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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22 15:38 수정 : 2017.05.22 16:16

2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형사대법정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뇌물수수, 제3자 뇌물수수 등 18개 혐의에 대한 첫 공판입니다. ‘공범’인 최순실씨도 나란히 피고인석에 앉습니다. ‘40년 지기’ 두 사람은 지난해 9월 <한겨레> 단독보도로 ‘최순실 게이트’가 시작된 뒤 다시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약 8개월 만의 만남인 셈입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대국민사과와 올해 초 신년 기자간담회 등에서 최씨 존재에 대한 ‘주장’을 펼쳤습니다. 최씨도 최근까지 재판을 받으며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다시 만난 두 사람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제기되는 가운데 8개월 동안 어떤 말들이 오고 갔는지 돌아봅니다.

#1막 ‘40년 지기’ 인연이 드러나다

최씨의 국정농단 의혹에 침묵하던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10월24일 저녁 <제이티비시>(JTBC)의 최씨 태블리피시 보도가 나가자 바로 다음 날 대국민사과에 나섭니다. 그가 최씨 존재에 대해 처음 입을 뗀 순간입니다. 11월4일 2차 대국민사과에서도 최씨를 언급합니다. ‘40년지기’라는 세간의 의혹은 사실이었습니다.

“최순실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됐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으나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두었습니다.” (2016년 10월 25일 1차 대국민사과)

“국민 여러분, 저는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혹여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염려하여 가족 간의 교류마저 끊고 외롭게 지내왔습니다. 홀로 살면서 챙겨야 할 여러 개인사들을 도와줄 사람조차 마땅치 않아서 오랜 인연을 갖고 있었던 최순실씨로부터 도움을 받게 되었고, 왕래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저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추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돌이켜 보니 개인적 인연을 믿고 제대로 살피지 못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에게 엄격하지 못한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2016년 11월 4일 2차 대국민사과)

최씨는 독일 도피 와중에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합니다. 연설문 유출을 일부 시인하면서도 비선실세 의혹 등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을 향해 “심적으로 물의를 끼쳐드려 사과드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사과까지 했다. 나라만 생각한 분이 혼자 해보려고 하는데 안 돼 너무 가슴 아프다. 대통령이 훌륭한 분이고, 나라만 위하는 분인데, 그런 분에게 심적으로 물의를 끼쳐드려 사과드리고 싶다. 정말 잘못된 일이다. 죄송하다.”

“왜 그런 것을 가지고 사회 물의를 일으켰는지 박 대통령에게 머리를 숙이고, 죽고 싶은 심정이다. 국민 여러분들의 가슴을 아프게 해 정말 죄송하다. 제가 신의(信義)로 뭔가 도와주고 싶었고, 제가 무슨 국회의원이 되거나 권력을 잡고 싶은 게 아니었다. 물의를 일으켜 송구하기 짝이 없다. 너무 잘못됐다. 대통령에게 폐를 끼친 것은 정말 잘못했다. 신의 때문에 했는데 이를 어떻게 하면 좋으냐.”

#2막 미묘한 파열음

2016년 12월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습니다. 12월18일 박 전 대통령은 탄핵심판을 맡은 헌법재판소에 답변서를 제출합니다. “절차에 있어 법적 흠결이 있고 소추사유는 사실이 아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도 부정하며 (설사) 최씨가 사익을 추구했더라도 “인식하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최씨의 범죄를 공모하거나 예측할 수 없었다”고도 했습니다.

-미르 ·K재단사업 등은 대통령 국정수행의 극히 일부분이고, 피청구인은 사익을 취한 바 없으며, 최순실의 사익 추구를 인식하지 못했음.

-공무원들이 최순실 등에게 특혜를 제공하였다 할지라도 이는 개인비리이고, 피청구인은 그 과정에 관여한 바가 없으므로 평등원칙 위반이 아님.

-최순실 범죄를 공모하거나 예측할 수 없었고, 미르재단과 대통령 또는 최순실은 별개이고 재단 사유화는 불가능하므로 재단이 받은 기금을 뇌물과 동일하게 볼 수 없음.

