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템포는 유튜브를 통한 실시간 방송으로 청취자의 사연을 받고 이 사연을 토대로 번개탄이라는 힙합곡을 만들어 발표한다. 작사·작곡·녹음·제작·배포까지 모든 과정을 디템포 혼자서 처리한다. 유튜브 갈무리
[토요판] 인터뷰
청춘 위로 힙합 ‘번개탄’ 만든 디템포
▶ 힙합은 이야기에 가장 걸맞은 음악장르입니다. 미국 뒷골목 흑인들은 노예인 조상들보다 남루한 자신의 삶을 극복하기 위한 예술행위로 힙합을 만들었습니다. 결혼·취업·꿈 등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N포세대’들이 힙합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아픈 청춘들에게 사연을 받아 위로의 힙합인 ‘번개탄’을 만드는 래퍼송라이터인 디템포를 만나봤습니다.
힙합은 칼끝처럼 날카롭다.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메시지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미국 뉴욕의 뒷골목에서 구조적인 가난과 인종차별에 신음하던 흑인들은 게토에 갇혀 살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힙합을 만들었다. 힙합은 흑인에게 내적으로는 구원이었고 외적으로는 ‘나 안 죽었다’는 외침이었다. 힙합의 날카로움은 소통을 위한 것이다.
래퍼이자 작곡가인 디템포(Detempo)는 새로운 실험으로 대중과 소통을 해왔다. 2013년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사회비판적인 힙합 뮤지션 가운데 한 명이다. 국정 역사교과서를 비판한 ‘내가 역사교과서를 쓴다면’이나 고위공무원의 개돼지 발언을 비판한 ‘앞발 들어’ 등이 대표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닭에 비유한 ‘새타령(닭전)’은 대통령이 서슬 퍼렇던 시절인 2015년 초에 발표됐다. 디템포의 비판이 어찌나 날카로웠던지 팬들 사이에 “안부가 걱정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처럼 음악으로 세상과 소통해오던 그는 최근에는 힙합으로 청년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새로운 장르적 실험을 시작했다. 인터넷 실시간 방송을 통해 들어온 사연을 토대로 바로 노래로 만드는 프리스타일 방식의 ‘번개탄’을 선보였다. 아직 그의 대표곡인 ‘새타령’만큼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에스엔에스(SNS)라는 해방구에서 대세인 힙합 차림표로 그것도 즉흥랩으로 청춘과 소통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지난 7일 <한겨레>를 찾아온 래퍼송라이터 디템포를 만났다. 검은 배낭에 하늘색 모자를 쓰고 온 그는 7층 편집국의 정치부나 경제부에 앉아 있어도 어울릴 듯한 지적인 외모였다. 목소리는 래퍼라기보다는 방송인처럼 차분하게 들렸다.
가수의 길 열어준 대학의 학과구조조정
-디템포의 뜻은 뭔가요?
“디튠(detune)이라는 음악용어에서 따온 건데요. 믹싱을 할 때 음정을 살짝 조정하면 더 두텁고 탄탄해져요. 여기에 착안해서 리듬을 맘대로 해보겠다는 뜻이죠. 힙합적인 포부죠. 또 좀더 확장해보면 ‘리듬을 파괴해보겠다(디스트럭트)’는 의미도 있어요.
-언제 데뷔했죠?
“2013년 11월인데요 제가 다녔던 학과(중앙대 청소년학과)가 사회복지학부로 통폐합됐어요. 2012년 학과 부학생회장을 하면서 이를 막아보려고 했는데 결국 통폐합됐어요. 그래서 너무 힘들어 1년 휴학을 했는데 그때 음악을 하기 시작했죠.”
-대표곡은 새타령인가요? 어떻게 전통 민요와 힙합을 접목할 생각을 했어요?
“2014년 ‘치킨’이나 ‘안 생겨요’같이 일상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발표했어요. 그해 말 블루스에 빠져 있었는데 우리 민요와 블루스가 유사한 점이 있어서 새타령을 차용해서 작업을 했죠.”
