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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3 09:52 수정 : 2019.11.24 16:02

“당 해체를 요구하는 진정성을 전달하려면 당연히 제 거취를 걸어야죠.” 자신의 불출마 선언과 함께 자유한국당 해체와 황교안 당대표, 나경원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의 총선 불출마를 요구한 김세연 의원이 지난 2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 의원의 사무실에는 개인 책상과 소파, 데스크톱컴퓨터가 없다. 김 의원은 “태블릿 피시와 휴대전화만 있으면 어디서든 충분하다”고 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토요판] 인터뷰
‘한국당 해체’ 요구한 김세연 의원

“상식적 목소리 전달하면
성찰커녕 되레 공격당해
극히 일부 민심만 대변할 뿐
수명 다한 상황 자각도 못 해”

“내년 총선 낙관하는 건 착각
조국 사퇴 이후 잇단 실수로
한국당에 대한 기대도 원위치”

“공천 공정성 담보하기 위해
여의도연구원장직 고수할 것”

“당 해체를 요구하는 진정성을 전달하려면 당연히 제 거취를 걸어야죠.” 자신의 불출마 선언과 함께 자유한국당 해체와 황교안 당대표, 나경원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의 총선 불출마를 요구한 김세연 의원이 지난 2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 의원의 사무실에는 개인 책상과 소파, 데스크톱컴퓨터가 없다. 김 의원은 “태블릿 피시와 휴대전화만 있으면 어디서든 충분하다”고 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지난 17일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의 총선 불출마 선언은 여러모로 정치권에 파문을 낳았다. 보수 정당에서 얼마 안 되는 개혁파의 퇴장 선언이라는 점에서도 그랬지만,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라며 한국당을 해체하자는 요구는 상당히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평소 차분하고 온화했던 정치인이 급진적이고도 과감한 해법을 제시한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인터뷰는 지난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822호 사무실에서 했다.

김세연 의원의 회관 사무실에는 크고 고급스러운 ‘의원님 책상’이 없었다. 푹신하고 안락한 소파도 없다. 책상이 놓이는 창가 앞자리에는 작고 소박한 흰색 원탁 하나가 둥그러니 놓여 있고, 위에는 각종 책과 보고서 등 자료가 수북이 쌓여 있다. 통상 소파가 놓이는 자리는 직사각형의 길쭉한 회의용 테이블이 차지하고 있다.

“18대 국회 때 처음 사무실을 배정받았을 때는 책상 등 집기와 사무용 컴퓨터 등이 세팅돼 있길래 그냥 그대로 지냈는데 생활해보니 제가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없더라. 그래서 자리 많이 차지하는 집기는 뺐다. 대신 공부나 회의를 할 수 있고, 손님과 마주 앉아 얘기도 할 수 있는 테이블로 바꿨다.”

방 안에는 데스크톱컴퓨터 본체나 모니터도 일체 눈에 띄지 않았다. 국회 본관에 있는 보건복지위원장실로 옮겼나보다 생각했다.

“굳이 데스크톱이 필요하지 않아서 컴퓨터를 아예 설치하지 않았다. 이것 두 개만 있으면 다 된다”며 양손에 하나씩 든 태블릿 피시(PC)와 휴대전화를 내보였다. ‘젊은’ 모습의 사무실을 둘러보면서 그가 내년 총선 불출마 선언을 넘어 한국당 해체를 주장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황 대표 공격하고 싶지는 않아”

―불출마 선언한 뒤 가족이나 주변 반응은 어떤가?

“가족은 제가 정치에 있는 걸 반겼던 게 아니고, 저도 정치에 있으면서 (생활을) 즐긴다거나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어서 (제 결정을) 반기더라.”

―당내에서는 반응이 엇갈린다. 결단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왜 먹던 우물에 침을 뱉느냐거나 내부 총질 아니냐는 반발도 있는데.

“먹던 우물에 침을 뱉으려는 의도는 없다. 제가 하고자 했던 얘기는 먹던 우물을 계속해서 먹을 수 없게 됐으니 우물을 새로 파자는 거였다.”

마침 인터뷰 직전에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청와대 앞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가기로 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그는 “안타깝게 생각한다”고만 말했다. “더 말하면 특정인을 비난하거나 공격하게 된다. 그러고 싶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지난 17일 총선 불출마 선언과 함께 자유한국당 해체를 요구한 김세연 의원이 20일 오전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불출마는 언제부터 고민했나?

