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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21 09:31 수정 : 2019.09.21 10:53

[토요판] 인터뷰
시카고 아시안 팝업 시네마 창시자 소피아 웡 바치오

수십년 된 시카고 국제영화제 있지만
프랑스 등 유럽 영화가 주류…
미국의 아시아 문화 이해 제자리

아시아 영화 소개하는 작은 영화제
소피아 은퇴자금 털어 2015년 만들어
관객과의 대화에서 꽃피는 문화 교류

소피아 웡 바치오는 시카고 아시안 팝업 시네마를 2015년 9월에 시작하며 20년간 품었던 영화 프로그래머의 꿈을 꽃피우고 있다. 미국 시카고에 있는 한국어 방송과 인터뷰 중인 모습. 아시안 팝업 시네마 제공

시카고 아시안 팝업 시네마는 2015년 9월에 문을 열어 올해 아홉번째 시즌을 맞은 신생 영화제다. 한 해 두 차례에 걸쳐 30편 안팎의 아시아 영화를 소개하는 작은 영화제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 영화제에 은퇴자금을 쏟아부으며 제2의 인생을 꾸린 소피아 웡 바치오 때문이다. 홍콩 출신인 소피아는 중국 베이징에서 무역업에 종사하던 1994~1996년 자막을 넣은 중국 영화를 격주로 상영할 만큼 영화를 사랑했다. 그때 품었던 영화 프로그래머의 꿈이 20년이 지나 꽃을 피우고 있다.

“은퇴할 나이가 다가오면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여전히 에너지가 넘쳤지만 남을 위해선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았다. 당시 시카고에선 아시아 영화를 극장에서 볼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선택한 영화를 관객들과 함께 즐기는 것, 내가 옳았다는 걸 확인받는 그 순간을 좋아했다. ‘그래, 아시아 영화제다’ 싶었다.”

2015년 9월에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영화를 미국에 소개하는 작은 영화제 ‘시카고 아시안 팝업 시네마’를 창설한 소피아 웡 바치오(66)는 은퇴자금을 털어 영화제를 만든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그는 ‘홍콩 시네마 1세대’라고 불리는 영화 편집감독 아버지와 영화배우 어머니 덕분에 영화 편집하는 암실과 촬영하는 현장을 드나들면서 자랐다. “환한 조명 아래에서 예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감독의 ‘액션’이라는 소리에 맞춰 움직이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집에 찾아오는 영화인들, 그들의 열정과 창의력, 그리고 냉철한 자기비판도 곁에서 지켜봤다. 그 분위기를 좋아했고 그리워했다.”

중국 베이징과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미국 뉴욕과 시카고 등에서 비즈니스 활동을 하면서도 영화와의 인연을 줄곧 맺어왔던 이유다. 마침내 2015년 5월 ‘소피아의 선택’(Sophia’s Choice)이라는 비영리단체를 설립하고 시카고 아시안 팝업 시네마를 시작했다. 해마다 두 차례씩 열리는 이 영화제는 시즌 1에 <감시자들> 등 8편의 한국·중국·일본 영화를 소개했는데, 이번 시즌 9에서는 필리핀, 타이(태국)를 포함한 아시아 5개국의 영화 17편을 초대했다. 이들 영화는 지난 9월10일부터 한달간 시카고 중심가에 있는 ‘에이엠시 리버이스트’(AMC River East) 영화관 등에서 상영되고 있다.

시즌 9를 맞은 시카고 아시안 팝업 시네마는 한국 좀비 코미디 영화 <기묘한 가족>을 개막작으로 선정했다. 지난 10일 시카고 시내 중심가인 에이엠시 리버이스트 영화관에서 영화 상영 뒤 이민재 감독(가운데)이 관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아시안 팝업 시네마 제공
아시아 영화가 미국에 필요한 이유

올해 개막작은 지난 2월 개봉한 한국의 코미디 영화 <기묘한 가족>(감독 이민재)이다. 이 영화는 조용한 시골 마을에 물리면 젊어지는 좀비인 ‘쫑비’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을 그린 작품이다. 소피아는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다루면서도 가족 관계, 10대의 사랑 등을 잘 녹여냈다. 좀비가 나오지만 코미디를 표방한 것도 이색적이라 일찌감치 개막작으로 점찍었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영화제 사무국으로 활용하는 자택에서 소피아를 만났다.

