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인터뷰
시민참여 실험실 준비 김우재 교수
과학자·시민 함께 하는 실험실 ‘타운랩’
최근 저서 ‘플라이룸’에서 구상 밝혀
이르면 올해 1호 여는 게 목표
“상업화 추구, 과다경쟁, 연구부정 등
기초과학 낭만의 시대는 끝나
캐나다도 대학원 입학 점점 줄어”
“과학 경험해보면 과학 이해하고 존중
사회도 달라지고 정치도 달라질 것
교수 아닌 사회 속 과학자로 살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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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펴낸 책 <플라이룸>에서 김우재 캐나다 오타와대학 교수는 기초과학의 다양성과 가치를 갈수록 위축시키는 과학 연구의 상업화, 양극화 풍토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과학자와 시민이 함께하는 타운랩 실험실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김우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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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아웃사이더 과학자’ ‘급진적 생물학자’로 부르며, 과학계와 사회를 향해 도전적 발언을 해온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 교수가 시민참여 실험실을 만들자는 색다른 제안을 하고 나섰다. 갈수록 위축되는 기초과학의 가치를 대학에서 사회로 가져나와 과학자와 시민이 함께 경험하고 일궈가는 실험실을 이곳저곳에 만들겠다는 것이다. 변신을 준비 중인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초파리로 세계를 정복하자. 여전히 나의 꿈입니다.”
뭔 뜬금없는 얘기인가. 하지만 이 하찮고 성가신 작은 날벌레와 진지한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만나면 얘기는 달라진다. 유전학 실험실의 대표적 실험동물 중 하나인 바로 이 초파리 덕분에 지난 120여년 동안 과학자들은 인류 유전학 지식의 기초를 쌓아올릴 수 있었으니까. 또 ‘세계 정복’이란 말을 영토 확장이란 뜻으로 듣지 않고, 과학을 이해하는 삶의 양식을 더 넓게 퍼뜨리겠다는 야심 정도로 새겨듣는다면, “초파리로 세계 정복”은 기초과학에 매달려온 초파리 유전학자의 현실적인 꿈을 재밌게 드러내는 비유로 다가온다.
초파리 유전학자로 불리는 김우재 캐나다 오타와대학 세포·분자의학과 교수(45)는 요즘 대학 바깥에서 과학자와 시민이 함께하는 사회 속의 생물 실험실을 준비하고 있다. 실험실 이름도 ‘타운랩’이라고 일찌감치 지어두었다. 그가 타운랩 구상을 구체화하던 시기는 지난해 말 출간한 책 <플라이룸: 초파리, 사회 그리고 두 생물학>을 쓰던 시기와 겹쳐 있다. 이 책은 그가 “사랑에 빠졌다”고 표현하는 초파리 유전학의 과거와 현재를 정리하면서, 현대 과학의 상업화 경향과 기초과학의 위기, 더 나아가 한국 과학계의 풍토를 비판한다. 타운랩은 그런 비판의식을 바탕으로 그가 생각해낸 대안적 과학 활동으로 보인다. 그의 구상을 듣기 위해 캐나다에 있는 그와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더이상, 다윈과 아인슈타인은 없다
그는 언론 칼럼 등을 통해 직설적인 어법으로 과학자 사회의 문제를 들춰내고 현장 연구자들의 어려움을 대변하며, 때로는 우리 사회의 불합리를 비판해왔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대학원생 시절엔 ‘생명에 취한 사람, 취어생(取於生)’이라는 별칭을 쓰는 “평화로운 블로거”였지만 미국산 소고기수입협상 파동, 즉 ‘광우병 사태’ 때(2008년)부터 ‘급진적 생물학자’라고 스스로 칭하며 현실 비판의 글을 자주 쓰기 시작했다. 인터뷰는 책 이야기에서 시작했다.
―책 제목이 ‘플라이룸’, 그러니까 ‘파리방’이네요. 초파리 실험실을 가리키는 듯해요.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초파리의 매력에 푹 빠진 연구자’라는 느낌을 받아요.
“초파리 유전학 실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그 매력을 설명하는 건 정말 어려워요. 가족도 잘 몰라요. 하지만 발견의 기쁨을 아는 생물학자라면 초파리를 만나 사랑하게 될 건 분명해요. 마치 갖가지 레고블록이 잔뜩 쌓인 방을 발견한 그런 기분이랄까. 초파리 유전자들은 지난 120년 동안 연구됐고, 그래서 이제는 예컨대 어떤 행동을 일으키는 신경회로, 그 신경회로를 작동하는 유전자들도 초파리 모델 연구를 통해 드러나고 있어요. 그게 제가 해온 초파리 행동유전학입니다. 초파리 연구는 인간 유전자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기초과학이지요. 생긴 게 그다지 예쁘진 않지만, 유전자의 신비를 발견하고 싶어 하는 과학자에게 초파리는 정말 사랑스러운 동물일 수밖에 없어요.”
