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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1.06 19:42 수정 : 2017.04.07 15:42

게티이미지뱅크

[토요판]인터뷰
2017년 대한민국의 닭 가상 인터뷰

게티이미지뱅크

▶ 하루에도 수만마리 닭들이 땅에 파묻히는 중에 ‘붉은 닭’의 해, 정유년을 맞았다. 닭이 울면 어둠이 끝나고 새벽이 온다. 2016년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긴 어둠이었다. 정유년 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우리에게도 새벽이 올까? 그 새벽이 사람들뿐만 아니라 닭들에게도 올까?

“2017년은 정유년, ‘붉은 닭’의 해.”

닭의 입장에서 보자면 웃기는 소릴지도 모른다. 오늘도 불철주야 닭다리와 닭가슴살을 뜯어 먹기 바쁜 인간들이 외치는 샤머니즘 주술 같은 그런 소리 말이다. 때마침 ‘창궐’한 조류인플루엔자(AI)는 무서운 속도로 번져 안 그래도 비참한 닭들의 생을 위협하는 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4년 한국의 하루 달걀 소비량은 4000만개, 국민 1인당 연간 닭고기 소비량은 15.4㎏이다. 국내에서 달걀을 얻기 위해 기르는 닭(산란계)은 7000만마리, 고기를 얻기 위해 기르는 닭(육계)은 8000만마리다.(2016년 9월 기준) 한우와 젖소(육우 포함)와 돼지를 모두 합해도 1000만마리 안팎이다.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한 동물인 닭은 가장 학대받는 동물이기도 하다. 도시 사람들에게서 쫓겨난 닭들은 빛도 바람도 들지 않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 속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엄청난 고통을 겪는다. 그러다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면 감염된 닭들은 물론이고 근방 3㎞ 이내 닭들도 ‘예방’ 차원에서 땅에 묻힌다. 조류인플루엔자로 살처분된 닭과 오리는 지난 3일, 48일 만에 3000만마리를 넘었다. 때가 때인지라 평소에도 만만치 않은 성격이 더 까칠해진 닭을 만났다.

-닭의 해에 불어닥친 조류인플루엔자로 상심이 크시겠다.

“알면서 왜 묻나? 그걸 물어보려고 부른 건가?”

-심경이 아주 날카로우신 것 같다.

“입장을 바꿔봐라. 3000만마리가 넘었고 그중 닭이 2600만마리다.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려 죽은 닭’이 아니고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린 닭’도 아니고, 잘난 너네 인간들이 예방적 차원이라며 멀쩡한 애들까지 파묻은 게 그 정도야.”

-2600만마리는 대부분 ‘달걀 낳는 닭’인가?

“정확히는 2598만마리인데(1월4일 기준) 그중 2255만마리가 산란계, 즉 달걀 낳는 닭이다. 전체 산란계의 32.3%(1월3일 기준)에 이른다. 그러니 달걀값이 오르지.”

-‘산란종계’는 절반 가까이가 처분됐다는데, 산란종계가 뭔가?

“종계가 번식을 위한 닭이니까, 산란종계는 ‘달걀 낳는 닭을 낳는 닭’이지. 이들이 낳은 병아리가 산란계가 되려면 6개월 정도가 걸리거든. 산란종계 절반이 처분됐으니, 당분간 달걀값이 오를 거란 얘기가 나오는 거잖아. 그래서 중요한 거야.”

AI 터지면 살처분 정책만 고집
대책 망설이며 방역만 강조하니
48일 만에 3000만마리가 사라져

“애꿎은 철새 탓 그만 좀 하고
싸게 많이 먹는 게 최선일까?
공장식 축산, 개선할 수 없을까?”

“‘닥그네’라는 말, 닭에게 모욕
사람 알아보고 기억력도 있다
우리도 동물이고 생명이잖아”

“뭔 툭하면 철새 탓이래”

-정부는 곧 달걀을 수입한다는데.

