처리 여부가 해당 사건을 검토한 재판연구관과 주심 대법관의 의사에 전적으로 달린 것이다.
형사 빼고 민사와 가사, 행정 관련 대법원 판결 10건 중 8건이 심불 기각으로 끝난다. 2017년 대법원에 접수된 민사 본안사건 1만5364건 가운데 77.2%(1만322건)가 심불 기각됐다. 작년에는 민사 사건 심불 기각이 대법원 사상 처음으로 1만건을 넘었다. 지난해 가사 사건의 86.8%, 행정 사건의 76.4%가 심불 기각으로 마무리됐다.
심불 기각률은 해마다 증가한다. 2014년과 2017년 통계를 견주어 보면, 민사 사건은 54.5%에서 77.2%, 가사 사건은 79.1%에서 86.8%, 행정 사건도 61%에서 76.4%로 증가 일로에 있다.
전체 사건의 0.1%만 전원합의체로 가는 기형 구조
소부 사건의 심리가 얼마나 부실하게 날림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는 전원합의체(전합) 심리 과정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상고사건 가운데 △주심 재판관이 신건 검토보고를 받은 뒤 사건이 소부에서 다루기에 적절치 않다고 판단하거나 △소부에서 대법관들 사이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거나 △명령·규칙이 헌법 또는 법률에 위반된다고 인정하거나 △종전 대법원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된 경우 전합에 회부된다.
소부와 가장 큰 차이는 사건마다 재판연구관이 작성한 A4 50~100쪽 분량의 전합용 검토보고서가 상고이유서, 답변서 등과 함께 대법관 전원에게 사전 배포된다는 점이다. 적어도 소부에서와 같은 ‘깜깜이’ 상태는 아니다.
대법원장이 직접 재판장을 맡는 전합은 “매월(1월과 8월은 건너뛰는 경우가 있다) 한 번씩 셋째 목요일에 열린다.” 따로 마련된 전원합의실에서 일체 배석자 없이 진행되며, “한 기일에 통상 8~9건 정도 합의를 진행하는데, 한 번에 합의로 종결을 짓는 경우는 많지 않고 대부분 3~4회 정도 합의가 속행된다.” 사건 1건 당 합의에 들어가는 시간은 1시간 정도. 주심 대법관의 설명 시간을 빼면 순수한 토론 시간은 30~40분에 불과하다. 주심 대법관을 제외한 대법관이 12명인 점을 생각하면 “그 사건 전체 쟁점에 대해 충분히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면 전합의 토론도 소부와 같이 주심 대법관과 재판연구관의 검토 틀을 크게 벗어나기 어렵지만, 그래도 국민이 기대하는 상고심의 모습에는 더 가깝다. 대법관별로 다수의견·별개의견·반대의견이 개진되고, 이를 회람하고 다듬는 과정이 여러 차례 반복된다. “하나의 전원합의체 판결이 완성되는 데에 10회 넘게 수정본이 작성되는 일이 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합에서 판결하는 사건은 “연평균 15건 정도”에 불과하다. 전체 상고심의 0.1%나 될까. 나머지 99.9%는 택배사 집하장의 짐짝 취급을 면치 못한다.
대법원에서 ‘대법관 1인 재판’, ‘10초 심리’, ‘80% 심불기각’이 이뤄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건이 몰려들어서다. 2017년 한 해 대법원에 새로 접수된 사건 총수는 4만6033건, 이를 대법관 12명으로 나누면 1인당 3836건이 넘는다. 쉼 없이 밀어내도 상고심 사건은 해마다 늘어난다. 박시환 전 대법관이 퇴임한 2011년 총 접수 사건은 지난해보다 1만건이 적은 3만6805건(대법관 1인당 3067건)이었다. “제대로 된 심리를 하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한 숫자다.”
‘그럼 대법관 숫자를 늘리면 해결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얼마나 늘리면 될까. 24명? 28명? 그렇게 해도 대법관 1명당 사건 수는 지금의 절반 정도로 줄어들 뿐이다. 효과가 미미하다. 10배로 늘린다 해도 부실 재판은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어렵다. 반면에 대법관 숫자가 늘어날수록 전원합의체에서 토론은 점점 더 불가능해진다. “대법관을 24명으로 늘리면 전원합의체의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한나라당이 ‘대법관 기존 14명에서 24명으로 증원’ 방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하자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이 반박하며 한 말이다.