“정치에 대한 어떤 실망감과 자괴감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지만, 지난주에 집중적으로 고심했다. 직접적인 계기는 30~40대 당협위원장 6명이 ‘당을 해체하고 기득권을 내려놓자’며 위원장직을 사퇴한(12일) 일을 겪으면서였다. 이들의 쇄신 요구에 당이 보였던 반응은 정말 실망스러웠다. 충정 어린 얘기에 대해 어떤 부분을 개선하면 좋을지 이들을 불러 얘기를 듣기는커녕 주동자를 색출하라고 했다는 말을 들으면서 이런 모습이 말기 증상이 아닐까 싶었다. 이런 것을 방치하면 (당이) 회생하지도 못하면서 길게 소멸의 시간을 밟을 텐데, 그게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강도 높게 문제제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지난 17일 발표한 김 의원의 ‘불출마 선언문’은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는 “저는 정치권에서 ‘만성화’를 넘어 이미 ‘화석화’되어 버린 정파 간의 극단적인 대립 구조 속에 있으면서 ‘실망-좌절-혐오-경멸’로 이어지는 정치 혐오증에 끊임없이 시달려왔음을 고백합니다. … 내일모레 50살이 되는 시점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니, 이제는 정치에서는 그칠 때가 되었습니다. 권력의지 없이 봉사 정신만으로 이곳에서 버티는 것이 참으로 어렵게 된 사정입니다”라는 내용으로 된 ‘불출마’에 관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유한국당 해체론’이다. 그는 “자유한국당은 이제 수명을 다했습니다. 이 당으로는 대선 승리는커녕 총선 승리도 이뤄낼 수 없습니다. 무너지는 나라를 지켜낼 수 없습니다.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입니다. 생명력을 잃은 좀비 같은 존재라고 손가락질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창조를 위해서는 먼저 파괴가 필요합니다. 깨끗하게 해체해야 합니다. 완전한 백지상태에서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라고 썼다.

―불출마 선언을 넘어 제1야당 해체론이라는 큼직한 주장을 제기했다.

“사실 두 번째 얘기를 하기 위해 첫 번째 얘기를 했다. 해체론만 하면 내부 총질이다, 흔들기다라는 틀에 박힌 반응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다. 이런 정도의 주장을 할 때는 제 거취를 걸고 해야 진정성이 전달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큰 문제를 제기하고, 조금이라도 구체화하려면 같은 생각을 가진 동료들을 규합해서 같이 행동할 수도 있었지 않나?

“그것도 좋은 방법이겠으나, 의원들이 모여서 집단적 목소리를 내면 또 하나의 계파싸움으로 몰고 갔을 것이다. 정당의 수명이 다했다는 진단에 맞는 처방은 해체인데, 그렇게 되면 이게 또 한 번의 이전투구가 반복되고 말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용기 있게 말하는 몇몇 의원들이 있기는 하지만 개혁 동력이 될 소장 그룹이 지금은 당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당의 수명이 다했다는 판단은 왜인가?

“정당은 민심 위에 서 있어야 하는데 (우리 당은) 극히 일부의 민심은 대변하는지 몰라도 적어도 집권이 가능할 정도로 중도까지 폭넓게 아우를 수 있는 기반을 지금 전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어떤 일을 해도 무조건 지지를 보내는 일부의 목소리 외에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을 전달하면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겠다는 반응이 아니라 자신들에 대한 공격으로 오인하고, 상식적인 시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내부 총질을 가한다. 외부 환경이 바뀌면 환경 변화를 인지하고 적응해서 기존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에 변화를 줘야 하는데 이런 연결고리의 첫 번째부터 마비돼 있다. 인지능력이나 감수성이 없고 공감능력이 없기에 환경 변화에 맞춰 생존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에 왔다. 그래서 수명이 다했다고 본다. 어떤 유기체라도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데 (우리는) 그 적응을 못 하지 않나.”

―김 의원의 인식은 절박하지만 당 지도부는 느긋한 것 아닌가.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거라고 낙관하는 것 같다.

“그 예측이 두세 주 전이었다면 맞는데 지금은 안 그렇다. 조국 사퇴 이후 한국당에서 연이은 실수가 계속 나오면서 한국당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원위치됐다.”

부잣집 아들 변화시킨 물리 선생님

3선의 그는 2008년 18대 국회 최연소 의원(36살)으로 여의도에 입성했다. 고향인 부산 금정에서 무소속으로 당선 뒤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에 입당한 그는 ‘민본21’ ‘경제민주화 실천모임’(경실모) 등 당내 소장 개혁파 모임의 간사를 맡는 등 개혁적인 행보를 해왔다. 국회 폭력을 추방하기 위한 국회선진화법을 만드는 데도 앞장섰다. 박근혜 탄핵 이후에는 유승민 의원 등과 함께 탈당해 ‘바른정당’을 만들어 활동하다가 다시 자유한국당에 복당(2018년 1월)했으며, 지난 3월부터는 당내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김세연 의원은 박근혜 탄핵 이후 만들어진 바른정당에서 정책위 의장 등으로 활동하다가 2018년 1월 자유한국당에 복귀했다. 사진은 2017년 12월21일 국회에서 열린 바른정당의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당시 유승민 대표와 얘기하고 있는 김세연 원내대표 권한대행의 모습이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한국당이 보수 정당이긴 해도 18대 국회 때는 ‘민본21’, 19대 때는 ‘경실모’ 등의 소장파 모임이 있는 등 내부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다. 그런데 왜 지금은 존재 자체가 민폐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건강성을 잃게 됐나?

