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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20 09:29 수정 : 2019.07.22 14:12

[토요판] 인터뷰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벤 파인 교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의 힘과 역할 재편하지 않고
더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 흘러가”

“브렉시트 찬성은 극우파와 지배층
반이민 반대=잔류 옹호인 것 아냐
새로운 정치적 공간 만들어내야”

“정치가 정당이나 노조가 아닌
미디어 노출에 의해 지배돼
코빈 정책은 과거 같으면 중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연구해온 벤 파인 전 런던대 동양아프리카연구대학(SOAS) 교수가 지난 16일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국제회의실에서 ‘경제학과 간학문성: 한 걸음 앞으로, N 걸음 뒤로?’란 주제로 초청 강연을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벤 파인 전 런던대 교수가 지난 14일 방한했다. 파인 교수의 제자인 김공회 경상대 교수(경제학)는 파인 교수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세번의 강연에 이어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두 경제학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 경제의 변화, 영국의 브렉시트, 한국의 경제정책을 진단했다.

벤 파인(71) 전 런던대 동양아프리카연구대학(SOAS) 교수(경제학)는 오랫동안 정치경제학과 마르크스주의를 강의한 석학이다. 1970년대 서구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르네상스기를 대표했던 학자로, 그리고 국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대부’ 격인 고 김수행 서울대 교수의 지도교수로 국내에선 알려져 있다. 그는 나의 지도교수이기도 하다. 김수행 교수가 번역 소개한 그의 초기 대표작 <현대 정치경제학 입문>(Rereading Capital, 로런스 해리스와 공저, 1979년)은 그 간결성과 깊이 덕분에 아직까지도 세계적으로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서 파인 교수는 <자본론>에 머무는 대부분의 그의 동료들과는 구별되는 길을 걸어왔다. 첫째, 그는 적극적으로 마르크스의 경제사상을 현대화하고, 또 그것으로써 오늘의 자본주의 경제를 비판적으로 설명해왔다. 둘째, 경제학의 현 상태를 고찰하고 경제학이 사회과학 전반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를 파헤쳐왔다. 또 사회과학 여러 분야에 흩어져 있는 비판적 사회과학자들을 규합해 경제학에 대항하면서 경제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지식을 생산하고자 했다. 최근 프랑스 릴에서 8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연례학술회의가 열린 ‘정치경제학 진흥을 위한 국제 발의’(IIPPE)가 바로 그런 노력의 산물이다.

지난해 말 은퇴한 파인 교수가 지난 14일 케이팝을 좋아한다는 딸의 졸업 기념 여행차 한국에 왔다. 그는 한국에 머무는 5박6일 동안 ‘경제학과 간학문성: 한 걸음 앞으로, N 걸음 뒤로?’(16일, 서울대), ‘자본론 150주년 이후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전망’(16일, 홍대 근처 행사장), ‘금융화에서 신자유주의로’(18일, 고려대) 등 세번의 강연을 했다. 경제학의 현황을 비판적으로 다룬 첫번째 강연이 열린 지난 16일 서울대에서 파인 교수와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교수가 마주 앉았다. 이 교수는 안식년을 맞아 현재 서울대에서 연구 중이다.

MBA에서 대안경제학 가르치는 이유

이강국(이하 이) 먼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학의 현황에 대한 당신의 총평을 듣고 싶다.

벤 파인(이하 파인) 주류경제학자라면 ‘경제학 자체는 문제없고, 우리가 전보다 더 현실적이기만 하면 된다’고 답할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석 경제학자였던 올리비에 블랑샤르가 그랬다. 기존 모형을 약간 수정하고 경험적 연구로 보완하며 인간 행동과 관련된 몇 가지 가정을 추가하면 경제학은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어땠나? 단순히 회복이 안 된 게 아니다. 더 큰 위기가 닥칠 위험에 우리는 놓여 있다. 특히 금융의 힘과 역할을 재편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경제와 경제정책이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 나는 우려스럽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성과가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이나, 주류경제학 내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지 않나? 폴 크루그먼이나 블랑샤르 같은 케인스주의자들은 긴축 대신 재정 확대 정책을 제대로 썼다면 세계경제는 현재보다 훨씬 나았으리라고 주장하는데.

