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차별 반대에 앞장서온 성직자들이 있다. 동성애를 옹호한다는 이유로 이단 조사 표적이 된 임보라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개신교 전도사에서 ‘거리의 사제’가 된 자캐오 신부(대한성공회), ‘성소수자 불자 법회’ 지도법사인 효록 스님(대한불교조계종). 세 사람을 지난 11일 낮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 사옥에서 만났다.
이날 목사와 신부는 비슷한 데가 많았다.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를 활용한 소품을 손목과 가슴 등 눈에 띄는 부위에 지녔고, 인터뷰 도중 한번씩 눈물을 보였다. 스님만 울지 않고 인터뷰를 마쳤다. “부처님 말씀엔 동성애를 금지하라는 내용이 없어요. 불교에선 백 가지도 넘는 다양한 사랑 중 하나로 봐요. 무지개로 뭘 하든 아무도 간섭하지 않아요.” 승복엔 무지개 소품을 못 다는지 궁금해하는 목사와 신부와 기자에게 스님이 답했다.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 15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리는 제18회 ‘퀴어문화축제’를 즐길 성소수자와 성다수자, 모든 시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음성으로 남겨달라고 부탁했다. 육군 동성애자 대위 색출사건 뒤 “나도 잡아가라”는 잇단 절규, 대통령 후보로 나선 유력 정치인들의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위험한 공언이 아직 교차하는 지금, 광장에선 활자보다 목소리가 주는 울림이 클지 모른다고. 녹화 순서는 정하지 않았다. 하얀 블라우스에 손목을 도톰하게 감은 무지개 팔찌를 한 임 목사가 가장 먼저 카메라 앞으로 차분히 걸어갔다. “목사님, 찍겠습니다.” 녹화를 알리는 불빛이 깜박거리자, 아무 말도 못 하는 그가 눈을 깜박거린다. 임 목사의 고개가 살짝 넘어갔다.
“…그분들 생각하니까 눈물이 나서”.
인터뷰를 시작할 때 자캐오 신부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끝날 때쯤엔 이분이 울었다. 커피 얘기하다가) “오늘 질문 걱정 없이 왔어요. 임 목사님이 계시잖아요!” 개신교 주류 교단이 임 목사에 대해 이단 여부를 조사하기 시작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달 16일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 쪽은 타 교단 소속인 임 목사가 동성애를 옹호하고 <퀴어 성서 주석>을 번역한다는 이유로 이단 심사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예장 통합·고신·합신·대신과 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한국침례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등 주요 8개 교단이 합세한 상태다. <퀴어 성서 주석>(The Queer Bible Commentary, SCM Press, 2006)은 영국 버밍엄대 ‘신학과 종교’ 전공 교수인 데린 게스트를 비롯한 31명이 공저한 퀴어신학 필독서로 알려진다.
임보라 목사(왼쪽부터), 자캐오 신부, 효록 스님이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옥상에서 대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사진촬영하며 활짝 웃고 있다.
임보라 목사 “성경 전체를 퀴어 비평 입각해 다뤄, 신의 사랑엔 ‘이성애 중심’ 조건 없다 특정인 차별·배제 않는다는 게 핵심”
효록 스님 “‘율장’ 보면 성의 종류만 수백 가지 올해 퀴어축제엔 조계종 부스도 설치 불교굿즈는 ‘무지개굿즈’ 가져갈 것”
자캐오 신부 “소수자는 실제 ‘작은 사람’이 아니라 아무 죄 없이 ‘작은 취급 받는 사람’ 성서는 계속해서 새롭게 해석해야”
- 한마디로 ‘동성애를 반대하지 않은 죄’를 묻겠다는 건가요.
임보라 목사
임보라 이단 조사를 하겠다는 쪽에서 재밌는 얘길 해요. 동성애를 옹호하는 제 입장이 평신도였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목사니까 문제라는 거예요. 퀴어축제에서 설교, 축도, 성찬식을 하고 성소수자 교인들과 예배하는 목사니까. 제가 속한 섬돌향린교회(서울 마포구 성산동)는 성소수자만의 교회가 아니에요. 성소수자든 그 누구든 와서 예배할 수 있는 평범한 교회예요.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많은 목회자가 고민하는 부분이 있어요. 교회가 너무 성직 중심, 남성 중심적이고 권위주의적이라는 점. 건강한 목회를 고민하는 분들은 목사와 교인의 구분을 지우려 하고 있어요. 목사라서 동성애를 옹호하는 게 문제라는 관점 자체가 성직자와 교인의 구분을 더 강화하죠. 한국 교회의 권위주의가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에요.