“탐욕 때문이다. 그로 인해 18대 총선 때는 친이에 의한 친박 학살, 19대는 친박에 의한 친이 학살이 이뤄졌다. 게다가 지난 20대 총선 때는 친박에 의한 친박 소장파 학살이 있었다. 정당의 건강함의 원천인 다양성이 파괴되면서 지금 결과는 시간문제였을 뿐 예정돼 있었다. 그것을 타개하고자 바른정당을 창당하는 등 여러 노력이 있었으나 결과는 이렇게 됐다. 초선 때 보고 접했던 것은 살아 있는 권력에도 위축되지 않고 바른 말을 하던 정당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수명을 다한 상황조차 자각을 못 하는 정당으로 변했으니 참담하다.” 그의 출신 배경은 개혁적인 스탠스와 정반대다. 그는 조부가 창업한(1945년) 알짜배기 기업인 동일고무벨트㈜의 대주주로, 올 초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신고한 재산 총액만 해도 966억원(2위)에 이른다. 집안 분위기도 보수적이다. 금정에서 5선을 지낸 선친(고 김진재 의원)과 이명박 정부 때 국무총리를 역임한 장인(한승수) 모두 보수파였다.

―부잣집 외아들이고, 서울대(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는 등 이른바 스펙도 좋다. 시장 지상주의적 보수파가 되기 쉬운 환경에서 자랐는데 보수 정당 내 개혁파로 자리매김했다.

“대단히 잘 정립된 이론이나 철학적 바탕 위에서 의정 활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판단을 하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정치권에 와서 좋은 동료들, 윤평중 교수 등 훌륭한 학자들과 만나 고민하고 공부하면서 생각이 차츰 정리돼갔다. 지금 보면 저는 보수주의적 자유주의자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극단주의는 안 되겠다, 가능하면 공동체가 조화롭게 가되 개인이 존중받는 관점에서 사물을 봐야겠다는 생각과 관점을 가지고 있다.”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끼친 성장기의 기억이 있다면?

“고교(금정고) 1학년 때 자가용으로 등교를 했다. 원래는 학교에서 약간 먼 데서 내려 걸어가곤 했는데 어느 날 늦어서 교문 앞에서 내렸다. 물리를 가르치던 선생님(신수호)이 보고는 “세연아, 돈이 없어 점심을 못 먹는 친구들도 생각해보거라”고 꾸짖었다. 첫 이틀 동안은 수치심과 충격에 온몸이 화끈거렸다. 곰곰이 따져보니까 저는 혜택을 많이 받고 자라는데 버스로 등교하는 친구들은 그런 저를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부끄러웠고, 다른 사람들의 처지를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가장 큰 가르침 중 하나였다.”

지난 20일 오전 자신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 그의 방에는 커다란 책상 대신 작은 원탁과 회의용 긴 테이블만 있다. 또, 데스크톱컴퓨터가 아예 없다. 컴퓨터를 대신하는 태블릿 피시가 그의 왼손에 들려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여의도 탈출은 아닌 듯

한국당에 ‘당 해체’라는 폭탄을 던진 그는 “원래 제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갑니다. 비록 공적인 분야에 있지 않더라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공적 책무감을 간직하면서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데 미력이지만 늘 함께 노력하겠습니다”고 밝혔다. 그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딜까.

―공적인 분야가 아니라면 사적 영역으로 가는 건가?

“원래 있던 데로 돌아간다는 것은 다시 시민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내년 5월29일까지 국회의원으로서 의무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계획 외에 그 이후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그 후를 생각하면서 일을 하면 판단이 흐려진다.”

―사업가로 돌아가나, 아니면 공적 시민으로서 활동하나?

“어느 특정한 한 가지를 선택할지 아니면 폭넓은 선택지 속에서 함께할지는 아직 생각을 안 해봤다.” ―당적은 유지할 건가?

“현재로선 그렇다.”

딱 부러진 답을 내놓진 않았지만, 훌훌 털고 여의도를 영원히 떠나겠다는 의미가 아닌 것은 확실해 보였다. 여의도연구원장직부터 내려놓으라는 당내 일부의 요구에 대해 “마지막 순간까지 직무에 최선을 다하겠다. 내년 총선 때 여론조사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남아 있어야 한다”고 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뭐가 됐든, 겸손하고 착한 것으로 소문난 정치인 김세연의 정치 근육이 요즈음 더 단단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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