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춤이 소중한 것은 삶의 공간이 될 수 없는 경계선을 삶의 공간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그 공간은 대립하는 두 세계가 서로에게 섞여드는 공존의 공간이다. 이 창조적 공간의 진정한 가치는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분단의 비윤리성과 불모성을 드러내면서 분단 구조를 내파하는 데에 있다.
소설가 13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8일간 39개국 144편의 다큐멘터리 영화 잔치를 벌이는 비무장지대(DMZ·디엠제트) 국제다큐영화제의 홍형숙 집행위원장은 “남북한 평화 이슈에서 디엠제트영화제는 뭔가를 실현해낼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꿈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디엠제트영화제가 문화의 거점으로서 평화에 실제로 기여해야 한다”며 “디엠제트영화제 작품의 개성공단과 북한 상영, 남북 영화 교류, 남북 감독 공동 제작 등을 꿈꾸고 있다”고 밝혔다. 1953년 휴전협정으로 탄생된 디엠제트는 모순과 역설의 땅이다. 적대시설 설치와 적대행위를 금지하고 있음에도 중화기로 무장한 남북한 군대가 대치하고 있어 한반도에서 긴장이 가장 높은 지역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수많은 희귀 동식물이 사는 생명의 보고이기도 하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JSA)>는 디엠제트에 주둔하는 남북한 군인들이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 우정의 둥근 공간을 만듦으로써 군사분계선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무화시키는 모습과, 그 행위로 인해 비극을 맞는 모습을 통해 분단의 폭력성과 비윤리성을 드러낸다. 디엠제트라는 뜨거운 상징의 공간을 남한 사회 전체로 확대시킨 문제적 작품이 홍형숙 디엠제트영화제 집행위원장의 다큐영화 <경계도시>와 그 속편인 <경계도시2>다. ‘경계도시’는 분단 시절 독일 베를린의 별칭이다. 2002년에 개봉한 <경계도시>가 친북 인사라는 이유로 입국이 금지된 재독 철학자 송두율의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개인적 모습을 담았다면, 2010년에 개봉한 <경계도시2>는 2003년 9월 귀국한 송두율을 둘러싸고 레드콤플렉스에 휩쓸려 들어가는 남한 사회의 비이성적 공포를 담았다. 송두율은 자신의 저서 <경계인의 사색>(2002)에서 “경계인은 경계의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선 위에 서 있는 탓에 좁은 수평대에 서 있는 체조 선수처럼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 안정을 찾기 위해서는 넓은 수평대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경계인으로서의 실존적 상황을 토로했다. 그는 남과 북의 체제에 절망하여 수심의 깊이를 모르는 남지나해의 심연으로 투신한 소설 <광장>의 비극적 주인공 이명준의 후예다. 그가 이명준과 다른 점은 남과 북의 경계선에서, 허공에 걸린 그 위태로운 줄 위에서 남과 북의 융화를 위한 자유의 춤을 추었다는 데에 있다. 그의 춤이 소중한 것은 삶의 공간이 될 수 없는 경계선을 삶의 공간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그 공간은 대립하는 두 세계가 서로에게 섞여드는 공존의 공간이다. 이 창조적 공간의 진정한 가치는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분단의 비윤리성과 불모성을 드러내면서 분단 구조를 내파하는 데에 있다. 남한의 수구세력들이 혈안이 되어 그를 물어뜯은 것은 그의 창조적 공간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최대의 거물 간첩’이라는 언어의 플래카드를 펼치며 대대적인 이념 공세를 취하자 그를 보호하려 했던 진보진영조차 레드콤플렉스의 자장 안으로 휘감겨 들어가 그에게 ‘죄’를 찾으려 했다. <경계도시2>가 문제적 작품인 것은 남한 사회가, 우리가, ‘내’가 ‘경계인의 삶’을 외롭게 살아온 한 지식인에게 어떤 행위를 했는지, 질문하기 때문이다. 그 질문은 2003년 9월 그의 귀국과 한 달 후 구속 수감, 2004년 8월 항소심의 집행유예 선고로 출국, 2008년 4월 대법원의 최종 무죄판결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명체로서의 질문이다. 2018년 4월27일 디엠제트 안의 판문점에서 세계가 주시하는 가운데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사뿐히 넘나든 것이다. 그 경계선이 품고 있는 측량할 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피와 주검을 생각하면 초현실적인 퍼포먼스였다. 그 퍼포먼스가 분단 패러다임의 혁명적 전환의 표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새소리와 바람소리만 고요히 들리는 도보다리 회담을 보면서였다. 디엠제트만이 역설과 모순의 땅은 아니다. 한반도 자체가 역설과 모순의 땅이다. 역설과 모순의 중심에 분단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그동안 남북한 모두 평화통일을 내세우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위한 노력보다 분단을 이용한 권력 강화에 더 힘을 쏟았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 본 희망이 미래로 이어져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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