자캐오 임 목사님에게 이단 낙인을 찍으려는 8개 교단이 교류하는 북미 교단 중에 동성혼을 인정하거나 성소수자 성직자가 배출된 곳이 많아요. 캐나다연합교회(UCC), 미국연합장로교회(PCUSA), 미국연합감리교회(UMC) 같은 주류 교단이죠. 저들에게도 이단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못 할걸요. 얼마나 자기모순적입니까. 임 목사님 건은 한국 보수 개신교의 마녀사냥이에요.
- <퀴어 성서 주석>은 어떤 책인가요. 왜 번역하게 됐는지요.
임보라 목사가 번역 중인 <퀴어성서 주석>(2006, SCM Press). 올해 국내 출판될 예정이다. SCM Press 갈무리
임보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를 퀴어 비평에 입각해 다룬 유일한 책입니다. 성서 텍스트가 성소수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피는 단서가 되는 책이죠.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에선 아주 근본주의적인 신학교를 제외하곤 기본 개론 수준으로 널리 다뤄요. 하버드 신학대학원도 이 책을 참고도서로 쓰고요.
성소수자 혐오가 몇몇 성서 구절만을 근거로 큰 힘을 발휘하고 있잖아요. 국내 반동성애 움직임이 커지면서 이 책을 번역하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고 판단했어요. 목사, 신학자, 인문학자 등 27명이 번역에 참여했고, 다 끝났어요. 작업물을 한번 더 꼼꼼히 체크하고 있고요. 올해 안에 출간할 계획이었는데, 되도록 더 빨리 출간하려고 속도를 내고 있어요.
8개 교단 이단대책위원회(이대위)는 지난 4일 임 목사의 이단성 조사 자료를 공유하는 취지로 낸 자료에서 “퀴어신학이 곡해하는 주요 성경구절” 셋을 제시하며 퀴어신학을 반박했다.
①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레위기 20:13) 이 구절을 근거로 이대위는 “바울은 레위기에 나온 동성애 금지 명령을 신약교회에도 똑같이 지키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②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로마서 1:27) 이 구절에 대해선 “바울은 동성애를 창조질서(남녀 구분, 결혼)에 역행하는 역리로 봤다”고 주장했다.
③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창세기 19:5) 이 구절은 “롯은 천사를 보호하기 위해 소돔인들에게 두 딸을 대신 주겠다고 제안했다. 성적인 의미”라고 봤다.
가장 논란이 되는 구절은 ③이다. 김경호 목사(들꽃향린교회)는 “‘상관하다’는 히브리어로 ‘안다’는 뜻의 야다(yada)이다. 성경에서 야다가 약 1000번 정도 쓰이는데 이 중 성관계를 나타내는 것은 10~11번 정도이고, 전부 이성애를 나타낸다. 해당 구절은 반드시 동성 간 섹슈얼리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롯이 딸을 대신 내어줄 것을 제안했다는 것은 그들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전제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바로가기)
- 일부보수 신학계에서 동성애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성서 속 텍스트와 상징을 곡해한다는 지적이 나와요. 소위 이단으로 지목되는 신천지 같은 곳이 그런 방식으로 성서를 다루는데요. 임보라 <퀴어 성서 주석>은 기존 신학의 성과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신의 사랑엔 ‘이성애 중심’이란 조건이 없다는 걸 알려줍니다. 성경이 특정인을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이에요. 동성애가 죄냐 아니냐는 식의 단순한 접근이 아니에요. 많은 분이 직접 읽어보고 판단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책이 나오면 신학적 논쟁을 끝까지 한번 해보고 싶어요. 여기서 물러서면 한국 기독교는 퀴어뿐 아니라 여성, 이주민, 흑인 등 억압된 사람들의 관점에서 쓰이는 신학은 무엇도 받아들이지 못할 테니까. 편협하고 권위주의적인 지평을 깨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 기독교의 많은 문제가 여기에 기인한다고 봐요. 오늘도 인터뷰 끝나면 번역 모임에 나가요.
