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4.20 17:51
수정 : 2017.04.20 17:58
2차 TV토론 말말말
사상 처음으로 ‘스탠딩 토론’으로 진행된 대선후보 토론회가 난타전으로 마무리됐다. 19일 밤 〈한국방송〉이 주최한 2차 텔레비전 토론회에 나온 5당 대선후보들은 120분 내내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눈치 작전을 벌였다. 이번 토론회는 후보들이 질문과 답변을 각자 9분 동안 할 수 있는 ‘총량제’ 방식으로 진행됐다. 후보들은 준비된 원고나 자료 없이 자신의 평소 생각과 지식으로 토론을 이어나가야 했다. ‘각본 없는 토론’은 북한 핵실험, 주적 논란, 국가보안법 폐지 등 예민한 이슈들을 둘러싸고 후보들 간의 ‘애드리브 설전’으로 이어졌다.
문재인 “주적, 대통령으로서는 할 말이 아니다”
토론회의 중심에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있었다. 발언의 순서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후보들의 질문이 문 후보에게 집중돼 문 후보는 할당받은 9분을 대부분 답변하는데 썼다. 특히, 외교·안보 분야를 위주로 진행된 토론 전반부에서 문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사드 배치, 대북송금, 국보법 등을 두고 집중공세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문 후보에게 “북한이 주적인가”라고 물었고, 문 후보는 “‘주적’ 같은 표현은 대통령이 할말이 아니다. 국방부는 (이야기) 할 수 있지만,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풀어가야 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자 유 후보는 “국방백서에 나오는데 국군통수권자가 왜 주적에게 주적이라고 말하지 못하냐”고 계속 몰아붙였다. 다음날인 20일 ‘주적’ ‘문재인 주적’ 등의 검색어가 각종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심상정 “대북 송금, 선거 때마다 우려먹을 건가”
토론 전반부를 지배하던 ‘색깔론’은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나서면서 정리됐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김대중 정부 시절 대북 송금을 물고 늘어지자 “대북 송금이 도대체 몇 년이나 지난 이야기냐. 선거 때마다 그렇게 우려먹을 건가. 국민들이 실망할 것이다. 앞으로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할 것인가 이야기해야지, 재탕 삼탕하면 무능한 대통령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홍준표 “설거지 발언은 센 척하려고”
심상정 “홍준표 스트롱맨 아니라 나이롱맨”
심 후보는 홍 후보에게 ‘돌직구’를 날렸다. 안 후보가 홍 후보에게 “얼마 전 설거지가 여성의 몫이라고 했다. 너무나 심한 발언인데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홍 후보가 “내가 스트롱맨이라고 그래서 센 척하려고 그런 것이다. 집에 가면 설거지는 내가 다 한다”며 눙을 치자, 심 후보는 웃음기 가신 목소리로 “홍 후보님, 웃어서 넘기실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딸에게 이 자리에서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결국 홍 후보는 “그 말이 잘못됐다면 사과하겠다”고 말했다. 심 후보는 “스트롱맨이 아니라 나이롱맨”이라고 비판했다.
홍준표 “꼭 하는 짓이 이정희 같아” “참 어이없는 토론이다”
홍 후보는 궁지에 몰릴 때마다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선 후보를 ‘강제소환’했다. 유 후보는 홍 후보가 ‘성완종 리스트 사건’ 1심 유죄를 받은 것을 거론하며 “당원권 정지 상태에서 당헌·당규대로라면 1심에서 유죄일 경우 출당·제명인데 (홍 후보는) 특별 징계 사면 조처로 당원권을 회복해 출마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유한국당에서 당원권 정지를 시켰다. 앞뒤가 안 맞지 않나”고 꼬집었다.
그러자 홍 후보는 “꼭 이정희를 보는 것 같다. 주적은 저기”라며 문 후보를 가리켰다. 이어 “시간이 없는데 왜 자꾸 말을 하게 하나. 꼭 이정희 보는 것 같다”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후 유 후보가 경상남도 무상급식 논란을 두고 비판을 하자 재차 “이정희 같다”고 말했다.
홍 후보가 내뱉은 “참 어이없는 토론”이라는 하소연은 이번 토론회를 지켜본 이들의 감상을 대변하기도 했다. 처음 이뤄진 ‘스탠딩 토론’ 형식에 깊이 있는 토론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상대의 단점을 캐묻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한 이번 토론이 어이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안철수 “스티브 잡스가 ‘바지 사장’이라는 주장이냐”
안 후보는 지난 13일 1차 토론회에 이어 이날도 ‘사드배치 찬성’에 대한 질문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홍 후보는 “사드배치 반대 당론을 바꾸려면 박지원씨를 내보내야 한다. 박지원씨가 친북 인사라는 것을 누구나 아는데, 그를 안 내보내고 그 당 실세인데 어떻게 사드 배치 당론을 바꿀 수 있냐”고 공격하며 “박지원씨를 내보낼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이에 안 후보는 “내가 CEO 출신이라 독선적이고 혼자 결정한다는 얘길 들었는데 갑자기 또 ‘박지원 상왕론’이 나왔다. 네거티브도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응수했다. 그러면서 “저는 창업주다.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지금 하신 말씀은 스티브 잡스가 ‘바지 사장’이라는 주장과 같은 말씀이다. 국민은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승민 “문재인 디스를 왜 나한테?”
안 후보는 유 후보에게 “문 후보가 국민을 적폐세력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집중적으로 질문을 받아 답변 시간이 남지 않은 문 후보 대신 유 후보에게 물은 것이다.
유 후보는 당황한 표정으로 “저 보고 물으시는 것인가? 문 후보를 디스하면서…”라고 말을 흐렸다. 문 후보는 옆에서 “대신 답변 좀 잘해 달라”고 말했다. 유 후보는 “국민을 상대로 적폐라고 할 수는 없다. 정치권 안에는 분명히 적폐세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국민의당 안에도, 자유한국당 안에는 아주 많고, 민주당에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 후보가 “바른정당 안에도 있는가”라고 되묻자 “바른정당 안에는 없다”고 답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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