―책에 현대 과학의 상업화, 양극화 같은 풍토를 강하게 비판하는 내용이 많더군요.
“제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학(UCSF)에서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하던 2008년 무렵부터 상황이 빠르게 심각해진 듯합니다. 당시 <네이처>에 대학 연구실을 ‘학위공장’에 빗댄 글이 실렸고, 이후 과학의 양극화, 연구노동 착취, 과도한 경쟁, 연구부정 등이 세계 과학계에서 화두가 되기 시작했어요. 한국도 마찬가지였죠. 정규직은 줄고 연구노동 환경은 악화되는 그런 환경에서 과학연구를 해야 했습니다. 특히 생명과학 연구의 중심이 의학 응용 쪽으로 바뀌면서 연구비 시장은 질병과 응용 위주로 재편됐어요. 기초 중에 기초를 담당하던 초파리 연구자들 중 상당수가 실험실을 떠난 건 이런 이유였죠.”
―기초과학 위축의 큰 배경은 뭐라 보는지.
“정부와 대학, 학술지 기업(엘스비어, 스프링거 등 영리를 목적으로 학술지를 출판하는 기업)의 ‘삼각동맹’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정부 관료는 기초연구를 무시했고 대학은 ‘학위공장’이 되어 논문과 연구비로 업적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강화했고 학술지 기업은 경쟁과 줄 세우기로 과학을 올림픽처럼 만들어버렸어요. 기초과학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학생도 크게 줄었어요. 과학은 앞으로도 살아남겠지만 우리는 더 이상 다윈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를 보지 못할 겁니다. 낭만의 시대는 끝났어요. 대학에서 인문학이 고사하는 것처럼 10년 내로 대학에서 기초과학 학문을 찾기 어려울지 모릅니다.”
돈 되지 않은 연구는 외면
그는 포스텍에서 분자생물학자로 박사학위를 받고 2008년부터 미 캘리포니아대학에서 6년 넘게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했다. 초파리 유전학이 그의 전공이 된 건 이때였다. 2015년 캐나다 오타와대학에서 조교수로 자리를 잡았고, 과학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하는 랩(실험실)을 꾸렸다. 자신감이 넘쳤던 때였고 자신만의 주문 같았던 ‘초파리로 세계 정복하자’를 되뇌었다. 어쩌면 ‘초파리로 세계 정복’이라는 구호는 점차 밀려나고 있던 기초과학 연구자의 자존감과도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고대하던 교수 생활을 하며 뜻밖의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책에는 후학들에게 ‘기초과학 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대목도 있어요. ‘대학원에 가지 마라’, ‘대학원에 가려거든’ 제목의 칼럼을 <한겨레> 등에 써서 화제가 된 적도 있지요.
“칼럼들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은 이미 사라졌기 때문에, 순수 학문의 이상을 가지고 대학원에 가려는 인재들을 더 나은 길로 인도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차라리 젊을 때 돈을 벌고 일찍 은퇴해 나중에 학문을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하루가 멀다 않고 쏟아져 나오는 (일부이긴 하지만) 학자들의 부패와 비리를 보면서 어떻게 학문을 하러 대학원에 가라고 권유할 수 있겠어요? 또 제 주변엔 박사과정, 박사후연구원을 10~15년을 하고도 정규직이 못 된 사람이 절반이에요.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 사람들이 알려고 하지 않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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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하게 만들고 간편하게 쓸 수 있도록 고안해 개발 중인 초파리 실험장치. 김우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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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은 캐나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세계적인 위기입니다. 이미 이 분야에 들어서려는 기초과학 연구자들이 줄어들고 있어요. 다들 의대를 가려고 할 뿐 가난한 기초과학자가 되려 하지 않아요. 당장에 우리 학과에도 대학원생 입학이 줄어 비상이 걸렸으니까.”
그는 몇 년째 초파리의 시간 지각을 연구하고 있다. 그건 신약 개발이나 유전자치료술 같은 인기 있는 연구 분야에 비하면 너무나 한가한 주제였나 보다. 번번이 연구비 지원 심사에서 떨어졌고 그것은 큰 좌절의 경험이었다. 그는 2018년 봄 무렵에 더 이상 교수직에 연연하지 말자는 다짐을 하기에 이르렀다.
―4년째인 교수 생활을 접고서 대학 밖에 실험실을 차리겠다는 결심은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었을 텐데.
“연구비가 없는데도 연구를 계속 하겠다고 버티긴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강의를 늘려 교수직을 유지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만두기로 했어요. 그런 결심을 굳히게 한 중요한 계기는 교수가 된 지 2년쯤 지나 실험실의 엔지니어, 디자이너들과 함께 개발한 아주 간편한 초파리 실험장치였어요. 3차원(3D) 프린터와 간단한 전자회로, 컴퓨팅 도구를 이용해 만들었죠. 그때 아, 이거면 실험실의 장벽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겨우겨우 연구비를 받아 생존하는 교수가 아니라 하고 싶은 연구를 함께 하는 과학자인 나, 그 가능성을 생각하게 된 거죠.”