“뭐 엄청난 대안을 내놓은 것 같아 보이지? 달걀은 지금도 수입하고 있어. 다만 우리가 시장에서 보는 달걀(신선란)이 아니라 달걀액이나 가루 등을 밀봉해서. 왜? 동네 슈퍼에서 사도 들고 가다 깨지는 게 달걀이야. 근데 그걸 비행기에 실어서 외국에서 수입해 오면 어떻겠어? 고이 모셔와야 할 거 아냐? 그러면 운송료가 많이 들 거고.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거라는 얘기지.”

-그래서 양계협회에서도 반발하는 건가?

“농가들은 수급불균형을 걱정하지. 이미 국내 달걀 농가가 과잉이었거든. 치밀한 계획 없이 외국산 달걀 들여왔다가 조류인플루엔자가 잠잠해져서 달걀값 폭락하면 어쩔 거야?”

-소비자 입장에선 나쁘지 않을 수도 있겠네.

“소비자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달걀 농가 수익이 떨어지면 관리 비용도 떨어져. 다닥다닥 붙어서, 아니면 케이지에 갇혀서 평생 알만 낳다가 생을 마치는 닭들이 늘어나겠지. 그러다 또 조류인플루엔자가 퍼질 수도 있는데, 그게 좋아? 뭐 인간들이야 또 파묻으면 되니까 상관없겠지.”

-‘달걀을 그동안 너무 싸게 소비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우리 닭들 입장에서야 사육 공간이 더 넓었으면 싶지. 지금 축산법엔 A4 용지 한장 크기(0.062㎡)보다 작은 0.05㎡잖아. 그런데 그게 넓어지면 결국 달걀값이 오를 테고, 그러면 서민들은 또 부담이 되겠지. 복지농장을 해도 마찬가지일 테고.”

-잘난 인간 걱정까지 해주는 건가?

“고민 좀 해보란 소리야. 싸게 많이 먹는 게 최선인지.”

-외국에선 살처분을 안 해?

“사람 먹자고 기르는 거니 뭐 크게 다르겠냐만. 적어도 한국처럼 ‘조류인플루엔자 발병=살처분’은 아니잖아. 미국에선 발생한 농가에서만 24시간 이내에 살처분하고 반경 3.2㎞ 안에선 모니터링을 할 뿐이야. 일본도 발생 농가만 살처분하고 3㎞ 안 농가들엔 이동을 제한하지. 그런데 우리는 반경 500m 안은 무조건 살처분하고 필요에 따라 3㎞ 안까지 닭과 오리들을 살처분하고 있잖아.”

-정부는 ‘안락사’라고.

“‘환기팬의 전기를 차단해 산소공급 중단 및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조류인플루엔자 긴급행동지침) 이게 안락사야? 질식사지. 딱 히틀러 가스실이구먼.”

-백신 역시 도입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바이러스 유형이 다양해 백신의 효과를 장담하기도 어렵다는 말도 있다.

“그 ‘비용’을 생각하다 아무것도 못하고 이 지경까지 온 거잖아. 방역이 최선이라고만 하면서. 그런데 너네가 그렇게 강조하는 방역을 제대로 하기는 해? 대책이라곤 살처분과 이동 제한이 전부이고. 매몰 비용도 농가가 부담하잖아. 그러니까 농가에서 직접 살처분을 하기도 하고, 그냥 살아있는 애들을 파묻기도 하는 거잖아.”

-철새한테 책임을 떠넘기는 건 인간 입장에서 봐도 좀 무리수인 것 같긴 하다.

