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철의 법조외전(30) ‘고위 관계자’ 반박에 대한 반박
민정수석실 인사검증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직자라야 가능
곽 후보가 지원한 ‘기금이사’는 공무원 아니라서 검증대상 아냐
청와대 검증 방법도 의문…경우에 따라 불법 정보수집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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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오른쪽)이 국민연금 인사개입 논란이 불거진 뒤인 지난 5일 서울 구로구에서 열린 신혼부부 및 청년 주거대책 발표 행사에서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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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선 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본부장(CIO)의 인사를 둘러싼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곽 후보의 탈락 사유가 석연치 않다는 ‘작은 의혹’에서 출발해 엉뚱하게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등장하고, 급기야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이 곽 후보의 인사검증을 했다는 사실까지 확인되면서 “청와대의 직권남용”이라는 지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자는 9일 아침 <한겨레> 지면에 ‘법조계 “청와대, 곽태선 인사검증은 직권남용”…청 “형식논리”’(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52461.html#csidx0af80fc5a7b1a478bdf9a33913f610e )라는 기사를 썼다. 법조계에서는 왜 민정수석실의 인사검증을 직권남용으로 보는지, 그런 시각과 이유를 설명하는 기사인데, 그 기사에 인용한 주요 취재원의 코멘트를 다시 옮겨본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인사검증은 법에 대통령이 임면권을 갖고 있다고 규정된 공직에 한한 것이다. 이를 넘어서면 직권남용으로 위법이 될 수 있다. 불과 얼마 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법에 없는 인사권을 행사해서 처벌받은 마당에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아이러니다.” (검사 ㄱ)
“청와대가 곽 전 대표에게 (제출 의무가 없는) 검증동의서를 받았다면 직권남용이고, 검증동의서도 안 받고 곽 전 대표와 그 아들의 병적 등 개인정보를 확인했다면 그것이 바로 사찰”이라며 “과거 정부의 잘못된 관행을 적폐로 처벌하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할 사안이 아니다”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
애초 송고한 기사가 지면에 실리기 전, 청와대 쪽에 반론을 요청해 받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익명을 요구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다섯 가지를 말했다.
①청와대의 인사검증은 문제가 없다. 직권남용 주장은 지나친 형식논리다.
②그동안도 재산신고를 하는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을 해왔다.
③장관이 인사권을 갖더라도 장관은 대통령의 권한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것으로 문제가 없다.
④그 지적대로라면 모든 행정부처가 자체적인 인사검증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⑤따라서 국민 재산 600조를 운용하는 중요한 자리 후보자에 대한 청와대의 인사검증은 당연하다.
이게 다 맞는 말일까. 하나씩 따져보자.
“
①청와대의 곽 후보 인사검증은 문제가 없다”? 청와대의 인사검증이 정당한 것이려면 곽 후보가 공직자여야 한다. 국가공무원법 제32조를 보면 대통령은 “행정기관 소속 5급 이상 공무원 및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일반직공무원”의 임용권을 갖는다. 청와대의 인사검증은 대통령의 임용권을 보좌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영본부장은 지위가 다르다. 공직자윤리법상은 공무원에 준하는 신분을 갖게 되지만, 임면 절차가 규정돼 있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을 보면 국민연금과 고용계약을 맺은 전문가다. 국민연금법과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을 보면 알 수 있다. 국민연금법에서는 이 운영본부장을 ‘기금이사’라고 호칭한다.
<국민연금법>
-국민연금 이사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면하고, 기금이사를 포함한 이사와 감사는 이사장의 제청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이 임면한다. (제30조 2항)
-기금이사 후보 추천을 위해 공단에 이사장이 위원장, 이사가 위원을 맡는 기금이사추천위원회를 둔다. 이 추천위는 주요 일간신문에 후보 모집공고를 해야 하고, 적임자로 판단되는 후보를 조사하거나 전문단체에 조사를 의뢰할 수 있다.
-모집된 후보에 대해서는 보건복지부령에 정해진 기금이사 후보 심사기준에 따라 심의하고, 후보로 추천될 사람과는 계약 조건에 관해 협의해야 한다. 이사장은 협의 결과에 따라 기금이사 후보를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추천하고, 장관이 계약서안을 승인하면 이사장은 그 후보와 계약을 체결한다. 계약서 제출과 승인을 제청과 임명으로 본다. (이상 제31조)
-기금이사의 임기는 계약기간으로 한다.(제32조) 기금이사가 이사장과 체결한 계약에 정한 해임 사유에 해당하면 해임한다.(제36조 4항)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준정부기관의 상임이사는 준정부기관의 장이 임명하되, 다른 법령에서 상임이사에 대한 별도의 추천위원회를 두도록 정한 경우에 상임이사의 추천에 관하여는 그 법령의 규정에 따른다. (제26조의 2항)
요약하면, 기금이사 후보는 추천위원회가 ‘국민연금법 시행규칙’(제20조 기금이사 후보의 심사기준 등)에 따라 검증을 한 뒤 계약서를 작성해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제출하고, 장관이 이를 승인하면 곧 임명으로 간주한다. “임명권자는 국민연금 이사장이다. 이사장 이름으로 임명장이 수여된다.” (국민연금 관계자)
국민연금법과 그 시행령 어디에도 대통령이나 그를 보좌하는 민정수석실이 기금이사의 임면은 물론 인사검증에 관여할 수 있다는 조항이나 유추 해석할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
③장관이 대통령의 인사권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에 앞서 후보 검증은 추천위가 한다. 자체 인사검증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것이다. 그러니 “
④그 지적대로라면 모든 행정부처가 자체적인 인사검증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주장은 터무니 없다. 여느 부처도 모두 인사 평가와 검증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청와대 민정 수석비서관이 광범위한 인사검증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법령은 없다. 민정수석과 관련된 법규라고 해봐야, 정부조직법과 국가공무원법, 대통령령인 ‘대통령 비서실 직제’ 정도인데, 여기에도 ‘민정수석’이라는 직책은 언급돼 있지도 않다.
