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인터뷰
한국영화 평론가 달시 파켓
‘기생충’ 영어 자막 번역으로 주목
25살에 한국 와 한국영화에 매료
누리집 만들고 평론·번역 작업
독립영화 위한 ‘들꽃영화상’ 만들어
“1990년대가 한국영화 최대 전성기
지금은 투자자 입김 너무 세져
독창성 없이 비슷한 영화만 나와
감독의 스타일 존중 분위기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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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의 입김이 강해져서 한국영화만의 독창성이 사라지고 있다. 특히 젊은 감독들이 자기만의 스타일을 인정받는 게 너무 어렵다.” 한국영화 전문가인 달시 파켓은 지난 25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달시 파켓이 인터뷰를 마친 뒤 과거 영화사들이 몰려 있었던 서울 충무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종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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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기생충>이 칸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으면서 자막 번역을 했던 달시 파켓이 주목을 받고 있다. 미묘한 우리말 대사를 감칠맛 나는 영어로 옮기는 그는 오래전부터 한국 영화계에서 번역가로 유명하다. 그의 본업은 영화평론이다. 20년 넘게 한국영화를 비평하고 외국에 알리는 일을 해왔다. 달시 파켓을 지난 25일 오후 서울 충무로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요즘 너무 바빠서 몸이 열 개쯤 됐으면 좋겠어요.”
영화 <기생충>의 영어자막 번역을 담당했던 달시 파켓(Darcy Paquet·47)의 요즘 스케줄은 거의 인기 연예인 수준이다. 그러잖아도 대학교수(부산아시아영화학교)에 영화평론가, 번역가 등으로 일이 많은데 <기생충>이 뜨는 바람에 그도 덩달아 바빠졌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서울 충무로 근처 한 카페에서 겨우 시간을 냈다는 그를 만났다.
-칸에서 <기생충>이 대상을 받는데 숨은 공로자라는 평가가 많다.
“그런 평은 오버지만 기분은 좋다. (웃음) 외국인들에게 영화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는 자막 번역이 중요하다. 하지만 <기생충>은 영화를 너무 잘 만들었다. 대상을 받은 것은 100% 감독의 공이다.”
-자막 번역은 빛나는 일은 아닌데.
“작업이 힘들고 돈도 별로 못 받는다. (웃음) 그러나 일 자체가 재미있는 데다 중요한 일이라 생각해 계속한다. <기생충>은 이번에 일부 영화관에서는 영어자막을 넣고 상영하는데, 다른 영화도 국내 상영 때에 최소한 영어와 중국어 자막을 넣었으면 좋겠다.”
<기생충>이 칸에서 상영될 때 웃음코드가 있는 장면에서는 현지 관객들도 한 치의 오차 없이 함께 웃었다. 영화 내용과 흐름이 자막을 통해 관객들에게 정확하게 전달됐기 때문이었다. 서울대 문서위조학과를 외국인들에게 친숙한 ‘옥스퍼드대’로 바꾸고, 대만 카스텔라는 ‘타이완 케이크숍’, 수석은 ’랜드스케이프 스톤’, 짜파구리는 라면과 우동을 합친 ‘Ramdong’(Ramen+Udong)으로 옮겨 내용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말 배우려 한국영화 본 게 출발점
-<기생충> 번역작업을 할 때부터 칸에서 상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하던데.
“그렇다. 참 잘 만든 영화여서 느낌이 들었다. 이 영화는 딱 봉준호 영화인데 그의 다른 작품들과는 또 다른 새로움이 있다.”
-영화가 흥행에서도 성공하고 있다. (27일 기준 누적 관객 수 930만명)
“이 영화는 진지함뿐 아니라 재미까지 고루 갖췄다. 보통 칸영화제 대상을 받은 작품들은 진지하긴 해도 상업적으로 흥행하는 경우가 적은데 <기생충>은 외국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2주 전에 개봉된 프랑스에서는 초기에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했다. 프랑스에서 한국영화가 이렇게 인기 있는 것은 처음이다. 미국은 오는 10월에 개봉되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홍보가 중요하긴 하지만, 미국 사람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인 것은 확실하다.”
-봉준호 감독은 그의 데뷔작인 <플란더스의 개>(2000년)때부터 만났다고?