-새타령 뮤직비디오도 재미있던데요?
“만화 그리는 고등학교 친구한테 그림을 부탁하고 거기 나오는 글자는 제가 붓펜으로 일일이 직접 쓴 거예요. 랩이다 보니까 엄청나게 가사가 많아서 쓰느라 고생했죠.”
-촛불집회에서도 새타령을 불렀죠? 100만 관중 앞에서 노래해보니 어때요?
“11월5일이었는데요 무대에 올라가보니 ‘훅’ 하는 열기가 느껴지더군요. 위축되지 말자고 이미지트레이닝을 많이 했는데 그 열기에 밀려 후들거리면서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나요.(웃음)”
차분한 목소리, 날카로운 비판의식 그리고 앨범의 작사·작곡에서부터 믹스마스터링 등 후반 작업까지 모든 걸 자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처리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 역할까지. 대부분을 어깨너머 배웠다고 겸손해하지만 스물여덟이란 젊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내공의 연혁이 궁금했다.
-언제부터 힙합에 관심을 가졌나요?
“관심은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발라드가 대세였던 그때 드렁큰타이거와 조피디가 나왔죠. 처음 들어본 음악인데 좋아서 물어물어서 알게 됐죠.”
-뭐가 좋았나요?
“단편적으로 말이 빠르고 속도감이 좋았어요. 가사에 말이 많고 이야기가 있다는 것도 좋았어요.”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예요?
“고등학교 때 힙합 동아리에 들어갔어요. 동기 중에 4명이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쉬는 시간만 되면 힙합을 연습했어요. 그러다 홍대 놀이터에서 다음 카페 ‘틴랩사모’(TRSM)가 주최하는 모임이 있다는 걸 알고 매달 빠지지 않고 갔었죠.”
-얼마나 왔죠?
“많이 오면 100명도 넘게 왔어요. 보통 오후 2시부터 시작하는데 거기서 붐박스 배터리 떨어질 때까지 랩을 하다가 왔죠. 학생들이니까 돈이 없으니까 배터리를 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쓰레기통 두드리며 박자 넣기도 하고 신고를 받기도 했어요.”
-만나서 뭐 했어요?
“비트 틀어놓고 즉흥랩을 했었죠. 돈이 없으니까 한솥도시락 제일 싼 콩나물밥 1400원짜리 먹으면서…. 한마디로 거지였죠. 하지만 그때도 너무 좋았고 지금 생각해도 좋아요.”
-집에서도 알았나요?
“당연하죠. 랩 하고 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하고 왔죠.”
최선을 다해 멍때리기가 영감의 원천
디템포의 부모는 개방적이었다. 아버지는 교사였다. 아버지는 공교육이 미덥지 않으셨는지 그에게 특목고와 대안학교를 권했다고 한다. 그는 대안학교인 이우학교를 택했다.
-성남 이우학교를 택한 계기는?
“부모님이 강요하신 건 아니었고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해서 갔어요.”
-가서 어떤 경험을 했나요?
“일단 공부는 전혀 안 했고(웃음). 어떻게 보면 지금보다 더 실험적이었죠. 농사가 재미있었어요. 농사는 학기마다 한시간씩 해야 했었어요. 등교하면 무조건 물을 줘야 했죠. 덕분에 대학 때 3년 동안 농활대장을 했어요. 또 엔지오(NGO) 활동도 기억나네요. 학교에서 알아서 어딜 가라고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찾아서 가야 했어요.”
-어딜 갔나요?
“팔레스타인평화연대를 갔어요. 예루살렘의 분리장벽 문제에 관심이 있었죠.”
그는 중학교 때부터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인터넷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슬픈 역사를 알게 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학생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궁금했다. 그는 ‘왜’라는 질문을 자주 던진다고 말했다.
-원래 반항적인가요?