정부조직법-제14조(대통령비서실) ①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기 위하여 대통령비서실을 둔다. ② 대통령비서실에 실장 1명을 두되, 실장은 정무직으로 한다.
대통령비서실 직제- 제4조(보좌관 및 수석비서관) ① 대통령비서실에 보좌관 및 수석비서관을 둔다. ② 보좌관 및 수석비서관은 정무직으로 한다.
그런데 어떻게 민정수석실이 이런저런 인사검증을 해왔을까. 법조계에선 국가공무원법과 정부조직법에 있는 대통령 인사권, 지휘·감독권을 보좌하는 의미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거기에 대통령령인 ‘대통령비서실 직제’의 ‘특별감찰반’ 조항이 인사검증의 구체적 근거 조항 노릇을 한다. 이 특별감찰반을 민정수석이 지휘해 인사검증을 하는 구조다.
그런데 대통령령의 특별감찰반 조항을 봐도 청와대의 곽 후보 검증은 월권이라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제7조(특별감찰반) ① 대통령의 명을 받아 다음 각호의 자에 대한 감찰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대통령비서실에 특별감찰반을 둔다.
1. 대통령이 임명하는 행정부 소속 고위공직자
2.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공기관·단체 등의 장 및 임원
3. 대통령의 친족 및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자
특별감찰반이 하는 모든 감찰업무의 전제는 “대통령이 임명하는”이다. 그마저도 법적 근거가 취약하기 때문에 주요 공직 후보자에 대해서는 소위 ‘200개 항 질문지’로 알려진 검증동의서를 받는다. 개별 검증 항목이 내밀한 개인정보와 관련된 것이라, 반드시 검증동의서를 받아야만(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1항) 검증이 가능해진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
②그동안도 재산신고를 하는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을 해왔다”고 말했지만, 공직자 재산신고 내역의 검증 주체는 공직자윤리법상 공직자윤리위원회다. 청와대가 아니다. 민정수석실이든 인사수석실이든 이 자료를 가져다 보려면 반드시 재산신고를 한 공직자 본인의 ‘동의’를 받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 청와대가 그냥 가져다 본다면? 범죄(직권남용)가 될 수 있다.
“⑤국민 재산 600조를 운용하는 중요한 자리 후보자에 대한 청와대의 인사검증은 당연한 것”일까?
이 어리숙한 반론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대한 문제가 포착된다. 곽 후보의 병적 등 개인 신상정보를 민정수석실이 어떻게 입수했느냐는 것이다.
경우의 수는 몇 가지가 있다. 곽 후보가 제출했을 수 있다. (곽 후보는 전화에도 문자에도 답하지 않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런데 곽 후보는 기본적으로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민정수석실의 검증대상이 아니다. 그런데도 검증동의서를 제출하도록 했다면 곽 후보에게 의무에 없는 일을 시킨 것이 된다.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국민연금에 민정수석실이 요구해서 곽 후보의 병적과 재산, 납세 등 신상정보를 넘겨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곽 후보의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그런 일이 이뤄졌다면, 민정수석실과 국민연금 쪽 모두 개인정보보호법이 정한 ‘수집한 정보의 사용 목적 범위’외 활용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정보를 수집해 국정원 직원에게 넘긴 전 서초구청 간부 임아무개씨 사건이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그것도 아니고, 그냥 민정수석실이 알아서 곽 후보와 그 아들의 병적 기록을 병무청에서 가져다 봤다면?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수집했으니, 그 자체로 사찰이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뒤’를 캐다 어떻게 됐는지는 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정부 고위직을 지낸 법조인에게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해명을 들려주고 의견을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말대로라면,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법 규정과 상관없이 거의 모든 공직자나 공기업 임원의 인선에 개입하고 아무나 검증해도 된다. 그런 무소불위의 청와대와 민정수석이 국정농단으로 처벌받은 것이 엊그제인데, 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는 느낌이다. 가령 청와대가 국민연금 운용본부장의 인사검증을 직접 하고 싶으면 관련 법을 개정해서 권한을 규정해야 가능하다. 법에 없는 잘못된 관행을 적폐로 처벌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이런 관행을 정당화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말이 안 되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변명을 반박하다 보니 기사가 길어졌는데,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가 남았다. 청와대의 장하성 정책실장과 아직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인사수석실 관계자가 곽태선 후보에게 전화하고, 독려 면담까지 한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저 부적절한 처신에 불과한 것일까.
수사 경험이 풍부하고 법리에 밝은 검사에게 물어봤다.
“한마디로 (국민연금법에 나오는) 기금이사 추천위원회를 형해화, 무력화한 것이다. 국민연금법에는 신문 광고 내서 후보를 모집하고, 공단 내 추천위원회에서 심사·결정해 계약하라고 돼 있다. 청와대가 기금이사 인사에 개입할 근거가 없다. 그런데 장 실장과 인사수석실 관계자가 전화를 걸고 찾아가고 했다면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가 될 수 있다. 자기들이 생각하는대로 인사판을 미리 짜놓고, 정상적인 채용 절차를 무력화했다는 점에서 최경환 전 의원이 중진공 인사에 개입한 것이나 본질적으로 똑같다.”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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