이 전 대법원장은 그 대신 ‘상고심사부’ 설치를 추진했다. 서울·부산·대전·대구·광주 등 전국 5개 고등법원에 8개 상고심사부를 신설해 소송 당사자의 의견을 들은 뒤 대법원 상고 여부를 허용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미국 대법원이 하는 ‘상고 허가제’를 변형 도입하고자 했으나 이 대법원장이 퇴임(2011년 9월)한 뒤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 의혹도 출발점은 상고심 문제
후임인 제15대 양승태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신설을 들고 나왔다. 2심(항소심)과 3심(상고심) 사이에 ‘상고법원’을 신설해 대다수 상고심 재판을 맡기려 했다. 대신 대법원을 전원합의체 위주로 운영해 사회의 규범적 가치를 제시하는 ‘정책법원’으로 변화시키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법원 안팎의 공론화 과정을 밟지 않은 성급하고 일방적인 입법 추진이 자충수가 됐다. 법원 내부에선 50~100명에 달하는 상고법원 법관 인사권을 통해 사법부 장악력을 높이려 한다는 의심을 샀다. 청와대와 국회는 고위 법관 숫자나 늘리려는 한심한 발상으로 간주했다. 지금 검찰이 수사 중인 ‘재판 거래’ 의혹은 이렇게 불리한 여건을 억지로 돌파하려다 양 전 대법원장이 자초한 일이다.
그럼, 김명수 대법원장은? 그는 지난해 9월26일 취임사에서 현행 상고심의 문제점을 인정했다. “현재 급증하는 상고사건을 해소하고 상고심의 기능을 정상화하기 위하여 상고 허가제, 상고법원, 대법관 증원 등 여러 방안들을 보다 개방적인 자세로 검토하고 사회 각계의 의견을 두루 수렴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실정에 알맞은 상고제도를 만들고 정착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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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양형위원회 등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가 열린 지난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출석해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의사진행발언을 듣던 중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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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공식 행사인 지난달 13일 사법부 창립 70돌 기념사에선 “상고심 제도 개선”이라는 한 마디를 스치듯 언급하고 지나갔을 뿐이다. ‘여러 방안 검토’, ‘각계 의견 수렴’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구체적인 안 같은 것은 제시된 바 없다. 그 사이 대법원장 임기 6년 중 1년이 흘렀다.
대법원 재판의 민낯을 거의 처음 외부에 공개한 박시환 전 대법관의 생각은 어떨까. 그는 미국 연방 대법원과 같은 ‘상고 허가제’를 제안했다. “대법원이 최고 법원으로서 수행하는 권리구제 기능과 정책법원의 기능 중에서 후자의 기능은 다른 기관이나 하급심 법원이 할 수 없는, 대법원만이 유일하게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이며, 나라 전체의 기능 중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불가결한 기능이다. 대법원이 이런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시도된 우회적인 미봉책들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재판을 해낼 수 있는 사건 수로 상고를 제한하는 정면대결 방법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당사자간 정의는 두 번 재판이면 충분하다”
선례가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도 우리처럼 폭주하는 사건에 파묻혀 제 구실을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를 해소한 것이 1925년의 ‘상고허가(Certiorari)’ 제 입법이다. 1789년 창립한 미국 대법원은 당시 사건 적체로 판결까지 5년이 걸렸다고 한다. 제때 제대로 된 재판과 판결을 기대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1921년 대통령(제27대)에서 대법원장(제10대)으로 변신한 윌리엄 태프트는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서, 대법원이 상고 수리의 완전한 선택권을 갖는 상고 허가제를 입법하는 데 성공했다. 태프트는 ‘모든 당사자에게 대법원의 판단을 받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반대 여론을 향해 “당사자 사이에 정의를 세우는 데는 두 번의 재판이면 충분하다”는 유명한 반론으로 의회를 설득했다고 한다.
현재 미국 연방대법원은 대법관 9명이 매년 1만건 안팎의 ‘상고 허가 신청’을 검토해 80~100건 정도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건을 추린다. 또 모든 대법관이 기록을 직접 검토-우리 대법원의 전합은 내용과 쟁점이 정리된 보고서만 본다-하고, 공개 구술변론을 통해 심리한 뒤 합의를 거쳐 판결한다. 그곳엔 남발되는 ‘깜깜이’ 10초 판결도, 심리 불속행 기각도 없다. 국민이 대법원에 기대하는 모습에 훨씬 가까운 셈이다.
김명수는 태프트가 될 수 있을까. ‘묻지 마 3심’의 환상을 깨고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을까.
(*기사 작성에 강한승 전 판사(변호사)가 쓴 <미국 법원을 말하다>(오래), 권석천 jtbc 보도국장이 쓴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를 참조했습니다)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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