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전 ‘비오는날의수채화’로 인기
개인사업 전념하다 유튜버로 복귀
구독자 19만명, 조회수 100만씩
지난주 콘서트엔 20대가 절반 넘어
아들 권유로 채널 만들고 활동
차 안에서 노래 트레이드 마크
“끊임없이 연습…같은노래 300번”
젊은층 댓글로 응원하고 교류
유튜브에서 2030대 사로잡은 가수 권인하가 27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 동구 백석동 작업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며 최근 다시 얻고 있는 인기와 유튜브 올릴 노래 연습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유튜브에서 자꾸 인기 동영상에 띄워주길래 클릭했다. 썸네일은 우리 아빠 또래의 한 남성이 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불신을 가득 안고 댓글부터 봤다. ‘듣다가 지려서 180도로 튀겨질뻔 했네.’ 노래를 들었다. 밤을 샜다. 댓글을 보며 낄낄거렸다. 이미 2030에게 스타가 된 가수 권인하였다. 궁금했다. 대체 왜 2030은 그에게 열광할까. 댓글을 살펴보고 그에게 질문했다.
올해 환갑을 맞은 한 가수의 콘서트에 20~30대 팬들이 몰려 매진을 기록했다. 예매 현황을 살펴보면, 10대가 5%, 20대가 56%, 30대가 25%로, 관객 중 30대 이하가 86%다. 올해 서른이 된 자신의 아들과 또래거나, 아들보다 더 어린 청춘을 사로잡은 환갑 가수라니, 바로 ‘비 오는 날의 수채화’라는 노래로 알려진 가수 권인하 이야기다.
가수 권인하는 1984년 가수 이광조가 부른 ‘사랑을 잃어버린 나’의 작곡으로 작곡가 데뷔를 한 후, 86년 록밴드 ‘우리’의 보컬로 참여했고 이듬해부터 솔로 가수로 활동했다. 1989년 영화에 삽입된 ‘비 오는 날의 수채화’를 김현식, 강인원과 함께 불러 인기를 끌었다. 그밖에 ‘계절이 음악처럼 흐를 때’ ‘사랑이 사랑을’ ‘사랑 그리고 우린’ 등의 대표곡이 있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음악보단 골프채 수입, 인터넷 방송국 운영 등 개인 사업에 전념했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 유튜버로 돌아왔다.
유튜버로 돌아온 권인하의 채널은 구독자 19만명에 이르고 올리는 동영상마다 조회수가 100만회를 넘는다. 특히 닐로의 ‘지나오다’라는 곡을 부른 동영상은 조회수 334만회를 기록했다. 윤종신의 ‘좋니’, 먼데이키즈의 ‘가을안부’, 엠씨더맥스의 ‘넘쳐흘러’, 벤의 ‘180도’ 등 후배 가수의 노래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한 덕분이다. 인기를 입증하듯 지난 22일부터 3일간 서울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 열린 콘서트는 순식간에 매진됐다. 유튜브엔 콘서트에 다녀온 팬들이 주로 아이돌이 대상인 ‘직캠’(현장에서 팬들이 찍어 올리는 영상)까지 찍어 올렸다. 나이 환갑에 ‘2030의 아이돌’이 된 권인하를 27일 고양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 동구 백석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유투브에서 활약중인 가수 권인하가 27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 동구 백석동 작업실에서 유투브에 올릴 영상을 위해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 고양/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재치 넘치는 댓글 읽는 재미
“부장님이랑 노래방 갔는데 이 정도면 내가 가자고 하고 싶다.”(홍*)
“아래층 살아서 층간 소음 당하고 싶다.”(Da*** ****)
“호랑이 동물원에서만 봤는데 노래방에서 보니 신기하네요.”(은*)
권인하의 영상에 달린 댓글들이다. 악플이 거의 없는, 흔치 않은 청정 구역에서 재치있는 글들이 돋보인다. 그의 창법을 ‘천둥 호랑이 창법’이라고 이름 붙여준 것도, 이런 부장님이면 회식하고 노래방 가고 싶다며 그를 ‘국민 부장님’으로 만든 것도 모두 이 댓글이 출발점이었다. 권인하의 채널은 환갑의 관록이 돋보이는 그의 노래 실력과 함께 댓글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유튜브를 하게 된 계기는?