파인 나도 모든 주류경제학이 같다는 건 아니다. 지난 50여년 동안 케인스주의와 통화주의 경제학은 많은 차이를 보여왔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세계경제의 가장 두드러진 문제였던 금융화나 기술혁신, 소득분배 등을 보라. 경제학은 이들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이들은 미시인가, 거시인가? 우리가 현재 경제를 추동하는 게 금융화라고 믿는다면, 완전히 새로운 질문들이 제기된다. 이를테면 그러한 (금융적) 팽창정책을 추구하는 게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민간 금융 부문이며, 그 결과 버블이 형성되고 새로운 위기의 가능성이 움트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주류경제학의 틀로 다루기는커녕 문제제기 하기도 어렵다.

주류경제학이 그렇게 무기력하다면 대안은 뭔가?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 경제학 내에서 여러 진보적인 움직임이 있긴 했지만, 그 성과에 대해서는 아직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긴 어려워 보인다.

파인 영국 이야기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치경제학’이라는 이름이 부쩍 많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모두 경제학 바깥의 일이다. 영국에서 대안적인 경제학이 가장 활발하게 가르쳐지고 있는 곳이 어디인 줄 아나? 바로 엠비에이(MBA)를 하는 비즈니스 스쿨, 경영학과 등이다. 역설적이지 않나. 여러 사회과학 분과에서도 그러한데, 왜냐하면 이 모든 분과에서는 세계화, 신자유주의, 금융화 같은 것들에 관심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주제들은 경제의 구조 재편과 그 재생산방식 변화에 관한 질문들을 내놓는다. 이는 정치경제학이 아니고서는 다룰 수가 없는 것들이다. 이에 비해 주류경제학은 노상 균형이니 비교우위니 하는 것들이나 논하고 있지 않는가. 이렇게 경제학자들은 현실로부터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다.

벤 파인 전 런던대 교수와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교수가 지난 16일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앞에서 만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 경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브렉시트는 좌파 정치의 실패 탓?

좋다. 영국 쪽으로 화제를 옮겨보겠다. 아무래도 초미의 관심사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다.

파인 예외도 많지만 크게 봐서 브렉시트 찬성자는 둘로 나뉜다. 하나는 노동계급 내에도 큰 기반을 갖는 반이민·인종주의 성향의 극우파들이고, 다른 하나는 영국의 위대함을 주장하는 엘리트 지배층이다. 기본적으로 여기에 반대한다는 취지에서 나는 브렉시트에 반대한다. 하지만 곧장 덧붙일 것은 ‘브렉시트 대 브리메인(영국의 유럽연합 잔류)’이라는 틀이 현재 모든 이슈를 흡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를테면 반이민에 대한 반대가 꼭 브리메인 옹호라는 형태로 드러날 필요는 없다. 영국의 진보진영은 반이민 반대를 위한 새로운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브렉시트 사태가 어디로 귀결되든 간에 현재의 혼란은 블레어-클린턴이 상징했던 ‘제3의 길’ 유의 서구 리버럴 좌파 정치세력의 실패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영국의 (노동당 당수인) 제러미 코빈이나 미국의 (버몬트 지역 무소속 상원의원인) 버니 샌더스 같은 인물을 중심으로 극좌적 입장이 부상하는 것은 이러한 실패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움직임을 어떻게 보나?