자캐오 미국에서 신학을 주도하는 세 개신교단으로 연합장로교회, 연합감리교회, 성공회가 꼽힙니다. 이런 교단에서는 <퀴어 성서 주석>과 함께 퀴어 신학 입문서로 <래디컬 러브>(Radical Love, 2011, Seabury Books)가 필독서로 읽혀요. 성공회 사제이자 신학자인 패트릭 쳉이 썼고요. 임 목사님과 함께하는 분들이 <래디컬 러브>도 같이 번역하고 계신다던데, 그런 책들이 한국에 들어온다니까 한편으론 불편하고 두렵겠죠. 재밌는 건, 일부 개신교는 자신들이 광장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같이 흔들면서, 미국 주류 교단에서 소수자 이슈를 얘기할 때 꼭 언급되는 이런 책을 읽고 영향 받는 걸 사대주의라고 공격해요. 책이 성조기도 아닌데.
자캐오 신부
자캐오 신부는 ‘길찾는교회’ 담당 사제이자 용산해방촌나눔의집 원장이다. 길찾는교회는 주소가 웹주소뿐이다. 건물이 없다. 사제가 일방적으로 설교하지 않는다. 사제와 신자의 대화가 곧 설교인 실험적인 선교적 교회로 성공회 서울교구 승인을 받았다. 용산해방촌나눔의집은 소외계층에 식품을 지원하는 푸드뱅크 사업, 자활센터를 위탁받아 차상위 계층에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업, 이주민의 생활을 돌보는 사업 등을 한다. 그는 자신을 교회, 나눔의집과 “동행”하는 신부라고 반복적으로 표현했다.
- 같은 기독교라도 성공회의 공기는 좀 다른데요.자캐오 미국 성공회는 동성애자 주교가 탄생했고 동성혼도 허용했지만, 영국 성공회에 뿌리를 둔 세계성공회 차원에서 논쟁은 계속되고 있고요. 한국 성공회는 공식적인 논의를 한 적이 없어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고 있어요. 하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는 입장이 대다수예요. 제가 무지개 배지를 사제복에 달고 있으면 다른 사제들이 신기해하고 어디서 구하냐 묻거든요. 최근엔 서울교구장이신 이경호 주교님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표현을 언론 인터뷰(▶관련기사 : <한겨레> 4월27일치)에서 공개적으로 하셨죠.
성공회는 성서의 정신을 받아들이되 성서 텍스트를 극사실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요. 성서, 예수의 삶을 상징적, 은유적, 역사적으로 이해합니다. 여기서 ‘역사적’이란 표현은, 성서가 쓰인 시대의 역사적 한계를 의식하고 읽는다는 뜻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구약에 쓰인 내용을 현대에 그대로 적용하지 않아요. 그 정신이 작동해야 해요. 기독교인들이 ‘믿음의 조상’이라 칭하는 아브라함 예를 들게요. 집에 손님이 오면 환대해요. 고대 사막지역 유목민 문화에선 이게 관습이에요. 그 손님 맞아들이지 않으면 큰 일교차로 잘못될 수 있어요. 근데 환대 준비는 죄다 여자가 하거든요. 그걸 지금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아니잖아요. 성서는 계속해서 새롭게 해석되어야 해요. 성서의 정신을 살리는 방향으로.
부처님오신날인 지난 5월3일 광주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문빈정사에 무지개 펼침막이 내걸렸다. ‘차별없는 세상 모두가(우리가) 주인공입니다’는 올해 부처님오신날 공식 봉축표어다. 트위터 갈무리
- 한국 불교계 최대 종단인 조계종은 어떤가요. 부처님오신날에 조계종 사찰이 내건 ‘무지개 펼침막’이 에스엔에스(SNS)에서 화제였어요. 효록 조계종은 공식적으로 찬성도 반대도 표하지 않고 있어요. 하지만 불교에선 제가 동성애 차별에 반대한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할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가 기획한 성소수자 연구서도 낼 수 있었고요.