“당시 영진위(영화진흥위원회)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플란다스의 개> 자막 번역에 대한 감수를 제작사에서 부탁해왔다. 그때 영화제작사에서 처음 만났다. 봉 감독은 두 번째 작품(<살인의 추억>) 때는 전화를 걸어 직접 번역을 부탁했다. 그와의 작업은 내가 더 하고 싶었었는데 그때는 정말 기뻤다.”
-그동안 <아가씨> <괴물> <곡성> 등 약 150편의 영화 자막을 번역했다. 여러 감독을 만나봤을 텐데 봉준호 감독만의 독특함이 있나?
“그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어떻게 하려는지를 확실히 알고 있다. 영화를 찍기 전에 이미 모든 장면의 디테일까지 머릿속에 다 있는 것 같다. 촬영 중간에 거의 바꾸지 않는다. 그는 영화의 구조를 완벽하게 짠다. 자막 번역에서도 그런 구조와 흐름을 중시한다. 가끔 자기 의견을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나한테 맡기고 감정이나 의미가 비슷하면 번역을 내 마음대로 바꿔도 괜찮다고 한다.” 달시 파켓이 한국영화와 정식으로 인연을 맺은 것은 20년 전인 1999년 웹사이트인 ‘코리안필름’(koreanfilm.org)을 열면서부터다. 지금은 영진위에서 영어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지만, 당시로써는 외국인이 볼 수 있는 유일한 한국영화 사이트였다. 1997년 영어 강사로 한국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기 위해 한국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한국말을 잘 못해서 내용을 다 알 수는 없었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 <처녀들의 저녁식사>, <넘버3> 등이 내뿜는 에너지에 푹 빠졌다. “이런 좋은 영화들을 전 세계 한국영화 팬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자비를 들여 사이트를 오픈했다. 반응이 뜨거웠고, 몇 년 뒤 영국 영화잡지인 <스크린 인터내셔널>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국내에서도 <씨네21>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는 등 본격적인 영화평론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코리안필름’도 계속 운영하고 있던데 잘 되나?
“예전에는 하루 방문객이 6천명에 이를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고, 바빠서 리뷰도 자주 못 올린다. 많은 액수는 아니나 돈이 들고 시간도 없긴 하지만, 외부 눈치를 보지 않고 비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사이트라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그가 한국영화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원(미국 인디애나 주립대) 시절이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신으로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던 그는 어릴 때부터 연극과 영화, 사진 등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원 시절에는 친구들과 함께 여러 나라의 영화를 함께 본 뒤 토론을 하곤 했다. 그때 한국영화로서는 <서편제>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처음 봤다. 대학원을 마친 뒤 장차 체코 등 동유럽에서 살 계획이었다. 그러기 전에 2년 정도 아시아를 경험하고 싶었다. 일본을 갈까 한국을 갈까 고민하다가 대학원 때 한국인 친구들을 많이 알게 돼 한국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국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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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시 파켓은 그동안 영화에도 여러 번 출연했다. 사진은 2012년 개봉된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에서 연기 중인 달시 파켓.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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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에 저항한 70년대 영화들
-한국영화가 갖는 매력은 뭔가?
“국제적으로 보면 재밌는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이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영화는 유럽영화이다. 한국영화는 그 둘의 사이에 있는 것 같다. 유럽만큼 진지하지는 않지만 재미가 있고, 할리우드만큼 재미있지는 않지만 가볍지는 않다. 또, 한국영화는 대체로 감정을 관객들에게 직설적으로 전달하는 특징이 있다. 영화의 에너지를 바로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장점이다.”
-감정 표현을 직접 한다는 것이 세계 영화가 나아갈 목표나 보편적인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목표는 아니다. 어느 나라든 영화는 아무래도 국내 관객을 먼저 생각하고 만들기에 그 나라의 문화를 반영한다. 한국영화도 마찬가지이고, 그럴 때 특징이 있다. 언어 문제도 있고, 스타 시스템도 다르기 때문에 영화는 음악과는 달리 외국 사람들에게 바로 다가가기는 좀 힘들다.”
