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10.14 18:08 수정 : 2019.10.14 19:25

이나연
제주 출판사 ‘켈파트프레스’ 대표·미술평론가

미국에서 겪었던 큰 허리케인은 2012년 10월 말에 온 ‘샌디’였다. 미국 동부를 강타한 샌디는 특히 뉴욕에 치명상을 남겼다. 다수의 갤러리 수장고와 작가들의 작업실이 훼손되면서 아카이브 자료들과 작품들이 물에 잠겨 파괴됐다. 10억원에 가까운 작가의 회화 작품이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걸 봤다는 얘기가 돌았다. 허리케인이 본격적으로 오기 전날 대형 슈퍼마켓의 빵이나 통조림을 파는 저장식품 매대가 텅 비어 있던 것을 충격적으로 봤던 기억이 있다. 허리케인이 온 날 창밖을 내다보며 그 번화한 뉴욕 거리에 사람이 한명도 없어서 신기해했다.

제주에서 경험한 최고의 태풍은 2007년 9월에 왔던 ‘나리’다. 폭우를 동반한 태풍에 거리의 자동차들이 물폭탄을 맞아 휩쓸려가는 장면이 기록으로 남았다. 2000년 이후의 기념비적 태풍은 나리였지만, 개인적으로 최악이라고 경험한 태풍은 2018년 10월 초에 온 ‘콩레이’다. 야외에 작품 설치를 해야 하는 환경 주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제주 원도심의 산지천에 작가의 작품 두 점을 설치해두고, 실내 전시를 마무리하며 행사 오프닝을 준비하던 때였다. 모르는 번호로 부재중 전화가 수차례 와 있어 콜백을 했다. 산지천 지역을 관리하는 동사무소 직원이었다. 태풍이 오고 있어 산지천의 수문을 열어야 하니 당장 작품을 물에서 건져 놓으라는 거였다.

이미 비는 내리기 시작했고,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스태프들과 작품을 물에서 건져냈다가 태풍이 지나간 뒤 재설치했다. 바다쓰레기인 부표를 가지고 집의 형태를 만들어, 부표 안에 새들이 들어가서 살 수 있도록 한 작품을 산지천 위에 띄우도록 한 이승수 작가의 작품은 그렇게 내 인생의 작품으로 남았다. 말로 하니 간단해서 건져내고 재설치를 했다고 하지만, 가로세로 2미터가 넘는 작품을 물 위에 설치하고 철수하려면 인력으론 부족하다. 크레인 같은 중장비가 동원돼야 한다. 큐레이터가 미술관에서 수장고에 보관된 작품을 선정해 전시장 벽에 걸고, 사무실에 앉아 전시서문을 적는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해다. 태풍과 싸우고, 동사무소 직원과 실시간으로 수문이 열리는 시간을 체크하고, 크레인 기사님 연락처를 휴대폰에 저장하고, 야외 설치는 보험가입이 안 된다는 보험사 직원을 설득하고, 태풍이 와서 죄송하다고 작가에게 사죄하는 일들을 해야 한다.

지난 9월28일 개막한 부산의 2019 바다미술제 ‘상심의 바다’에서 또 한번 이승수 작가의 작품을 만났다. 나와 함께 제주에서 태풍과 싸우던 작가는 이제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총 3차례의 태풍을 만나 자연과 정면으로 대결하고 있었다. 바닷가에 작품 설치가 한창이던 9월 초엔 ‘링링’이 왔다. 작품 설치가 막바지이던 9월 셋째 주에는 ‘타파’가 강타했다. 오프닝 행사를 진행하는 기간 내내 다대포는 다시 ‘미탁’의 영향하에 있었다. 우비를 입고, 우산을 쓰고도 좌우로 끼어드는 빗물은 신발과 바짓단을 적셨다. 그렇게 태풍의 위력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야외설치된 작품들을 보는 일은 환경과 생태에 대해 고민하는 행사의 주제에 걸맞은 것 같기도 했다.

이승수 작가는 제주에서 모은 바다쓰레기들을 시멘트로 사람 형상에 가둬 다대포 해수욕장의 해변과 바다에 설치했다. 50점의 등신대 인물상은 제각기 다른 종류의 바다쓰레기를 품고 넓은 수평선과 해안선에서 존재를 드러냈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작품 제목은 우리에게 장소성에 관해 묻는다. 누군가에게서 혹은 부산에서 나와 제주 바다로 흘러들어간 쓰레기가 예술로 외양을 바꿔 부산 바다로 옮겨졌다. 다대포 해수욕장은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밀물과 썰물 때의 풍경이 전혀 다르다. 썰물 때의 일몰은 절경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이 아름다운 바다도 낙동강 하굿둑이 생기면서 강물의 유입이 막히면서 수질이 나빠지고 있단다. 그렇지만 다대포의 해변과 석양, 바다와 작품이 어우러지는 광경은 환경오염에 대한 염려가 끼어들 틈이 없도록 아름다웠다. 예술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기도, 자연의 위엄에 겁에 질리기도 하면서, 환경에 대한 걱정과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는 데 있어 태풍은 경각심을 주는 하나의 장치였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지역에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