효록 스님은 지난해 4월 나온 ‘불자 성소수자가 경험하는 한국 불교’ 보고서의 연구책임을 맡았다. 종교계에서 처음으로 나온 성소수자 연구 결과다. 이 보고서는 크게 두 가지 성과가 있다. 첫째, 20~50대 성소수자 18명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문헌 연구에서 나아가 성소수자에 대한 질적 연구를 수행했다. 둘째,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율장>(승려가 지켜야 하는 계율)을 토대로 성소수자를 다루는 불교의 인식을 새롭게 밝혔다.
상담학 박사인 그는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여래심리상담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계종 ‘성소수자 불자 법회’ 지도법사이기도 하다. 성소수자 불자 법회는 매월 둘째주 토요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근처에서 열린다.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는 비공개다. (안내받고 싶은 분은 다음 카페 ‘불반’을 찾으면 도움 받을 수 있다.)
효록 스님
효록 부처님오신날 공식 봉축표어가 ‘차별 없는 세상, 우리가 주인공’이었죠. 종단에서 표어를 정하면 그걸 활용하는 건 완전히 자유예요. 아무런 간섭이 없어요. 무지개를 걸든 뭘 하든. 저는 지금 목사님이나 신부님처럼 무지개 팔찌나 배지, 묵주를 하고 있지 않은데요. 제가 그런 걸 승복에 착용한다고 이단이라고 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이번 서울 퀴어문화축제(퀴퍼)에 처음으로 조계종 부스도 설치해요.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와 ‘성소수자 불자 법회’가 축제에 참가합니다. 이번 퀴퍼에 가지고 가는 불교 굿즈는 ‘무지개 부채’예요. 신부님 무지개 묵주 보고 자극받았어요(웃음). 무지개 염주도 만들 거예요!
- 부처님은 성소수자를 어떻게 보셨나요?효록 부처님은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으셨어요. 율장을 보면 다양한 성이 존재해요. 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 또 성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자… 성교 방식이 30가지, 성교 정황이 약 198종류로 성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습니다. 성적 교섭의 방식은 항문, 성기, 구강 3가지예요. 부처님은 다양한 성을 숨기지 않고 쫙 펼쳐놓으신 거예요.
율장은 여러분들은 못 보시고, 구족계를 받은 스님만 볼 수 있어요. 제가 직접 읽고 여러분께 소개해드리는 역할을 하는 거죠. 불교에서 성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만 뜻하지 않는다는 걸요.
종교계에서 나온 첫 성소수자 연구서인 ‘불자 성소수자가 경험하는 한국 불교’(2016). 대한불교조계종 제공
부처님이 계시던 승단(승려 공동체)엔 이미 많은 동성애자가 출가해서 공동생활을 했다고 나와요. 출가자는 성행위를 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승단에서 성과 관련한 문제가 생기면 내쫓거나 참회하게 했죠. 부처님은 성소수자를 구분해서 차별한 게 아니라 성행위를 금지한 계율을 어긴 사람을 징계했어요. 이 점이 중요해요.
부처님 살아 계실 때, 우빠난다라는 큰스님 밑에 스무살이 안 된 제자가 두 명 있었어요. 이 둘은 남성인데 동성애를 했죠. 부처님이 어떻게 하셨을까요? 한 스승이 두 사미(구족계를 받기 위해 수행하는 승려) 제자를 두지 못하게 계율을 바꾸셨어요. 동성애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성행위를 했기 때문에 내린 조처예요. 동성애자인 두 사람을 승단에서 내쫓지 않으셨거든요.
율장에 따르면, 사람의 성은 생과 생 사이뿐만 아니라 한 생 안에서도 변할 수 있는 것이에요. 트랜스젠더죠. 어떤 비구가 성적으로 여성이 되면 그는 비구니 구족계를 다시 받고, 앞으로 비구니로 살면 되는 거예요.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율장 주석서를 보면, 성은 임신 순간에 결정되지만 바뀔 수 있는 것으로 여겨져요. 그러니 성소수자를 옹호했다고 이단이라는 주장은 불교에선 있을 수가 없죠.