“원래 불만기가 있는 듯.(웃음) 그렇다고 생활에서 반항적인 건 아니었죠. 예를 들어서 중학교 때 머리를 짧게 짤라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전교 1, 2등은 머리가 긴데도 뭐라고도 안 해요. 머리가 공부에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가 혼났죠. 이렇게 어떤 일이 납득이 안 돼 왜라고 생각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생각을 가지고 확장하고 전개하는 거 그게 더 중요해요.”
-그런 확장의 에너지는 어디서 오나요?
“최선을 다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거. 휴대폰 충전도 안 하고 화장실도 안 가고 심지어 숨쉬는 거조차 귀찮아하는…. 어렸을 때부터 즐겼는데 아직도 많이 하고 좋아해요. 제 나름대로의 명상인 거 같아요. 실제 저는 그 시간을 못 가지면 몸 상태가 안 좋아져요. 잠자는 거랑 다른데요, 일종의 ‘시스템 조각모음’ 같은 시간을 갖는 거죠. 그럼 영감이 떠올라요. 그러면 바로 메모하죠.”
-언제부터 최선을 다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걸 즐겼어요?
“원래 어릴 때 하던 공상을 어른이 된 지금도 하고 있는 거죠.(웃음) 엄마가 어릴 때 이야기를 해주시다 제가 가만히 있으면 ‘뭐 해?’라고 물으면 ‘생각하고 있어’라고 대답했대요. 어릴 때부터 그랬던 거 같아요.”
이른바 ‘멍때리기’가 영감의 원천이라니. 매일 멍때리지만 아무런 아웃풋 없는 나는 뭔가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주로 스마트폰을 끼고 멍때려서 그런가?
노래와 삶 일치해야 진짜 ‘스왜그’
-‘번개탄’도 시스템 조각모음의 성과인가요?
“제가 유튜브에 노래를 올리고 실시간 방송도 하는데요. 지난해 11월 말 새벽에 방송을 하면서 사연들 보내주세요라고 했는데 6명이 사연을 보내줬어요. 라디오 방송하고 다르게 이야기도 자유롭고 실시간 채팅도 할 수 있어요. 실시간 채팅을 하다가 사연을 랩으로 만들어보라고 제안이 왔고 번개탄이란 제목도 시청자가 남긴 댓글을 보고 결정했어요. 지난주인 2월 초 2탄이 나왔고요.”
-번개탄은 무슨 뜻이에요?
“힙합에서 비트가 쿵짝쿵짝 나오면 바로 가사를 붙이고 녹음하는 것을 번개송이라고 하는데요. 그것처럼 사연을 접수하고 방송이 끝나면 바로 그날 새벽에 노래를 만들어 번개처럼 올려요. 그래서 그런 이름을 붙여봤어요.”
-노래 만드는 데 하루가 안 걸려요?
“4시간쯤. 새벽에 올리고 그날 오후 6시로 예약걸기를 해요. 오후까지 뻗어서 자다가 일어나 보면 사연 보낸 분들이 감사하다고 댓글을 달죠.”
이쯤이면 질투를 넘어서 ‘리스펙트’(뮤지션을 존중한다는 뜻의 힙합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의 단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실시간으로 사연을 받아 그걸 정리해서 몇시간 만에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위로를 자신의 채널에 실시간으로 방송을 하다니. ‘창작+제작+소통’의 과정을 반나절 만에 모두 직접 처리한다는 이야기다. 수용자의 숫자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그는 창작자이자 제작자이고 1인 미디어인 셈이다. 동반자살에 빈번히 이용되는 무시무시한 ‘번개탄’이 그의 손을 거치면 희망의 불판쯤으로 변신하는 셈이다. 그가 왜 ‘갓템포’(갓은 최상급에 붙이는 접두사)로 불리는지 알 만하다. 누리꾼 ‘이무기’는 번개탄 유튜브 페이지에 “진짜 급하게 휘갈겨 써서 보냈는데 그걸 이렇게 멋진 가사로 만들어주시다니…ㅠㅜ(감동)”이란 댓글을 달았다.
-어렵지 않아요? 사연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상담해주기도 쉽지 않을 텐데요.
