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열차’가 종착역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10일 오전 11시 박근혜 대통령 파면 여부를 결정합니다. 독일 도피 중이던 최순실씨 입국과 구속, 검찰 수사, 현직 대통령 첫 ‘피의자’ 입건, 대통령의 세 차례 대국민 사과 담화, 박영수 특검 출범,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위증으로 얼룩진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 대통령 대리인단의 ‘막장 변론’이 난무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 연인원 1500만명을 넘긴 촛불집회까지 수많은 변곡점을 넘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어떤 결론에 닿을까요. 결론이 무엇이든, 대한민국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사이 국민을 웃고 울린 유행어들도 잇따라 등장했는데요, 역사로 남아 오래 기억될 말들을 소개합니다.
이 말, 듣는 순간 뒷목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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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세 차례에 걸친 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할 때마다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사과라는데 변명처럼 들리고, 약속한 것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4일 2차 담화에서 “필요하다면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라는 2016년 최고의 유행어도 탄생했습니다. “내가 이러려고 취준생 됐나 빈곤감 들고 괴로워” 같이 대한민국의 오늘을 반영한 패러디물이 폭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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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병하네, 염병하네, 염병하네!”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 최순실씨는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공모해 대기업을 압박해 돈을 받아낸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그는 애플 아이폰의 인공지능 비서 ‘시리’(SIRI)를 패러디한 ‘순SIRI’로도 불립니다. 그는 모르쇠와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1월16일 헌재 5차 변론에 증인으로 나와서는 “정말 억울하다. (나한테) 누명을 씌우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얼마 뒤인 1월25일에는 수차례 거부 끝에 특검에 출석하면서
“자백을 강요하고 있다. 너무 억울하다”고 외쳤습니다. 이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특검 사무실 입주 빌딩 환경미화원 임애순(63)씨 왈
“염병하네, 염병하네, 염병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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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릅니다~ 기억이 안납니다~”
2월28일, 90일간의 수사를 마친 특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등 주요 피의자의 기소 혐의에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을 포함했습니다. 국회 청문회에서 위증했다는 겁니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은 청문회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존재 자체나 자신의 관여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특히 답변할 때마다
“의원님~”이라고 말해 화제가 됐습니다. 부인은 하되, 예의는 지키자는 걸까요. 김 전 실장의 별명인
‘법꾸라지’(법+미꾸라지의 합성어)를 따 조 전 장관은
‘조꾸라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우꾸라지’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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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장을 지질게요”
지난해 12월9일 국회에서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찬성 234표, 반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로 가결됐습니다. 투표 전날인 8일에도 당시 새누리당 ‘친박’ 의원들은 “탄핵만은 안 된다”며 동분서주했습니다. 대표 ‘친박’ 이정현 의원은 “오늘이나 내일 당장 (박근혜) 하야하라는 걸 관철하면
내가 뜨거운 장에 손을 지질 것”(11월30일)이라고 말한 바 있어 탄핵안 가결 직후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 의원 동문인 동국대 총학생회와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은 12월16일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선배님, 손에 장 지질 시간입니다” 현수막을 들고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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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 들으면 힘이 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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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하개, 하야하그라”
웃으며 싸웠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매주 토요일 촛불집회가 진행될 때마다 시민들의 ‘드립력’도 일취월장했습니다. 평화집회만큼이나 소중한 ‘촛불’의 유산입니다. 광장에는
장수풍뎅이연구회, 민주묘총, 한국곰국학회 같은 ‘무의미 깃발’이 휘날렸습니다. “아무것도 대의하지 않고, 아무도 선동하지 않으면서 가는 곳이 곧 광장”(영화감독 김곡)이 되는 큰 변화를 만들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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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뜨케 알아쓰까”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총 7차례 청문회를 열었습니다. 툭 하면 불출석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증인들, 이완영 자유한국당(전 새누리당) 의원의 ‘위증교사’ 논란 등이 청문회의 격을 떨어뜨렸고, 일정 정도 성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국민 기대를 충족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국민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준 유행어는 어김없이 탄생했습니다. 뻣뻣한 태도로 일관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취조하듯 다루던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의
“어뜨케 알아스까”(지난해 12월22일 5차 청문회), 조윤선 전 장관 입에서 “예술인들의 지원을 배제하는 그런 명단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는 말을 끌어낸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의
“블랙리스트 예스, 노?”(1월9일 7차 청문회) 발언은 지금까지 회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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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민중가요 작곡가 윤민석씨가 만든 세월호 참사 추모곡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의 가사입니다. 래퍼 치타와 장성환은 세월호 참사 애도곡 ‘옐로우 오션’에서 “흐르는 세월 속 잊지 않을 세월, 호 우리의 빛 그들의 어둠을 이길 거야/ 진실은 침몰하지 않을 거야”라고 노래했습니다. 재치 있는 말도 나왔습니다. 지난해 열린 ‘2016 케이비에스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배우 차인표는 “50년을 살면서 느낀 것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둘째는 거짓은 결코 참을 이길 수 없다. 셋째는 남편은 결코 부인을 이길 수 없다”라는 수상 소감으로 박수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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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담긴 헌법 위배행위 중 하나는 생명권 보장(헌법 제10조) 조항 위배입니다. 헌재 탄핵심판 최후변론에서 양쪽이 ‘세월호 7시간’을 이야기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인 이유입니다. 먼저 대통령 쪽입니다. “다음 대통령 땐 세월호 같은 재난 사고가 안 생길 거 같은가? (중략) 대통령이 세월호 피해자를 구호해야 하는 정치적 책임 있다는 건, 조선 시대 왕에게 있던 것이다.”(김평우 변호사) 다음은 국회 소추위원쪽입니다. “피청구인(박 대통령)의 잘못은 죽어가는 국민을 구하지 못한 잘못이 아니라 구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잘못, 아예 구할 생각을 하지 않은 잘못, 대통령이 위기에 빠진 국민을 구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은 잘못이다.”(이용구 변호사)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지켜지기를, 많은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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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는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였습니다. 촛불과 함께 외친
“이게 나라냐”는 말은 단순한 탄식이 아닙니다. 상식이 바로 서는 사회,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고 국민이 주인되는 사회를 만들자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3월10일이 결승선이 아닌 출발선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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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그래픽 강민진 디자이너
rkdalswls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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