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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8.03 18:06 수정 : 2016.08.09 14:25

황민호
<옥천신문> 제작국장

성주 ‘사드’ 배치 관련 뉴스가 쏟아질 때 눈길을 끈 뉴스가 있었다.

대구경북민중언론인 <뉴스민>이 7월20일 보도한 ‘성주촛불 7일차’ 기사의 두 번째 문장이 확 들어왔다. “2천명의 성주군민들은 ‘사드 성주 배치 반대’가 아닌 ‘한반도 배치 반대’ 구호를 외쳤다. 또 사드뿐 아니라 군청을 상대로 2년 동안 지정폐기물 매립장 폐쇄 투쟁을 벌여온 주민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이 문장은 여러 함의가 있다. 초기 ‘님비’(지역이기주의)라는 비난을 벗고, ‘평화’로 프레임을 짜면서 바깥으로 연대 가능성을 열었다. 성주만의 투쟁이 아니라 성주가 최전선에서 싸우는 투쟁이 된 것이다. 이후 성주 참외에도 ‘한반도 평화위협 사드배치 철회’라는 스티커를 붙이면서 일상적인 삶의 투쟁으로 승화했다. 성주 주민들은 세월호 광화문 농성장을 방문하고, 서명용지를 받아가 서명을 받기도 했다. 성주의 파란 리본과 세월호의 노란 리본은 그렇게 만났다. 진화하는 성주군민의 투쟁도 놀랍지만, 지역언론 노동자인 내 눈길을 끈 대목은 사실 ‘군청을 상대로 2년 동안 지정폐기물 매립장 폐쇄 투쟁을 벌여온 주민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였다.

대부분 성주를 포함한 경북을 새누리당 깃발을 꽂아놓은 지역으로 낙인찍는다. 낙인은 선거 때마다 확인되고 강화된다. 하지만 그곳에도 서울 사람들이 보지 못한, 그래서 알지 못한 투쟁들이 분명 있다. ‘성주 지정폐기물 매립장 폐쇄 투쟁’도 그런 투쟁 중 하나일 것이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계속된 투쟁은 지방언론의 왜곡보도에 맞서기도 했다. 2015년 8월 성주군농민회와 폐기물매립장 피해주민대책위원회는 영남일보사 앞에서 허위기사 규탄 기자회견을 열며 기자 파면과 정정보도 등을 요구했다.

지역 안의 투쟁은 외면받기 쉽다. 서울 뉴스의 편중으로 인해 지역의 소식들은 그냥 묻힐 때가 많다. 지역 주민한테도 사실 외면받기 쉽다. 지역신문을 보지 않으면 지역에 살면서도 까막눈이 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논란이 되는 사안에 같이 연대하고 동참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지만,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에 눈감는다면 이율배반적인 노릇이다. 그래서 이를 제대로 알려주고 짚어주는 건강한 풀뿌리 언론이 절실하다. 뉴스민도 뉴스민이지만, 2016년 7월19일 1면 백지 발행을 하면서 ‘근조 2016년 7월 사드 성주군’을 전면에 배치한 <성주신문>이 이런 세밀한 지역 투쟁을 보도했으리라.

세월호와 사드가 우리에게 던진 의미는 세월호를 추모하고 사드를 반대하는 것을 넘어서서 지역 안의 숱하게 많은 세월호와 사드를 볼 수 있는 혜안과 그에 함께 맞서 싸울 수 있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 아닐까?

옥천도 현직 대통령의 어머니인 육영수의 고향으로, 보수 동네인 양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혹자는 정지용 시인의 고향으로 옥천을 기억할 테지만, 정지용이든 육영수든 옥천을 온전히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옥천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깨어 있는 옥천 주민이다. 서울에선 잘 보이지 않겠지만, 30년 전부터 옥천땅에서 일궈온 주민들의 지역운동사가 있고, 모세혈관에 끊임없이 피를 돌게 한 주민들이 있다.

대청댐 건설 당시 반대했던 투쟁의 역사도, 자유무역협정(FTA)에 끊임없이 반대했던 옥천농민의 목소리와 그리고 안티조선 운동의 선봉에 선 역사도 있지만, 방문보건직·환경미화원 부당해고 투쟁, 양계장·골프장 반대 투쟁 등 지역에는 크고 작은 투쟁들이 있어왔고 진행 중이다. 그것은 <옥천신문> 27년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누가 지역을 조용하다 했던가? 지역에 살아보면 하루하루 꿈틀거리는 혈맥이 느껴진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재단하지 말지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낙인 속에 분투하는 지역 활동가와 주민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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