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1.07 07:15
수정 : 2017.11.0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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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소년이 한 일식집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본 사진과 기사는 직접적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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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가 가장 많이 하는 ‘식당 알바’의 현실
‘동작 굼뜨다’며 머리채 잡고 폭행, 성희롱도
시민단체 문제제기하자, 사업주 돈으로 합의
“나이 어린 10대 쉽게 쓰이고 버려지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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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소년이 한 일식집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본 사진과 기사는 직접적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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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이윤지(가명·18)양은 중2 때부터 분식집과 커피숍,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알바)를 했다. 교통비도 필요하고 간식도 사먹어야 하는데, 매번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 어려웠다. 지난해엔 6개월간 주말마다 숯불갈비 식당에서 알바를 했다. 식당에서 반찬과 술 등을 나르는 ‘서빙 일’이었다. 하루 11시간 남짓 일해서 일당 7만원을 현금으로 받았다. 집에서 식당까지 버스로 1시간 넘게 걸렸지만, 이렇게 일하면 한달에 60만원 정도를 손에 쥘 수 있었다. 고등학생한테는 큰돈이었다.
내 손으로 용돈을 번다는 만족감은 잠시였다. 식당은 10대 알바생한테 가혹했다. 식당 매니저는 손님상에 나갈 국을 푸는 동작이 굼뜨다며 이양에게 첫날부터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했다. 하루는 음식을 잘못 내갔다며 사람이 없는 식당 구석으로 데려가 이양의 머리채를 잡고 벽에 부딪치는 폭행도 저질렀다. 이양은 뭐라고 맞서야 할지 몰라 그냥 화장실에 가서 울었다.
식당에서 일하며 때우는 끼니는 비참했다. 식당 주방 설거지통 옆에서 큰 대야를 엎어놓고 임시 식탁을 만든 뒤, 알바생이 교대로 끼니를 때웠다. 매니저는 손님이 남긴 고기를 모아 다시 데워서 반찬으로 내줬다. 그는 카카오톡 ‘단톡방’을 만들어 알바생을 관리했다. 이양은 “단톡방에서 우리들한테 ‘접대부’라고 부르고, 성적인 욕설을 끊임없이 했다”고 말했다. 이양의 동료 알바생은 매니저한테 성추행을 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광주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지난 7월 한 특성화고에 노동인권 캠페인을 나갔다가 학생들로부터 이런 내용을 들었다. 피해 학생들은 “일하는 식당에서 폭언, 폭행이 일어나고 임금도 적게 주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며 상담을 요청했다. 단체가 알아보니 전남 담양군에 있는 ㅅ식당은 티브이 맛집 프로그램에 여러 차례 소개된 곳으로 10대 청소년을 주중 5명, 주말 15명까지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일당을 현금으로 주면서 관련 서류를 일절 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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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지역 12개의 시민단체는 지난 8월 이 식당에 대해 피해 학생 18명의 체불임금 6000만원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며 광주지방고용노동청에 진정을 냈다. 식당 매니저의 성추행 혐의는 경찰이 수사 중이다. 여러 시민단체는 식당 앞에서 “특별근로감독 실시” 등을 요구하며 꾸준히 집회를 벌였다. 그사이 식당은 피해 학생들과 꾸준히 합의를 시도해 모두 18명의 학생한테 체불임금을 주기로 하고 합의를 끝냈다. 해당 식당 대표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애기들’이 일주일에 하루이틀 일한 것일 뿐이다. 주휴수당 등을 줘야 하는지 노동법을 몰랐다”고 해명했다. 박서영 광주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가는 “10대들의 노동은 관련 기록조차 남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니 사업주한테 법적 책임을 묻고 싶어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10대들은 알바 노동자 중에서도 가장 쉽게 쓰이고 버려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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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회원들이 10대 알바생 체불임금 및 인권침해 사건이 벌어진 전남 담양의 ㅅ식당에서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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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를 하며 비인격적 대우에 노출되는 등 최소한의 인권도 존중받지 못하는 10대가 많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청소년 아르바이트 실태조사’(2014년)를 보면, 전국 중3~고3 청소년이 가장 많이 하는 아르바이트는 ‘음식점 서빙’(32.8%)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해본 청소년 가운데 임금체불이나 초과근무수당 미지급 등 ‘임금 관련 부당 처우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청소년은 열명 중 세명(31.9%)이었다. ‘고용주나 상사로부터 심한 욕설을 들은 적 있다’는 비율도 열명 중 한명꼴(9.7%)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부당한 처우를 경험해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청소년은 71.7%에 이르렀다.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도 10대에서 가장 많았다. 2013년 연령별 최저임금 미만 비율을 보면,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는 전체 임금노동자의 11.4%인데, 그 가운데 19살 이하가 절반(54.5%)을 넘었다. 김병철 청소년유니온 노동상담팀장은 “한국의 일터에서 업종과 연령을 불문하고 노동관계법이 잘 지켜지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특히 10대들은 나이가 어려 불이익에 더 많이 노출된다. 10대들이 많이 일하는 일터에 대한 근로감독을 철저히 하고, 미성년자에게 노동관계법을 어기면 가중처벌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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