파인 먼저 경제가 어떻게 변화·재편되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게 금융화다. 신자유주의도 금융화를 중심으로 이해될 수 있다. 무엇보다 금융화의 결과 경제가 다양해지고(variegated), 휘발적이며(volatile), 취약해졌음(vulnerable)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신자유주의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국가의 후퇴(roll-back)’다. 국가의 경제 개입이 줄어들거나 그 양상이 민간자본을 지원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이는 국가에 대한 진보적 압박이 후퇴했음을 보여준다. 경제정책의 입안과 집행에서 누구의 이해관계가 대표되느냐가 중요한데, 지금은 산업 및 금융 자본의 이해관계가 대표되고 있다. 끝으로, 정치 과정도 변화하고 있다. 정당이나 노조 같은 제도를 통해 정치가 이뤄지는 게 아니라 미디어(에의 노출)에 의해 정치가 점차 지배당하고 있다. 이에 따라 특정한 개인이 단숨에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얻는 일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진단이다. 어쨌든 그런 코빈을 중심으로 얼마 전만 해도 생각지도 못했던 급진적인 경제정책도 제안되고 있지 않는가?

파인 코빈 진영에서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의 재국유화, 국가의 전략적 투자를 전담할 투자은행의 설립,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한 기본생계 확보를 위한 조처들 등 다양한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다만 짚고 넘어갈 점은 이런 정책들이 과거 케인스주의 시절이었다면 ‘중도’로 취급될 만한 것들이라는 점이다. 사회주의적이라거나 급진적이라고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40~50년 사이에 정치적·경제적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많이 이동했는지가 잘 드러난다. 그 연장선에서, 솔직히 이런 제안들이 실현돼도 별 차이를 만들어내지는 못하리라 본다.

너무 비관적인 것 아닌가?

파인 중요한 것은 경제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반복하자면,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금융이다. 금융이 경제 전체, 사람들의 삶의 재생산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에서 주거취약자를 위한 주거바우처가 크게 늘어났다. 보통은 주거복지 확대라며 박수를 받을 일인데, 실제 주거바우처는 민간시장에서 주택을 소유한 개인과 기업을 북돋아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주택소유자에게 소득이 환류하면 이들이 더 많은 주택을 구매하므로 주택가격이 오르고, 더 고약하게는 이 모든 과정이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지원이 될 뿐 아니라 여기서 발생한 금융적 청구권이 금융기관에 의해 2차, 3차로 복제(금융화)된다.

금융화, 금융의 힘을 강조하는데, 그런 추세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규제하면 되나?

파인 아주 중요한 질문이다. 규제와 관련해 영국중앙은행의 수석 경제학자 앤디 홀데인이 한번은 금융시스템을 적절히 규제하려면 7만명의 인력이 필요하다고 계산한 적이 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식의 규제가 가능할까? 만약 그게 가능하다고 해보자. 규제하지 말고 그냥 국가가 운영하면 안 되나? 비슷한 맥락에서 앞의 주거바우처를 다시 볼 수 있다. 바우처를 제공함으로써 금융화를 증진시키고 또 그것을 규제하느니 애초 그 바우처로 사회주택을 지으면 어떤가? 결국 우리가 금융화라는 구조적 변화를 심각하게 포착하는 순간 금융(화)의 통제라는 문제도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는 셈이다.

소득주도성장, 총수요 증대로 이어질 조처 필요

바람직하다고 해도 실행하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그만큼 금융화된 자본주의, 신자유주의가 강력하다는 의미도 될 것 같다. 사실 한국에서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케인스주의적 성격의 정책도 실행이 어려운 형편이다. 그마저도 시간이 지날수록 후퇴 중이기도 하고. 당신은 한국인 제자도 적지 않은데, 한국의 경제정책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

파인 두 가지 코멘트를 하고자 한다. 첫째, 과거에 비해서야 못하겠지만 여전히 한국은 서구의 ‘선진국’에 비하면 진보적 개입의 여지가 많다고 생각한다. 다만 재벌 같은 기업들이 금융시장과 맺는 관계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둘째, 나는 기본적으로 소득주도성장이나 재분배 같은 정책에 긍정적이다. 그러나 그런 정책은 늘 패키지로 시행돼야 한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늘어난 소득(임금)이 총수요의 증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적절한 추가조처가 취해져야 한다. 정리 김공회 경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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