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지금 우리는 씨앗 같은 생명들이 구조적으로 짓이겨지고 있는 광경을 목도하고 있다. 죽음의 일상화는 애도의 결핍을 낳고, 애도의 결핍은 죄를 은폐하고 진실을 박제한다.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슬픔들을 끊임없이 육신화해야 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인간이 운명적으로 불행한 존재인 것은 기쁨에는 한계가 있지만 고통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 가없는 고통의 중심에 자식 잃은 어머니의 슬픔이 자리하고 있다. 위로가 불가능한 그 슬픔을 수많은 예술가들이 표현해 왔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 바티칸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1498~1499)일 것이다. 숨진 그리스도를 끌어안고 슬퍼하는 마리아의 형상이 지나치게 아름다운 것은 그가 스물네 살이라는 너무나 젊은 나이에 피에타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술의 원천이 고통임을, 89년이라는 긴 생애를 살면서 온몸으로 보여준 미켈란젤로가 삶의 잔인함을 더 겪은 후 만들었다면 다른 질감의 피에타가 창조되었을 것이다. 전쟁과 폭력 희생자 추모관인 독일 베를린의 ‘노이에 바헤’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질감이 전혀 다른 피에타가 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모본으로 한 그 조각상은 독일의 여성작가 케테 콜비츠의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1937~1938)다. 1890년대에서 1940년대에 이르기까지 실천적 예술가로서 당대의 참혹한 현실을 치열하게 형상화한 콜비츠는 색채가 갖는 미학적 유희의 한계를 깨닫고 검은색, 회색, 백색만으로 빈자와 억압받는 자의 슬픔과 고통을 밀도 있게 표현해냈다. 특히 가부장 사회가 직조해온 여성의 나약하고 수동적인 모습을 깨뜨리고 주체적 자아로 삶의 고통과 강인하게 맞서는 여성을 형상화하는 데 힘을 쏟았다. 콜비츠의 예술이 ‘희생자’라는 존재의 본질을 보다 심층적으로 파고든 것은 1914년 둘째아들 페터를 전쟁에서 잃고 나서였다. “페터야. 사랑스런 나의 아들아. 네가 그렇게 황급히 떠난 지 두 달이 되었구나. 나의 페터야. 나는 계속 너의 뜻에 충실하련다. 너의 뜻이 무엇이었던가를 잊지 않고 지켜가련다. 내가 그렇게 노력할 때 나의 페터야, 제발 내 곁에 머물러다오. 나에게 모습을 보여다오.” 콜비츠가 조각한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는 그녀 자신이었던 것이다. 르네상스의 이상화된 모티프를 구현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질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화려한 성당 유리벽 속에 보호되어 있지만, 콜비츠의 피에타는 ‘노이에 바헤’ 천장의 둥근 구멍 아래서 비가 오면 비에 젖고, 눈이 내리면 눈에 묻힌다. -차라리 총에 맞아 죽었으면 편히라도 갈 것인데 온몸이 터질 때꺼정 맞아 죽었으니… 불쌍한 내 새끼… 아가, 내가 무슨 옷을 입어야 우리 아들이 ‘어무니’ 하면서 알아볼 것 같은가. -몇 푼 벌어보겠다고 일하느라 마지막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해. 엄마가 부자가 아니라서 미안해. 없는 집에 너같이 예쁜 애를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엄마가 지옥 갈게 딸은 천국에 가. -우리 아이를 확인하라고 해서 들어갔는데 머리카락이 피로 떡이 져 있고 얼굴이 퉁퉁 부어 있고 뒷머리가 날아간 시체가 누워 있었다. 길을 가다가 뒤통수만 봐도 알아볼 수 있는 아이인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모르겠다. 절대 우리 아이가 아니라고 믿고 싶은데, 그날 입고 나간 옷이 맞다. 우리 아이가 죽는 날 나도 죽었다. 80년 광주의 어머니와 세월호 어머니, 구의역 희생자 어머니의 위로할 수 없는 슬픔들이 우리 사회의 시공간을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신화와 종교에서 희생자는 성스러운 존재다. 은폐된 죄와 함께 가려진 진실이 희생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공동체가 희생자를 진정으로 애도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 애도의 깊이가 공동체의 깊이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애도 행위를 못마땅해하고, 혐오하고, 더 나아가 공격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진실에 대한 불편함과 두려움이 있다. 콜비츠가 자신의 생애 마지막 작품에 붙인 제목은 <씨앗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씨앗 같은 생명들이 구조적으로 짓이겨지고 있는 광경을 목도하고 있다. 죽음의 일상화는 애도의 결핍을 낳고, 애도의 결핍은 죄를 은폐하고 진실을 박제한다.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슬픔들을 끊임없이 육신화해야 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그 육신들이 시체가 되어 산처럼 쌓일지라도. 광화문 광장에서 비가 오면 비에 젖고, 눈이 내리면 눈에 묻히는 우리의 피에타를 보고 싶다.