“나의 음악 활동을 영상으로 남겨놓고 싶었다. 유튜브에 내 채널을 만든 건 2016년 12월이다. 그동안의 방송 활동을 찾아서 올려놓기만 한 것이다. 차츰 태연의 ‘만약에’ 리메이크 영상이 흥행하면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후배들 노래를 불렀다. 아들이 권유해서다. 처음엔 ‘내가 어떻게 젊은 애들 노래를 불러?’ 그랬더니 아들이 그렇게 생각하면 연습을 더 많이 하라고 했다. 그래서 제일 처음 부른 게 김범수의 ‘보고 싶다’였다.”
―아들이 음악적 감각이 있는 사람 같다. 아들도 음악을 하나.
“한때 힙합에 관심이 좀 있었지만, 지금은 직장 다닌다. 올해 서른이다.”
―유튜브 영상 제작하면서 아들과 더 가까워졌겠다.
“아들이 선곡을 하고, 내가 노래를 하는데, 아들이 요구하는 음악을 내 스타일로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관건이다. 서로 무뚝뚝한 한국의 전형적인 부자관계였는데 유튜브하면서 친해졌고 수시로 음악 이야기하면서 대화하게 됐다.”
―20~30대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는가.
“그 친구들이 못듣던 소리를 들려줘서 그런 것 같다. 두성과 비강음 등 소리의 비율이나 소리내는 방법이 아날로그 스타일이니까. 똑같은 노래를 불러도 다르게 느껴져서 그렇다고 본다.”
―댓글들을 보면 아버지나 부장님 같은 인생 선배의 느낌이 담겨 있다고 하더라.
“노라조의 ‘형’에는 ‘짜샤’라는 단어가 있어서 이걸 어떻게 부를까 고민했다. 욕 같은 느낌이 아니라 정감 어린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나보다 조금 어린 후배가 아니라, 나이 폭이 있는 후배에게 전하는 느낌, 아빠가 아들에게 이야기해주는 느낌이라고 해석했다. (노라조 출신) 혁이(이혁)가 파란 여름을 표현했다면, 나는 단풍이 물든 가을 느낌을 내고 싶었다.”
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권인하의 트레이드 마크다. 윤종신의 ‘좋니’를 부르는 장면 유튜브 갈무리.
“지구상에 가장 멋진 코너링”
“좋은 스튜디오, 음향 장비 하나 없이 누구에게나 친숙한 공간에서 이런 노래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전 운전 하십시오!”(본 브***)
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권인하의 트레이드 마크다. 녹음 스튜디오에서 장비를 갖추고 노래하는 영상도 있지만, 차 거치대에 핸드폰 카메라를 놓고 운전을 하면서 열창하는 영상으로 화제가 됐다. 특히 윤종신의 ‘좋니’를 부르며 마지막 구절, ‘그런 사람’의 ‘람∼’을 15초간 끌며 우회전 핸들을 돌리는 장면이 ‘킬링포인트’다. 이 영상엔 “좋니가 아니라 거의 송곳니 수준”, “지구상에 가장 멋진 코너링” 같은 댓글도 달렸다.
―차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컨셉을 잡은 것인가.
“컨셉을 잡은 게 아니라 실제로 차에서 노래를 제일 많이 부른다. 방해 안 받고 2시간씩 고래고래 소리 지를 수 있어서 편하다. 핸드폰 거치대에 폰 걸어놓고 영상 찍고, 들어본 후에 괜찮으면 아들에게 보낸다. 차에서 노래 부른 시절이 40년이다. 20살 때부터 차만 타면 60분짜리 녹음 테이프를 끼어넣고 한곡만 연습했다. 어떤 노래는 3년동안 연습하기도 했다. 차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내 몸에 베인 습관이라서, 여유있게 우회전하는 모습도 나온 것 같다.”
―연습은 얼마나 어떻게 하는가.