―아시아 영화를 시카고에 소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미국이 다양한 아시아 영화를 접하면서 아시아 문화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흥미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시카고 주변 대학의 영화과 학생들과 교육자, 전문가들이 아시아 영화계와 연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마지막으로 보다 많은 외국인들이 시카고를 방문하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시카고 국제영화제가 이미 1964년부터 열리고 있지 않은가?

“시카고 국제영화제에서 나도 2000년부터 7년간 일했지만, 당시 아시아 영화를 많이 초대하지 않았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영화가 주류였다. 좀 더 많은 아시아 영화가 시카고에 소개되고, 이를 통해 미국인들이 아시아 문화를 배우기를 바랐다. 아시아 아메리칸 인구가 늘어나는데 아시아 문화에 대한 이해도는 제자리걸음이라고 판단했다.”

―현재는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의 활성화로 아시아 영화를 보기가 훨씬 수월해졌는데.

“환경이 바뀐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는 애초에 극장에서 상영되도록 만들어졌다. 집에서 혼자, 티브이로 영화를 보는 것과 극장에서 여러 명과 함께 영화를 즐기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경험이다. 우리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90%는 미국 영화관에서 선보인 적이 없는 새로운 아시아 영화다. 특히 우리는 영화 상영 뒤 관객이 감독·배우 등과 질의응답하는 시간을 꼭 갖도록 한다. 초청인사와 관객의 호흡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에도 감독·배우·평론가 등 16명을 초대했다.”

―관객은 주로 미국인인가?

“그렇다. 관객층은 평균 40살 안팎이고 주로 수·목요일에 시카고 시내에서 상영해서 직장인이 대다수다. 아시아인으로 보이더라도 미국에서 태어난 이민 2세, 3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모의 나라에 대해서 배우고 싶어서 영화제를 찾는 것이다. 때로는 부모나 조부모와 함께 오기도 하는데 드문 경우다. 관객들은 서양과 동양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보며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다. 영화제 때마다 설문조사를 하는데 만족도가 높다.”

―영화를 선정할 때 기준은 무엇인가?

“영화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고려한다. 그 장르가 코미디든, 스릴러든 감독의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영화관을 나설 때, 그 영화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영화를 고를 때 스토리를 먼저 읽고 흥미가 생기면 시나리오와 영화를 본다. 한 국가에서 좋은 코미디 영화를 골랐다면 다른 국가에선 같은 장르를 선택하지 않는다. 17편의 아시아 영화가 관객을 웃기고, 울리고, 무섭고, 감동적인 모든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하게 선택한다. 다만 폭력성·선정성이 심한 영화는 피하는 편이다.”

소피아는 영화 선정을 ‘패션’에, 영화제를 ‘박람회’에 비유했다. 멋진 옷을 처음 입으면 다른 사람들이 따라 하며 유행이 되듯이 그가 선택한 아시아 영화가 화제를 얻으면 흥행하기 때문이다. 또 자동차 등을 박람회에 전시할 때처럼 영화를 선보이고 관심을 끌어모으는 게 영화제의 속성이라고 했다. 그는 이 작업을 1994년에 처음 시작했다.

소피아 웡 바치오가 영어 자막을 넣은 중국 영화를 중국 베이징 주재 외국인에게 상영하는 내용을 보도한 1994년 4월 중국 언론 보도. 소피아 제공
영화 선장은 ‘패션’ 영화제는 ‘박람회’ 닮았다

홍콩에서 공부를 마친 뒤 소피아는 베이징에 있는 스위스 다국적기업과 미국의 밀을 홍보하는 미국무역협회에서 일해왔다. 1990년대 초에 베이징에는 외국인이 많았는데 그들은 중국 영화를 전혀 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영어 자막을 넣은 중국 영화를 상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피아는 국제사회에 중국 문화를 알리려면 중국 영화를 소개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베이징에 있는 외국인 친구, 동료들을 극장에 초대해 직접 번역한 영어 자막을 붙인 중국 영화를 상영하기로 했다. 그 행사를 ‘소피아의 선택’이라고 이름 붙였다. 격주로 열린 중국 영화 상영에 최대 200명이 몰려들었다.

