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예일디자인고 학생들, 건의함 쪽지로
체육교사 ㄱ씨 성희롱 “처벌해달라” 호소
수업 중 음담패설·잦은 욕설과 외모비하
학교, 57건 피해진술 확보해 직위해제·해임
검찰에서 학생 진술 증거채택 안돼 ‘무혐의’
교원소청심사위, “징계 과하다” 복직시켜
2015년 서울 가재울고, 지난해 서울 서문여중·고 등 중·고교 교사의 성희롱·성추행 사건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학생과 학교의 적극적인 대처에도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솜방망이 조처로 성 비위 교사가 학교에 다시 돌아오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해 4월 서울 은평구 예일디자인고 학생들은 학교 안 건의함에 쪽지 형식의 익명 투서를 넣었다. 체육교사 ㄱ(35)씨가 성희롱과 욕설, 폭언을 계속하니 학교가 이를 바로잡아 달라는 내용이 건의함에서 14건 발견됐다. 학교가 2학년 전교생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이자, 피해 증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겨레>가 입수한 익명 피해진술서 57건에는 ㄱ교사가 “수업 중 성적인 발언을 한 뒤, 한 학생에게 ‘너 젖었지’라고 말했다”, “학생 무릎에 앉거나, 학생을 무릎 위에 앉혔다”, “반강제로 19금 성인 만화를 보여줬다”, “잔디에 누워 있는 학생 위에 올라탔다”는 내용이 기술돼 있다. 그리고 실명 피해진술서 17건에는 “입을 벌리고 자고 있는데, 얼굴 사진을 찍어 갔다”, “수업 중 성적인 발언을 했다”, “체육시간에 다른 학생을 깔고 앉았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에 대해 ㄱ교사는 “수업 중 잠을 자는 학생의 사진을 장난으로 찍은 적은 있으나, 학생에게 성적인 발언을 하거나 학생을 깔고 앉은 사실은 없다”고 해명했다.
ㄱ교사에게 욕설과 외모 비하 발언을 자주 들어 괴로웠다는 증언도 많았다. ㄱ교사는 학생들의 외모를 지적하며 “얼굴도 못생긴 게 공부도 못하니 운동이라도 해라”, “못생겼으면 웃어야지 그 표정이 뭐냐”, “너네 엄마는 돈 많이 벌어야겠다. 네 얼굴 성형시키려면”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학생들은 적었다. 이밖에도 학생들은 “너는 뚱뚱해서 남자친구가 없다”, “술 마시면 여자 때리는 남자를 소개해주겠다”, “ㄱ선생님께 못생겼다는 말을 들은 학생이 한 시간 동안 우는 것을 봤다” 등의 내용을 적었다.
학교 법인은 학생들의 진술서에 적힌 내용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의 청소년 성범죄에 해당한다고 보고, 지난해 6월 징계위원회를 열어 ㄱ교사를 직위해제 및 해임했다. 이 과정에서 ㄱ교사는 “장난을 받아들이지 못한 일부 학생들이 모함한 것”이라며 “학교가 나를 음해한다”고 사실관계를 부정했다. ㄱ교사는 “학생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매년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피해가 언급됐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학생들이 적어낸 내용은 대부분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문제는 학생들이 쓴 진술서의 증거 인정 여부였다. 지난해 7월 경찰은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ㄱ교사를 수사한 뒤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며 사건을 검찰에 넘겼고, 서울서부지검은 학생들의 진술서가 익명이라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학교는 “고3인 학생들이 검찰에 출석해 진술하기 어렵다. 학교로 출장 조사를 와달라”고 요청했지만,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혐의 없음’ 결론을 냈다. 학교는 증거를 보강하기 위해 학생 17명으로부터 실명 진술서를 받았다. 실명으로 진술한 학생들은 “저의 말이 한 치의 거짓말이 없다는 것을 밝히며 선생님을 처벌해달라”, “이름까지 써서 냈으니 잘 읽어주시고 해결해달라”고 썼다. 동료 교사 6명도 실명 의견서 및 확인서를 냈다. 하지만 올해 5월 서울고검도 사건을 각하했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도 ㄱ교사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5월 교원소청심사위는 “직위해제는 적법하나 해임은 과하다”며 학교에 해임 처분을 취소하라고 통보했다. 교원소청심사위는 “ㄱ교사가 학생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발언을 하는 등 징계 필요성은 인정된다. 그러나 학생들과 장난치는 과정이었던 점, 검찰이 ‘혐의 없음’으로 처분한 점, 신체 접촉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을 고려하면 해임처분은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었다”고 말했다. 소청심사 과정에서 학교는 “학생들이 엉뚱한 거짓말을 할 리 없다. 교사의 행위를 견디다 못해 투서한 학생들과 용기를 내 실명 진술서를 쓴 학생 17명이 있음에도 교사는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지 않고 있다. 학교는 정당한 절차를 밟아 해임했다”고 주장하며, 이 학교 교직원 52명의 복직 반대 서명을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ㄱ교사는 지난 5월 복직했다. 현재 학교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ㄱ교사의 해임취소 처분을 두고 행정소송 중이다.
지난해 7월 교육부는 “교원 성 비위 사건에 엄정 대응하라”며 “시·도교육청은 성 비위 교원은 무관용 원칙에 따라 일벌백계하고, 관련 법령에 따라 파면·해임 등 엄중조처하라”고 지시했지만 교육부 직속 기관인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성 비위 교사를 교단으로 돌려보냈다. 이민종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은 “학교 안 교사 성희롱·성추행은 위계 관계 때문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건의함 쪽지 등 익명으로 촉발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조사에 들어가면 학생이 위축되어 진술을 못 하는 경우가 있어 법 입증이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감사관은 “해당 학교가 학내 성희롱·성추행을 은폐하지 않고 적극 대처한 만큼, 엄격한 입증을 요하는 형사처벌은 어렵더라도 교육자로서의 징계는 확실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서울 예일디자인고 성희롱 교사 복직 사건
2016년
4월20일 학교, 건의함에서 학생들 쪽지 14건 발견
6월9일 학교 실태조사, 학생들 피해 진술서 57건 제출
6월29일 학교법인, ㄱ교사 직위해제 및 해임
7월11일 서울 은평경찰서, ㄱ교사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 검찰 송치
7월14일 ㄱ교사, 교원소청심사위에 직위해제 및 해임처분 취소 청구 제기
7월28일 서울서부지검,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 처분
8월31일 교원소청심사위, 절자적 하자 이유로 직위해제 및 해임처분 취소
10월 학생 17명, 기명 피해진술서 검찰에 제출
2017년
1월10일 학교법인, ㄱ교사 재해임 처분
4월6일 학교 교직원 52명, ㄱ교사 복직 반대 서명
5월10일 교원소청심사위, 학교법인에 “해임취소하라” 통보
5월25일 ㄱ교사 복직
5월25일 서울고검. 항고 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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