“가사를 자꾸 읽다보면 행간의 느낌이 어떤지 느껴지고, 호흡을 얼마나 줄지, 힘을 줄지 뺄지 노하우가 생긴다. 가사를 충분히 숙지한 후 50번에서 100번 정도 불러본다. 닐로의 ‘지나오다’는 300번 불렀다. 타고난 것으로 결과만 중시하면 오래 못 간다. 끊임없이 연습해야 한다. 나만 해도 일주일만 연습 안 해도 티가 나더라. 노래를 잘 하고 싶다면 같은 노래 1천번 불러봐라.”
이날 작업실에서 만났을 때도 그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가수 이적의 신곡인 ‘숫자’를 연습하고 있다고 했다. 반주가 흘러나오자 그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마음에 들 때까지, 물 한모금 안 마시고 “다시, 다시”를 외치며 부르고, 또 불렀다. 끊임없이 연습할 수 있는 비결은 운동이다. 그는 매일 한 시간 이상 자전거를 타거나, 헬스장에 가서 근력 운동을 한다. “근육이 있어야 소리를 올곧게 뽑아낼 수 있다. 덕분에 젊었을 때보다 두 키 더 올릴 수 있게 됐다.”
유투브에서 활약 중인 가수 권인하가 27일 오후 경기 고양시 작업실에서 노래 연습을 하고 있는 모습을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찍고 있다. 고양/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노래하는 사람으로 다시 일어섰다
“광고 좀 넣으세요. 공짜로 듣기 죄송합니다. 광고 수익으로 맛있는거 많이 드시고 건강챙기세요.”(Ph*** ****)
―광고 붙여서 수익 낼 수도 있을텐데, 왜 안 하나?
“광고로 수익을 내려면 영상이 12분 정도는 되야 한다. 중간 광고를 넣으려면 노래를 끊고 넣어야 하는데 그럴 수도 없다. 배너 광고는 붙일 수 있지만 광고 때문에 구독자들을 짜증나게 만들고 싶지 않다.”
―커버곡(원곡을 다시 부른 곡)이 인기를 끌면 원곡도 인기를 얻게 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수익 배분은 없나.
“없다. 외국에서는 노래를 부른 사람에게도 수익을 나눠준다. 노래 부른 사람이 원곡을 홍보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상관없지만, 노래 부르는 청년 유튜버들 생각해서 말하고 싶다. 조회수 몇십만, 몇백만 되는 노래 영상 하나를 위해서 굉장히 오랜 시간 연습을 한다. 이런 청년들이 장비라도 하나 더 살 수 있게, 다음을 준비할 수 있게 조금이라도 나눠줬으면 좋겠다. 음악계의 선배로서, 음반 제작을 해본 사람으로서 공존과 공생이 있어야 한국 음악계가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생계는 어떻게 하나?
“그동안 골프채 수입도 해보고, 인터넷 방송국에 스튜디오도 차리고, 미사리에 라이브 클럽도 열었다. 물론 성공한 건 하나도 없었다. 지금은 작은 의류 매장을 하나 운영하고 있다.”
―수익도 없는데 유튜브를 계속 하는 이유가 뭔가.
“젊은 친구들이 ‘유튜브 잘 보고 있습니다’하고 인사해주고 알아봐 줄 때, 너무 고맙고 반갑다. 더 해야겠구나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5월에 싱글 음원을 낼 계획이고 유튜브에 계속 영상을 올릴 거다. 업로드 자체가 나에겐 연습이고 공부다. 유튜브 팬들 덕분에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깊이 있는 음악을 전해드리고 싶다.”
“60대 어르신이 직접 부른 노래를 올리고 전 세대가 악플없이 응원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세대를 아우르는 놀이공간이자 문화라는 생각이 들어 훈훈”(이감*)하다는 한 네티즌의 댓글처럼, 나이와 상관없이 권인하의 노래들 듣고 그의 채널에서 댓글을 달며 논다. 이것만으로도 그의 인기 이유를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인터뷰하던 날, 권인하가 들려줬던 이적의 ‘숫자’가 그의 채널에 올라오면 나도 댓글을 달 것이다. “안 들은 귀 삽니다. 한번 더 듣게요.”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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