“해 뜨기 전에 노래를 완성해야 하니까 시간도 없고, 그리고 제가 전문적인 상담전공자도 아니라서 조심스럽죠. 제가 이러저러 해라 하는 것보다는 기본적 제언이라고 하죠. 한다면 잘 생각해보고 힘을 내시라 이렇게 감정적인 지지를 보내는 거죠.”
-“이건 4년 전 두려움에 떨던 복학생인 내 모습” “연애는 나도 모르는 부분이니 알아서” 이런 펀치라인(한방이 있는 인상적인 가사란 뜻)이 웃음 짓게 하던데요.
“예전 전공 수업 때 들은 풍월인데요. 심리상담의 원칙이 감정적 공감 그리고 나도 그런 일이 있다란 자기개방이잖아요. 실제 학과 폐지돼 두려움에 떨던 대학생이 제 모습이니까요. 그런 걸 보여주는 거죠. 굳이 이렇게 해 현실적인 해결책을 주기보다는 ‘아 내 이야기로 누군가 노래를 만들어줬구나’ 이런 한번 털어놓은 느낌. 그걸 주려고 하는 거죠.”
날선 사회비판해온 래퍼 디템포 심야 실시간 방송에서 사연 받은 뒤 위로의 즉석랩 ‘번개탄’ 선보여 신청자에게 공감과 지지 선사
학과통폐합 방황하던 복학생에서 작곡·녹음까지 하는 가수로 변신 “나도 28살…청춘들의 불안감 공감 자유와 실험의 힙합 계속 부를 것”
번개탄 같은 프리스타일을 비롯해 그는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하고 있다. 얼마 전엔 광화문광장에서 받은 느낌과 생각을 정리한 슬램곡 ‘광장’을 발표했다. 광화문광장에서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한 차 소리만 들리게 하고 ‘내 주인은 나’라는 메시지의 랩을 펼친다. ‘슬램’(Slam)이란 힙합에서는 무반주 랩을 말한다.
또 그는 작곡가, 악기연주자, 보컬 등 여러 분야의 젊은 뮤지션들이 소속되어 있는 ‘플라이머스’라는 뮤지션 크루에서 활동중이다. 그는 주로 작곡과 녹음 제작 등의 전반적인 과정을 맡는다. 3월에는 사랑 이야기를 담은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해 말 발표한 사랑 노래도 좋던데요.
“사랑도 젊은 사람이 겪는 일이고. 저도 겪고 있는 일의 하나잖아요. 사랑 노래 말고도 다양한 노래 준비하고 있어요. ‘새타령 2탄’도 지금 작업중인데 3월 초 공개할 계획이에요.”
-이렇게 다양한 실험을 하는 이유는 뭔가요?
“개인적으로 학과통폐합을 경험했던 것이 큰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관심사가 다른 래퍼보다 사회 이슈를 다루고 있는 거 같아요. 여러 가지를 해보면서 제가 잘할 수 있는 색깔을 찾아가고 있어요.”
‘스왜그’(swag)란 힙합 용어가 있다. 세익스피어의 희곡에서 처음 나온 말로 ‘건들거리다’란 뜻이다. 힙합에선 자기과시로 통한다. 저항과 자유의 음악인 힙합다운 스왜그가 있고 돈 자랑 같은 시시콜콜하고 개인적인 스왜그도 있다. 디템포에게 스왜그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어떤 음악가가 갖는 개성, 사람의 향이 스왜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래에서는 자유를 외치지만 삶이 그 반대라면 그 사람의 스왜그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튜브 등 최신 디지털 환경을 활용해 세상과 막힘없이 소통하면서도 ‘노래와 삶의 일치’라는 고전적 원칙을 고집스럽게 지키려는 청년 음악가에게서 향기나는 스왜그를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
지난해 11월 첫선을 보인 디템포의 ‘번개탄 한장’. 유튜브 갈무리
2월 초 나온 디템포의 따끈따끈 신곡 ‘번개탄 두장’.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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