칼럼 |
[정찬, 세상의 저녁] 위로할 수 없는 슬픔 |
소설가 지금 우리는 씨앗 같은 생명들이 구조적으로 짓이겨지고 있는 광경을 목도하고 있다. 죽음의 일상화는 애도의 결핍을 낳고, 애도의 결핍은 죄를 은폐하고 진실을 박제한다.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슬픔들을 끊임없이 육신화해야 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인간이 운명적으로 불행한 존재인 것은 기쁨에는 한계가 있지만 고통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 가없는 고통의 중심에 자식 잃은 어머니의 슬픔이 자리하고 있다. 위로가 불가능한 그 슬픔을 수많은 예술가들이 표현해 왔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 바티칸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1498~1499)일 것이다. 숨진 그리스도를 끌어안고 슬퍼하는 마리아의 형상이 지나치게 아름다운 것은 그가 스물네 살이라는 너무나 젊은 나이에 피에타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술의 원천이 고통임을, 89년이라는 긴 생애를 살면서 온몸으로 보여준 미켈란젤로가 삶의 잔인함을 더 겪은 후 만들었다면 다른 질감의 피에타가 창조되었을 것이다. 전쟁과 폭력 희생자 추모관인 독일 베를린의 ‘노이에 바헤’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질감이 전혀 다른 피에타가 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모본으로 한 그 조각상은 독일의 여성작가 케테 콜비츠의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1937~1938)다. 1890년대에서 1940년대에 이르기까지 실천적 예술가로서 당대의 참혹한 현실을 치열하게 형상화한 콜비츠는 색채가 갖는 미학적 유희의 한계를 깨닫고 검은색, 회색, 백색만으로 빈자와 억압받는 자의 슬픔과 고통을 밀도 있게 표현해냈다. 특히 가부장 사회가 직조해온 여성의 나약하고 수동적인 모습을 깨뜨리고 주체적 자아로 삶의 고통과 강인하게 맞서는 여성을 형상화하는 데 힘을 쏟았다. 콜비츠의 예술이 ‘희생자’라는 존재의 본질을 보다 심층적으로 파고든 것은 1914년 둘째아들 페터를 전쟁에서 잃고 나서였다. “페터야. 사랑스런 나의 아들아. 네가 그렇게 황급히 떠난 지 두 달이 되었구나. 나의 페터야. 나는 계속 너의 뜻에 충실하련다. 너의 뜻이 무엇이었던가를 잊지 않고 지켜가련다. 내가 그렇게 노력할 때 나의 페터야, 제발 내 곁에 머물러다오. 나에게 모습을 보여다오.” 콜비츠가 조각한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는 그녀 자신이었던 것이다. 르네상스의 이상화된 모티프를 구현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질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화려한 성당 유리벽 속에 보호되어 있지만, 콜비츠의 피에타는 ‘노이에 바헤’ 천장의 둥근 구멍 아래서 비가 오면 비에 젖고, 눈이 내리면 눈에 묻힌다. -차라리 총에 맞아 죽었으면 편히라도 갈 것인데 온몸이 터질 때꺼정 맞아 죽었으니… 불쌍한 내 새끼… 아가, 내가 무슨 옷을 입어야 우리 아들이 ‘어무니’ 하면서 알아볼 것 같은가. -몇 푼 벌어보겠다고 일하느라 마지막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해. 엄마가 부자가 아니라서 미안해. 없는 집에 너같이 예쁜 애를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엄마가 지옥 갈게 딸은 천국에 가. -우리 아이를 확인하라고 해서 들어갔는데 머리카락이 피로 떡이 져 있고 얼굴이 퉁퉁 부어 있고 뒷머리가 날아간 시체가 누워 있었다. 길을 가다가 뒤통수만 봐도 알아볼 수 있는 아이인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모르겠다. 절대 우리 아이가 아니라고 믿고 싶은데, 그날 입고 나간 옷이 맞다. 우리 아이가 죽는 날 나도 죽었다. 80년 광주의 어머니와 세월호 어머니, 구의역 희생자 어머니의 위로할 수 없는 슬픔들이 우리 사회의 시공간을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신화와 종교에서 희생자는 성스러운 존재다. 은폐된 죄와 함께 가려진 진실이 희생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공동체가 희생자를 진정으로 애도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 애도의 깊이가 공동체의 깊이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애도 행위를 못마땅해하고, 혐오하고, 더 나아가 공격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진실에 대한 불편함과 두려움이 있다. 콜비츠가 자신의 생애 마지막 작품에 붙인 제목은 <씨앗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씨앗 같은 생명들이 구조적으로 짓이겨지고 있는 광경을 목도하고 있다. 죽음의 일상화는 애도의 결핍을 낳고, 애도의 결핍은 죄를 은폐하고 진실을 박제한다.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슬픔들을 끊임없이 육신화해야 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그 육신들이 시체가 되어 산처럼 쌓일지라도. 광화문 광장에서 비가 오면 비에 젖고, 눈이 내리면 눈에 묻히는 우리의 피에타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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