달시 파켓은 <살인의 추억>(감독 봉준호, 2003년)을 세계영화사에 남을 한국영화 최고의 걸작으로 꼽는다. “시대 배경을 잘 보여주면서도 스토리 텔링이 독특할 뿐 아니라 영화의 구조가 완벽하다. 영화의 전반은 이야기 중심이지만 후반은 캐릭터 중심으로 바뀌는데 이렇게 어려운 일을 어떻게 해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1970년대나 80년대 중반까지 한국영화는 사실 국내에서도 그다지 사랑받지 못했다. 정치권력이 간섭하고 탄압한 탓이긴 해도 영화의 전반적 수준이 낮다는 평을 들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능력 있는 제작자가 나오고 젊은 감독들이 대거 진출하면서 좋은 영화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전의 영화인들도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좋은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1970년대에 나온 하길종의 <화분>과 김기영의 <이어도>, 김수용의 <야행> 등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들은 감독들이 검열 등 열악한 제작 시스템에 어떻게 저항하면서 작업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 점에 비하면 요즘은 시스템 안에서 영화를 너무 편하게 만든다. 감독들이 1970년대 영화를 보고 많이 배웠으면 좋겠다.”
-무슨 뜻인가.
“능력 있는 감독들이 많아서 좋은 영화도 가끔 나오지만 지금 한국영화를 만드는 시스템은 1990년에 비하면 상당히 안 좋다. <기생충>도 봉준호 감독이 아니라 다른 감독이 시나리오를 들고 투자를 받으려고 했으면 못 받았을 것이다. 특히 젊은 감독들이 자기 스타일을 인정받기가 너무 어렵다. 그들이 독특한 영화를 만들려고 하면 위에서 이렇게 하자거나 저렇게 만들라고 한다.”
-투자자의 입김이 너무 세다는 건가?
“그렇다. 예전에는 영화 제작자의 힘이 세서 제작자가 돈을 가진 투자자와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감독 사이에서 어느 정도 조율을 했는데 지금은 그런 파워 있는 제작자가 몇 명밖에 없다. 감독이 독특한 스타일의 새로운 영화를 만들려고 해도 그러한 생각을 밀어주는 제작자를 만나기 어렵다. 투자자들이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하면서 조그만 리스크도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결국 개성과 독창성은 줄어들고, 전체적으로 비슷한 영화만 만들어진다.”
-그들이 찾았다고 생각하는 성공 방법이 뭐냐?
“일단 캐스팅에서 유명한 배우가 있어야 하고, 흥행을 위해서는 내용도 안정적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나리오가 나오면 영화의 장면마다 투자자들이 이런 건 재미없으니 재미있게 바꾸라고 요구한다. 감독의 구상이 사라지는 것이다. 게다가 좋은 영화를 만들었어도 흥행에 한 번 실패하면 그 감독에게 다시 기회를 잘 주지 않는다. 박스오피스에서 성공하지 못해도 영화가 좋으면 잘했다고 평가하는 분위기가 예전보다 많이 사라졌다. 이건 할리우드보다도 못하다.”
이경미, 연상호 등 젊은 감독들 주목
달시 파켓의 시선은 주류 영화판보다 독립영화 등 비주류 쪽에 더 많이 가 있다. “주류 영화 산업 밖에서 뛰어난 작품을 만들고 있는 많은 영화인을 조명하겠다”는 목적으로 2014년 ‘들꽃영화상’을 만든 게 대표적이다. 칼럼에서 저예산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가 영화인들의 격려와 요구로 직접 영화상을 만들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올해 본 영화 중에 <기생충> 말고 기억에 남는 게 뭐냐는 질문에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독립영화 <김군>(감독 강상우)을 꼽았다. “데뷔작인데도 감독의 자신감이 돋보이며, 역사와 정치에 대한 다큐멘터리인데도 예술성이 있다”고 평했다.
-차세대 감독 중에 눈여겨볼 사람이 있다면?
“능력 있는 감독들이 많다. 예를 들면 <미쓰 홍당무> 등을 연출한 이경미 감독이다. 그는 창조적 비전이 있다.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도 독립영화 애니메이션 때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배우 중에는 누구를 좋아하나?
“워낙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이 많은데 송강호는 당연히 좋아하고, 신하균과 정유미, 전도연도 좋아한다.”
달시 파켓은 그동안 <원나잇 스탠드>(2010), <돈의 맛>(2012), <박열>(2017) 등의 영화에 배우로도 출연했다. “연기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는 것 같다”는 그는 “앞으로 시나리오를 쓰거나 영화 제작은 한번 해보고 싶다. 시나리오는 구상이 대략 끝났는데 시간이 없어 못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보다 한국영화를 더 사랑하는 달시 파켓의 시나리오가 빛을 볼 날을 고대하면서 그와 헤어졌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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