“처음에는 영화를 담당하는 중국 관료가 전화해 ‘누가 그럴 권리를 줬냐’고 엄포를 놨다. 나는 사적 행사라고 설명하면서도, ‘내가 당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라고 맞섰다. 중국 영화를 외국인에게 홍보하고 있으니까. 실제로 천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가 크게 흥행했지만 그 영화를 본 외국인은 매우 드물었다. <패왕별희>에 영어 자막을 넣고 아역 배우를 초대해 상영했다.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데 질문이 쏟아졌다. 아역 배우들도 그 자리에서 오페라 노래를 부르며 호응했다. <패왕별희> 상영 이후에는 오히려 중국 영화 수출입사와 연계돼 2년간 격주로 중국 영화를 상영할 수 있었다. 관객이 외국인이니까 작은 영화제랑 비슷해 영화 수출입사도 좋아했다.”

―국제영화제에는 언제 처음 참여했나?

“1990년대 후반 시드니에 머물 때 중국·홍콩 영화 회고전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1999년에는 이탈리아 우디네에서 열리는 극동영화제에서 홍콩 자문위원이 돼달라고 했다. 쿵후 코미디로 유명한 홍콩 배우 스티븐 차우(주성치)와 함께 처음 극동영화제에 가서 통역 겸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그후 20년간 매년 4월에 우디네를 방문했고 2000~2007년에는 시카고 영화제에서 일했다. 2015년 시카고 아시안 팝업 영화제를 시작할 때도 아시아 영화인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한국 영화는 어떤 특징이 있나?

“한국 영화는 점점 블록버스터로 향하고 있다. 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역사적 영화가 강세다. <1987>이, <생일>이 그렇다. 상업적으로 성공하면서도 스토리가 탄탄한 영화가 돋보인다.”

이 영화제에 초청인사로 참석한 평론가 달시 파켓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한국 영화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더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시카고 주재 한국총영사관이 이 영화제의 공식 후원자로 나서기도 했다. 영화발전기금으로 5천달러(약 600만원)를 지원한 것이다. 덕분에 영화제 책자에는 한국영화 100주년 로고가 붙었다. 김영석 시카고 총영사는 “시카고 시내 중심에서 상영해 현지인 참여와 관심이 높은 아시안 팝업 시네마에 한국 영화가 더 많이 상영되면 미국 사회에 한국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한국 영화는 개막작 <기묘한 가족>을 포함해 2008년 첫 국민참여재판을 다룬 <배심원들>, 1951년 한국전쟁 때 최대 규모의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결성된 전쟁포로 댄스단을 그린 <스윙키즈> 등이 초대됐다.

올해부터 시카고 주재 한국총영사관이 아시안 팝업 시네마의 공식 후원자로 나섰다. 올해 초청돼 참여한 한국 영화인들과 김영석 총영사(가운데)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아시안 팝업 시네마 제공

“한국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

―앞으로 영화제가 어떻게 발전하길 바라나?

“5년이 됐으니 우선 파티를 열어야겠다.(웃음) 매 시즌이 거듭할수록 영화제는 보완되고 있다. 더 많은 영화, 초청인사가 오고 있다. 실무적으로는 인터넷 마케팅과 영화제 운영을 전담할 전담 스태프를 고용하고 싶다. 현재는 내가 전방위적으로 영화제를 꾸려나가고 자원봉사자들이 일을 돕는 수준이다. 영화제를 한 해 두번에서 한번으로 바꿔서 집중력을 높이려 한다. 그러려면 아시아 국적항공사의 지원과 더 많은 후원금이 필요하다. 10주년이 됐을 때는 영화제를 이어갈 ‘새로운 소피아’가 탄생하길 기대한다. 앞으로 5년간 아시아 영화와 문화를 사랑하고 영화제를 이끌 리더십을 갖춘 인물을 열심히 물색할 생각이다.”

시카고/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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