부처의 계율이 얼마나 유연하고 탄력적인지 알려드리기 위해 덧붙이자면, 부처님께 칭찬받는 사리불이라는 큰스님이 계셨어요. 이 분도 제자가 한 명이었죠.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스님이 또다른 제자를 못 받는 게 안타까운 거예요. 그때 부처님은 사리불같이 인품이 높은 스님은 제자를 두 명 둘 수 있다고 다시 길을 열어두세요. 이걸 불교에선 ‘개차’라고 말해요. 열고 닫는다는 뜻인데요. 불교는 문제 해결을 할 때 열고 닫는, 다시 말해 수정하는 자세가 유연한 편이에요.
임보라 많이 배웁니다, 개차. 맞아요. 신과 사람, 사람과 사람 관계에 놓이는 걸림돌은 시간에 따라 달라지죠. 그럼 방법을 수정해가면서 장애물을 치워야 해요. 한국 보수 개신교계엔 그런 교리 하나 바꾸는 게 아주 큰 일입니다.
- 성소수자에 대한 불교의 입장이 기독교보다 더 급진적인 듯해요.효록 멀었죠. 불교가 지금보다 훨씬 더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불교계 큰어른이나 불교를 대표할 만한 행정기구에서 성소수자와 동행하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으면 좋겠어요.
- 스님의 이런 행보가 불편한 신자도 있을 수 있잖아요.효록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 같아요. 동성애에 대해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분들은 차라리 반응이 순수해요. “보살님, 남자가 여자만 좋아하는 건 아니더라구요. 남자가 남자를 좋아할 수도 있어요.” 그랬더니 여든 넘은 보살님이 그래요. “아, 그래? 그런 사람도 다 있네.” 이런 정도지, 미워하거나 죄악시하지 않아요. 안타깝게도 동성애가 죄라고 하는 기독교적 배경지식이 있는 분들이 사람을 분별하는 듯해요.
법회에 나오시는 분 중에 스님 자제분이 있어요. (아내와 자식이 있는 승을 대처승이라 한다. 한국불교태고종은 대처승을 인정한다.) 그분은 가족한테 게이라고 커밍아웃하는 게 힘들지 않았대요. 성소수자들이 현재로선 기독교보다 불교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는 경향이 있어요.
[%%IMAGE11%%] - 무엇이 성소수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게 했을까요. 자캐오 우선 제 안에 소수자성이 있어요. 어렸을 때 어머니와만 살았거든요. 애비 없는 자식이라는 낙인이 잘못도 없는 저를 소수자로 만든 경험이 있어요.
결정적으로 성공회 대학원에 재학하던 전도사 시절에, 우연히 만난 한 형제분이 게이였어요. 그분을 가슴 열고 대하지 못한 채 연락이 끊겼어요. 이후로 계속 그분 생각이 났어요. 저는 이걸 ‘신의 속삭임’이라고 불러요. 소수자는 실제로 ‘작은 사람’이 아니라 ‘작은 취급을 받는 사람’이거든요. 아무 죄 없이.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이 그 사건으로 제 안에 들어왔어요. 많이 울었죠.
효록 저는 돌이켜 보니까 세월호였어요. 그때 팽목항에 전국에서 스님들이 모였어요. 이렇게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스님들이 모여서 2박3일 온갖 얘기를 하다가 흩어졌죠. 서울에 돌아온 직후부터 세월호 집회에 나갔어요. 광장은 처음 가봤어요. 그해 조계종 노동위원회에 들어가게 됐는데, 성소수자 불자 모임이 있고 15년 동안 지도법사 없이 자기들끼리 법회를 해왔다는 거예요. 고통받는 사람들이잖아요. 제가 지도법사가 되기로 했죠. 이제 3년 됐어요.
그때까지 성소수자의 존재를 제대로 몰랐어요. 무관심이 무자비예요. 저 역시 몰라서 무자비했죠. 성소수자 법회를 하면서 내면이 확장되는 경험을 했어요. 같은 지구에 살아도 내가 알지 못하는 곳이 많잖아요.