박 전 대통령이 답변서를 제출한 다음 날인 2016년 12월19일 최씨가 법정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으니 용서해 달라”며 검찰청사에 들어섰던 그가 50일 만에 나온 법정에서는 “공소사실 전부를 인정할 수 없다”며 태도를 바꿨습니다. 그는 “독일에선 벌을 받겠다며 돌아왔는데 확실히 모든 것을 한 다음에 인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2017년 첫 날, 박 전 대통령은 예정에 없던 신년 기자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자기변명’의 자리가 생긴 셈입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특유의 ‘만연체’로 다시 한 번 최씨와의 인연을 설명했습니다.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책무도 있고 또 판단도 있고 또 다 그런 거지, 그것을 어떻게 지인이라는 사람이 여기저기 막 다하고 뭐든지 엮어 가지고 이렇게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죠. 저는 제 나름대로 국정운영에 어떤 저의 철학과 소신을 갖고 쭉 일을 했고,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 그래서 복지나 안보·외교·경제 정책 이런 모든 것이, 물론 주위에 참모라든가 그런 분들하고 다 의논을 해서 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해 나가면서 계속 저 나름대로 이 부분을 더 좀 정교하게, 자꾸 그렇게 하다 보니까 좋은 생각도 나고, 또 좋은 아이디어도 얻게 되고, 계속 외교 부분, 안보 부분 모든 것을 발전시켜 왔어요. 그래서 지금은 그런 어떤 틀을 갖췄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더 좀 뿌리내리게,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열심히 해서 그래도 뭔가 좀 좋은 마무리를 해야지, 이렇게 생각하다가 이런 일을 맞게 됐습니다.”

#3막 박 전 대통령의 늦은 후회

최씨는 2017년 1월16일 헌법재판소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기일에 나와 눈물을 흘렸습니다. 박 전 대통령과의 오랜 인연을 말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이날 최씨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사유가 된 본인의 ‘국정농단’을 부인하며 언성을 높이고, 세월호 참사 당일 2014년 4월16일 오전에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냐고 묻자 “어제 일도 기억 안 난다”는 무성의한 태도를 보였지만 유독 이 대목에서만큼은 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국회의원 보궐선거에도 주변에 아무도 안 계시고 어려운 상황에서 나가서, 유연이 아빠(정윤회씨)가 도와달라고 했다. 전두환 시절에 많은 핍박을 받으셨는데, 그때 마음을 힘들게 가지셔서 거의 가택에서 계셨기 때문에 그때 많은 위로를 편지로나 해드렸다. 어렵고 힘들 때 도와드려서 인연이 그랬다. 제가 곁에서 떠날 수 없던 것도 주변에 챙겨주실 분들이 마땅히 없었고, 본인이 필요한 개인적인 거나 해주실 분이 없어서 제 나름대로는 (울면서) 충신으로 남고자 했는데 이런 물의를 일으킨 것은 정말 죄송한 마음입니다.(울음)

박 전 대통령은 본인 탄핵심판 최종변론에 나오는 대신 직접 작성했다는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대통령 대리인단의 이동흡 변호사가 읽어내려간 의견서에서 박 전 대통령은 탄핵사유를 전면 부인했습니다. 모두 “오해”나 “의혹”이라는 겁니다. 최씨에 대해선 “후회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듯이 어렵고 아픈 시절을 보내면서 많은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아픔을 겪었었습니다. 최순실은 이런 제게 과거 오랫동안 가족들이 있으면 챙겨 줄 옷가지, 생필품 등 소소한 것들을 도와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동안 최순실은 제 주변에 있었지만, 그 어떤 사심을 내비치거나 부정한 일에 연루된 적이 없었고, 이로 인해 제가 최순실에 대하여 믿음을 가졌던 것인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의 그러한 믿음을 경계했어야 했는데 하는 늦은 후회가 듭니다.”

“최순실이 제게 소개했던 ‘KD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의 자료도 이러한 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을 도와주려고 했던 연장선에서 판로를 알아봐주라고 관련 수석에게 전달을 하였던 것이며, 위 회사가 최순실의 지인이 경영하는 회사이고 최순실이 이와 관련하여 금품을 받은 사실은 전혀 알지도 못했으며,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4막 어떤 재회가 될까

5월2일 열린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 대한 첫 공판기일에서 최씨 변호인은 법정에 나오지 않은 최씨의 말을 대신 낭독했습니다. 최씨 변호인은 “최씨가 오랜 세월 존경하고 따르던 박 전 대통령을 재판정에까지 서게 한 자신에게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을 토로한다. 박 전 대통령과 같은 자리에서 재판을 받는 것은 살을 에는 고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최씨는 지난해 12월 이후 본인 재판이나 조카 장시호씨 재판 등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변함없는 존경심을 밝혔습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최씨는 5월19일에도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을 20대 때 처음 봤는데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시고 굉장한 고통 속에 계셨다. 마치 젊은 사람들이 팝 가수를 좋아하는 듯한 애정 관계가 제 마음속에 성립됐다”고 말했습니다.

40년 인연은 끝내 ‘배신의 정치’로 마침표를 찍게 될까요?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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