“무슨 입만 열면 철새야. 아니 그렇게 철새가 문제면 오지 말라고 하든가. 철새도래지라고 홍보하고 철새가 안 온다고 걱정하면서 터지면 맨날 철새 탓이래. 철새가 바이러스를 가져와도 그래. 그 철새가 닭장에 들어가? 결국 철새 똥오줌을 어디엔가 묻힌 사람이 전파하는 거잖아. 그리고 철새가 한국에만 있냐? 중국도 가고 일본도 가는데 왜 한국에서 유독 조류인플루엔자가 퍼지는데? 그게 다 방역을 제대로 못하거나 공장식 시스템 탓에 빨리 퍼지는 거잖아.”

-닭들이 원하는 대안이나 의견은 뭔가?

“너네 좋자고 키우면서 왜 그걸 우리한테 묻냐? ‘동물 복지를 한번쯤 생각해 달라’고 하면 ‘한가한 소리 하고 있네’ 할 거 아냐? 육식 좀 줄여달라고 하면 들을래? 지금 사람들에게 닭은 달걀을 낳거나 고기를 제공하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잖아. 빛과 진리의 상징은 개뿔.”

신성한 존재에서 문란의 상징까지

-말 나왔으니 다른 얘길 좀 해보자. 옛날 닭은 지금 닭과 모습이 많이 다르던데.

“말하자면 긴데. 지금 사람들이 기르는 닭은 3000~4000년 전 동남아시아에서 인도 북서부까지 넓은 지역에 퍼져 살던 야생닭들이 길들여진 거지. 당연히 지금보단 더 날씬하고 날렵했지. 앤드루 롤러라는 사람이 쓴 책 <치킨로드>에, 미국 생물학자 윌리엄 비비가 1911년 미얀마에서 닭의 조상인 적색야계를 보고 묘사한 게 나와. ‘날씬하고 호리호리한 몸태에 길고 검은 발톱이 난 다채색의 새’, ‘낮게 내려온 꼬리, 약간 굽은 다리, 늘 경계하며 귀 기울이고 관찰하는 머리’, ‘집닭의 허약한 근육과는 전혀 다른 근육’. 싸움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있지? 거기에 가까울 거야.”

-그 닭들이 유럽을 거쳐 아메리카까지 전파됐군.

“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그래. 물론 오스트레일리아 동쪽 폴리네시아 사람들이 1200년 즈음에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나 이스터섬까지는 갔어. 그런데 그들이 거기서 더 동쪽으로 아메리카 대륙까지 갔는진 아직 확실하지 않아. 만약 그렇게 되면 구세계(유럽+아시아)와 신세계(아메리카)를 이어준 사람이 유럽인이 아닌 동양인이 되는 거니까, 역사를 새로 써야 할 거야.”

-아주 박학하시다.

“닭뼈 때문이야. 남아메리카 서쪽 해안에서 신대륙 발견 이전 시대 것으로 보이는 닭뼈가 발견된 적이 있거든.”

-그럼 폴리네시안들이 아메리카까지 간 거 아닌가?

“쉽게 단정하긴 어려워. 우선 콜럼버스 일행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 때 기록들을 보면 닭의 흔적이 없어. 그리고 닭뼈라는 게 다른 뼈랑 달리 지층을 이동할 가능성이 커.”

-무슨 말이지?

“닭뼈는 가볍고 작은데 또 맛있거든. 설치류들이 이 뼈를 먹다가 옮겨놓을 수도 있고. 더 오래된 지층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지. 그래서 수백~수천년 시간을 잘못 계산하는 일도 많아, 고고학에서.” -유럽 교회 첨탑에서 보는 닭 모양 풍향계? 그건 무슨 유래야?

“더 과거로 가면 끝이 없겠지만, 그리스도교와 수탉이 관련이 있지. 결론부터 말하면 수탉은 회개를 상징하지. 성서에 예수의 제자 베드로가 수탉이 두번 울기 전에 스승 예수를 세번 부인할 것이라는 예언이 있어. 예수가 부활할 때도 수탉이 울었다고 하고. 그거 말고도 많은데, 다 하자면 너무 길어.”

-수탉은 ‘문란한 성’의 상징으로 묘사하기도 하잖아.