임보라 10년 전 차별금지법 제정이 무산되는 과정, 그리고 제가 만나본 성소수자가 여느 사람과 다를 게 없다는 경험. 똑같은 위로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 그렇게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성소수자를 위해 싸우는 목사가 되겠다, 하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었고… 자연스럽게 이렇게 됐죠.
성소수자들이 가장 고통스럽게 호소하는 게 이거예요. ‘진짜 나’와 ‘사회적인 나’의 분리. 그러면 자존감이 유지가 안돼요. 예를 들어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을 전환한 분이 있어요. 이분은 남성 이성애자로 살고 있는데, 과거에 여고나 여대를 다녔다고 쳐봐요. 이분은 그때까지의 삶은 사회생활 하면서 얘기할 수가 없게 돼요. 그때와 지금의 나는 같은 나인데, 성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내가 분리되고 인생이 뒤죽박죽…. 그렇게 사회로부터 고립될 때 가장 힘들어하거든요.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해결되는 문제예요, 전적으로.
그런 점에서 공직에 나가겠다는 정치인들이 매스컴을 통해 성소수자를 부정하는 발언을 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효록 정말 공감해요. 성소수자인 나, 가정에서의 나, 사회에서의 나. 자아가 분리되면 인간은요, 불안해요. 모든 고통이 불안에서 오는데, 성소수자가 느끼는 불안은 성다수자가 짐작도 못할 불안이에요.
자캐오 가장 강조하고 싶은 건 이거 하나예요. 사람 문제라는 거.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라는 거. 성소수자 문제가 워낙 첨예한 쟁점이 돼서 그런지 저도 가끔 저한테 놀라요. 사람 문제가 아니라 논쟁 거리로 대하고 있거든요. 이건 그냥 고통받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문제라는 걸 꼭 기억해주시면 좋겠어요. 저와 동행하던 성소수자분이 최근에 외국으로 취업하셨는데요. 덥다고 기프티콘으로 커피 한 잔 선물을 보내준 거예요. 자기 존재를 긍정해줘서, 계속 살게 해줘서 고맙다는 메시지랑….
- 광장에 나온 성직자. 일중독. 세 분 공통점 같은데요.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어떻게 보충하시나요.효록 영화 봐요. 특히 에스에프(SF). 가끔 한참 전에 꿈에서 본 장면이 최신 영화에서 나오기도 해요. 그럴 땐 정말 신나요. 아침 요가, 왕복 3~4시간 등산, 이런 게 제 힘이죠. 아, 망고주스 마시면 에너지가 보충돼요.
자캐오 매일 한 시간 반 정도 아내와 대화해요. 카페 가요. 같이 시간 보내면서 각자 할 일 해요. 제 할 일은 주로 책 보는 거구요. ‘미드’(미국 드라마) 좋아하는데 최근에 <코드 블랙>이란 응급실 드라마 보면서 감동 많이 받았어요. 응급실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는 가장 촉박한 곳이잖아요. 타인의 말에 감동받기보다 분석 먼저 하는 유형인데, 이 드라마 보면서는 새벽 3시까지 울고 그래요.
임보라 음악 다 좋아해요. 특히 록, 헤비메탈, 이런 게 시원하더라구요. 고양이 4마리 키우는데요. 저는 눈물이 많은 편인데, 막내가 사고뭉치라 그아이 보면서 웃는 일이 많아요.
글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그래픽 강민진 디자이너 rkdalswls@hani.co.kr
▶ ‘혐오’의 적은 사랑이다. “동성애 박멸” “흡연은 폐암을, 동성애는 에이즈를”. 혐오 세력은 사랑의 세계에 함부로 쳐들어가서 정죄하고 바꾸려 든다. 거꾸로, 사랑의 적은 혐오일까. 아니다. 사랑의 적은 없다. 사랑은 혐오 세력의 축제를 망치려 든 적이 없다. “사랑은 사랑”(#LoveIsLove)일 뿐이라고 사랑은 외친다. 이들은 저주 대신 “긍지”(#Pride)로 차 있다. 사랑이 이긴다. 적이 없는 자가 결국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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