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9.24 20:33
수정 : 2006.09.24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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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과 라싸를 잇는 칭짱철도는 티베트의 중국화를 가속화할 게 분명하다. 라싸에서 자동차로 3시간 정도 떨어진 당슝지역의 철로 옆에 사는 어린이들이 망원경으로 긴 철길을 살펴보고 있다.
라싸/김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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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공정이 가져온 역사 왜곡 흔적들
사자상에도, 당안관에도 티베트는 없었다
[칭짱철도타고 티베트를 가다]③ 티베트에서 본 동북공정의 미래
티베트의 상징인 포탈라궁은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해발 3600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한 궁전인 포탈라궁은 건축 양식과 문양에서 티베트 특유의 섬세함과 화려함, 장엄함이 배어나온다.
뜬금없는 사자 석상=포탈라궁 앞에는 중국의 한족들이 좋아하는 사자 석상이 두 개 놓여 있다. 이 사자 석상은 중국 중앙정부가 소수민족의 문화유산을 ‘중국화’하기 위한 세심한 배려에서 배치한 것이다. 중국 랴오닝성 펑청시에 있는 고구려 산성인 봉황산성 입구에도 랴오닝성 정부가 성을 복원하면서 가져다 놓은 사자 석상이 있다.(〈한겨레〉 8월4일치) 포탈라궁 앞의 사자 석상과 마찬가지 맥락이다.
두 곳의 공통분모는 사자 석상에 그치지 않는다. 라싸의 포탈라궁에서 택시로 10분 거리에 있는 티베트박물관에 가면, 지안박물관에서 읽어본 듯한 설명문이 티베트의 역사를 설명한다.
1999년 세워진 티베트박물관은 티베트의 역사를 ‘구석기에서 7세기까지’와 ‘7세기 이후 현대까지’로 양분한다. 641년 송찬간포는 티베트 최초의 통일왕국인 토번국을 세운 뒤 당나라 문성공주를 두 번째 부인으로 맞아들인다. 박물관은 이때부터 “티베트와 (중국)중앙정부 사이에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맺어졌다고 설명한다. 티베트 사회 내부에서 역사 변화와 발전의 원동력을 발견하려 하는 대신, 오로지 중국의 왕조와 티베트가 어떤 관계를 맺었느냐만 가지고 티베트인의 역사를 멋대로 재단하고 있는 셈이다.
선사문화, 역사시기, 민속문화 등 9개의 전시실로 이뤄진 이 박물관은 명·청 시기의 옥과 도자기를 전시하면서도 “티베트는 중국 영토에서 떼어낼 수 없는 일부분”이라는 주장을 주문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심지어 중앙정부에서 내린 옥도장 같은 기물 또한 “티베트 지배의 증거”라는 식의 비학문적인 주장까지 담고 있다.
동북공정의 미래?=“티베트가 중국 영토의 떼어낼 수 없는 일부분”이라는 주장을 집대성한 기념비적인 건물은 티베트자치구 당안국 안에 있는 당안관이다. ‘당안’이란 영어 ‘파일’(file)에 해당하는 중국말이다. 이 당안관 안에는 당나라 때 이후 지금까지 티베트와 중국 왕조 사이에 서로 교환한 문서와 조약, 관련 기초 사료 등 3000여건이 보관돼 있다. 당안관은 토번왕조가 보낸 사신, 조공, 책봉 등을 근거로 원나라 이후 티베트가 줄곧 중국의 지배를 받아왔다고 주장한다. 중국 당국은 ‘사신이나 조공이 당시 아시아에서 외교·무역관계를 맺는 형식의 일종이었다’는 현대 역사학계의 해석을 저버리고, ‘중국 황제만이 유일한 천자이고, 주변 모든 나라는 황제의 책봉을 받는 신하국’이라는 중국 봉건시대의 황실사관을 채택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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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탈라궁 앞에 세워진 중국식 대형 석사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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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티베트 지역의 영토 지배에 대한 역사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1986년 국가 예산 6480만위안(약 81억원)을 들여 ‘중국티베트학연구중심’을 세웠다. 동북공정에 앞선 ‘서남공정’의 심장부인 셈이다. 이곳은 1994년 원나라 때부터 중화민국 시기(1240~1949년)까지 중국어·티베트어·만주어·몽골어 등으로 기록된 티베트 관련 사료 3200여건을 집대성한 7권의 〈원나라 이래 티베트 지방과 중앙정부의 관계 사료 모음〉을 펴냈으며, 1996년엔 〈원나라 이래 티베트 지방과 중앙정부의 관계 연구〉를 펴내 티베트 지배에 대한 ‘정사’를 확립했다. 현재는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티베트통사’를 편찬중이다.
포탈라궁 앞의 사자 석상과 티베트박물관, 티베트당안관, 티베트학연구중심 등은 중국 당국이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을 추진하면서 어떤 청사진을 가지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동북공정의 대규모 역사 왜곡은 남북한의 항의로 주춤거리거나 물밑으로 들어갔지만, 티베트에서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역사 왜곡은 누가 나서 항의해줄 것인가. 포탈라궁 앞의 사자 석상이 주인 잃은 궁전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고 있다.
라싸/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단둘인 한국유학생 부부
문화에 매혹 흘러들어 티베트어 사전 편찬중
티베트 라싸 시내 동남쪽의 티베트대학에는 한국 유학생이 단 두 명 있다. 신정민(39)·공미옥(42) 부부가 그들이다. 이 대학 다뤄쌍랑제 부총장은 새 학기에 한국 유학생이 1명 더 늘어난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2001년부터 간쑤성 간란 티베트자치주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다 티베트 문화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지난해 9월 이 대학 어학과정에 들어온 두 사람은 2년 과정을 마친 뒤에도 계속 라싸에 남아 티베트 문화를 공부할 생각이다.
티베트어-영어 사전, 티베트어-일어 사전 등은 일찌감치 나왔지만 아직 티베트어-한국어 사전은 나온 적이 없기 때문에 두 사람은 공부하면서 틈틈이 사전 편찬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티베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많지만 가장 기초 도구인 사전이 없기 때문에 티베트를 알고 싶어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 같다”는 신정민씨는 티베트어가 한국어와 매우 닮았다고 소개했다.
“티베트어는 표음문자로 주어-목적어-동사의 어순이 한국어와 같으며(중국어는 영어처럼 주어-동사-목적어의 어순), 한국어 만큼이나 까다롭고 복잡한 존댓말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어와 다른 점은 형용사가 명사를 뒤에서 수식하는 점 정도다.
특히 한자어가 70%나 차지하는 한국어와 달리 티베트어는 한자어의 영향이 거의 없어, 티베트 문화의 고유성을 잘 보여준다. ‘오토바이’, ‘컴퓨터’, ‘혁명’ 등 현대에 새로 생긴 낱말 정도만 한자어를 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티베트 우대 정책 덕분에 티베트 대학 유학생의 한 학기 학비는 1050달러(약 105만원), 기숙사 비용은 월 1500위안(약 18만7500원)이다.
라싸/이상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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