“너네 인간 입장에서 보면 그리 보이겠지. 닭은 사람처럼 성기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교미하지 않아. 배설강이라 불리는 소화와 비뇨와 생식 기능을 동시에 가진 기관이 서로 ‘키스’하는 수준에서 끝나. 그래서 짧은 기간에 여러 암컷들과 교미를 할 수 있지. 그걸 사람들은 문란하다고 하는 거지만 진화의 산물이야. 17~18세기 유럽에선 그래서 음란하고 어두운 존재로 탄압받기도 했어.”

-달리 보면 다산의 상징인 건데.

“그래서 우리나라 결혼식 초례상에 닭을 보자기로 싸서 놓아두기도 했지. 하여튼 인간들, 필요할 때 편한 대로 가져다 쓰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

날개를 펼칠 공간조차 없는 비좁은 사육장에서 닭은 히스테리에 시달리다 서로를 공격하기도 하고 의문사하기도 한다. 닭 사육장이라기보다 닭 정신병원에 가깝다. 게티이미지뱅크

“닭은 인간이랑 닮았다”

-우리나라에선 안 좋은 표현에도 닭이 많이 쓰여.

“무슨 말이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같은 말.

“어디 가서 공개적으로 한번 해봐, 그런 말.”

-‘닭대가리’라는 표현도.

“개나 고양이 같은 포유류들에 비하면 지능이 떨어지겠지. 그런데 닭이 다른 조류들에 비해 똑똑하면 똑똑했지 멍청하진 않아. 반려동물로 닭을 기르는 사람들 얘기 못 들어봤어? 주인도 알아보고 영역도 지킬 줄 알아. 새벽에 닭이 왜 우는지 알아? 빛을 인식하는 감각이 발달돼 빛을 느끼면 체내 자명종에 알려주는 거지. 좌뇌와 우뇌가 있고, 각인 실험 결과 기억력도 있다는 게 확인됐어.”

-‘닥그네’라는 말도 있다.

“길게 얘기 안 할게. 그건 우리 닭들에게 모욕적인 표현이야.”

-퍼드덕거리는 것 때문에 닭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닭은 우리한테 친숙한 동물이잖아.

“요즘처럼 대량으로 잡아먹기 전엔 그랬지. 가릴 것 없이 잘 먹고 어떤 기후 조건에서도 잘 사니까 소, 돼지가 없는 집은 있어도 닭은 빠짐없이 키우던 때가 있었지. 닭은 돼지와 달리 사람들이 못 먹는 걸 먹어.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닭은 없어서는 안 되는 식량이 되었는데, 동시에 사람들은 닭을 시야에서 없애버린 거야.”

-다시 앞부분으로 돌아가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사람은 닭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

“닭은 사실, 인간이랑 닮았어.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해 살아남고, 신성한 듯하면서도 성욕도 왕성하고(웃음), 무리 생활을 하지만 때로는 매우 독립적이지…. 요즘 같은 시대에 ‘뒷마당에 닭을 키워보라’고 할 순 없지만, 치맥을 먹기 전에 그때 그 시절을 한번쯤 상상해봤으면 좋겠다. 치맥이든 치느님이든 그건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낸 물건이 아니라는 걸. 인간이랑 같이 살았고 지금도 같이 살고 있는 동물이고 생명이라는 걸 말이다.”

-바쁜데 시간 내줘 고맙다.

“그따위의 말, 전혀 고맙지 않아.”

-인터뷰 중에 쪼지 않아 고맙다.

“가라, 얼른.”

참고

<치킨로드>(앤드루 롤러 지음, 이종인 옮김, 책과함께 펴냄)

농촌진흥청 누리집(www.rda.go.kr)

‘사상 유례없는 살처분, 조류인플루엔자 대책 마련을 촉구합니다!’(동물자유연대 논평. 2016년 12월21일)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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