‘과학적 삶의 양식’이 고급교양
기초과학의 열정을 대학 바깥의 실험실에서 풀어보자는 생각은 그때부터 구체화했다. 오히려 이게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라는 생각은 굳어갔다. 그의 머릿 속에선 타운랩의 꿈이 점점 많은 부분을 차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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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학의 역사를 일궈온 실험동물 초파리.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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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사회가 만나는 실험실’을 강조하는데 어떤 의미인지.
“과학자가 되려면 무조건 대학원에 들어가야 하고 교수와 학생의 도제관계를 통해 학위를 취득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필요한 과학이라는 게 고도로 훈련받은 과학자의 것일 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과학이 책으로 읽는 교양지식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실험을 설계하고 실행하며 체득하는 ‘삶의 양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과가 좋으면 시민들도 과학논문을 쓰고요. 어쩌면 이런 과학적 삶의 양식에서 얻을 합리성과 혁신의 감각이 우리사회에 부족해 불합리하고 비과학적인 문제들이 계속된다는 생각도 듭니다.”
―누구나 과학자가 되는 경험을 실제 해보자는 제안은 흥미롭네요.
“저는 되도록 모든 사람이 일생에 한번쯤은 과학자가 되는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악기 하나쯤을 일생에 한번쯤 다뤄보잖아요, 그런 경험은 음악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만들어줘요. 과학도 그럴 수 있죠. 모든 사람이 과학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과학적인 삶의 양식을 경험하면서 과학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과학이 사회의 고급교양이 되고, 나아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사상이 되는 꿈을 꿉니다. 그러면 사회도 달라지고 정치도 달라질 거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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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도록 모든 사람이 일생에 한번쯤은 과학자가 되는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모든 사람이 과학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과학적인 삶의 양식을 경험하면서 과학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김우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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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니 캐나다에서 타운랩 시험그룹이 벌써 구성된 듯한데요.
“시간을 쪼개어 타운랩 학생들을 받아 프로그램을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열심히 초파리 실험장치를 만들고 있고요. 이르면 올해에, 늦으면 내년에는 한국에 타운랩의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올해 한국에 들어가 엔젤투자를 유치할 생각이에요. 규제가 있을 수도 있는데 현실과 부딪혀 봐야죠. 타운랩 수가 늘어날수록 박사급 연구자들의 일자리도 늘어날 거라고 기대해요.”
―얘기를 듣다보면 사회 안에서 기초과학을 진흥하기 위한 초파리와 과학자의 ‘동맹’처럼 느껴집니다.
“맞아요. 연구비 경쟁에서 밀려난 초파리, 하지만 유전학의 강자였고 여전히 강자인 초파리가 든든한 동맹자인 것이고,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이 꽃피우는 새로운 실험장치들이 초파리를 대학 실험실의 구속에서 자유롭게 할 겁니다.”
―타운랩이 지속가능할까요?
“궁극적으로는 타운랩의 경험이 세상의 변화에 기여하게 하는 것이고, 그렇기 위해선 수익모델을 외면해선 안 됩니다. 수익모델이 없으면 지속가능하지 않아요. 일종의 교육스타트업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단지 영리 기업을 만들자는 건 아니고, 타운랩을 통해 과학과 사회가 새로운 방식으로 대화하고 사회가 과학을 통해 건강하게 발전하게 하자는 겁니다. 대학 밖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기초과학도 살리고요”
―이번 겨울방학 때 한국에 와서 많은 분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었는데 반응은 어땠는지.(그는 에스엔에스로 모임 공지를 띄우고 여러 도시를 돌며 일종의 설명회를 열었다.)
“몇 백 명을 만난 거 같아요. 일단 신기하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이런 구상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제 사례만 보여준다면 투자 받는 것도 가능하다는 확신을 얻었고요. 차분히 준비해 선보일 생각입니다.”
―초파리로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지금도 유효한 말인지.
“이제 진짜 정복에 나서는 거죠. 교수직은 달콤한 유혹이긴 합니다만 세계를 정복할 직업은 아닌 것 같아요. 돈도 벌겠습니다. 세계 정복은 돈으로 하는 거래요.(웃음)”
10년 뒤를 상상해달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잘 된다면 과학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운동을 시작하고 싶다. 재단이 될 수도 있고 대안적인 대학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책은 꾸준히 쓰고 싶다”고 말했다. 어쩌면 내년쯤 우리나라 어디에선가 볼 수도 있을 과학자와 시민의 생물실험실 타운랩 모습이 궁금해진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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