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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01 10:11 수정 : 2017.08.01 11:31

[동네변호사가 간다]

법률상담은 참 어렵다.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뿐 아니라 법적 해결책도 제시해야 한다. 해결할 수 없는 상담은 그래서 더욱 힘들다.

수심에 잠긴 50대 남자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무실을 찾아왔다. 한눈에 상담을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민변은 변호사 사무실이 아니어서 인권 관련 사안이 아니면 일반적인 법률상담을 따로 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취지로 양해를 구할 마음으로 어떻게 오셨느냐고 물었다.

공권력에 의한 피해를 당했다고 한다. “어떤 공권력 피해이신가요?” 이렇게 묻는 순간 얘기보따리가 풀릴 것을 각오해야 한다. ‘국가정보원이 오래전부터 나를 괴롭히고 있다. 어딜 가든 국정원 직원이 매일 나를 뒤따라오며 감시한다. 내가 잘 때 이상한 약을 먹여 생각을 조종하고 있다.’ 그의 눈빛은 이제 여기 말고는 더 갈 곳이 없다는 간절함을 담고 있었다. “변호사님, 제 사건이 인권이 아니면 무엇이 인권이겠어요.” 아마도 이미 많은 곳을 다니며 인권침해를 호소했을 것이다. 이런 경우는 부드럽게 거절하기도 어렵다. 혹시 주위에 본인이 당했다는 피해를 확인해줄 사람이나 도움을 주는 가족, 친지가 있느냐고 물었다. “국정원이 가족도 다 조종하고 있다. 내 주위 사람들은 다 저쪽과 관련되어 있다. 전화도 메일도 감시당하고 있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너무 괴롭다….”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내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국정원이 선생님을 감시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렇게 물으면 “언론에 매일 나오지 않습니까. 국정원이 민간인 사찰하고 선거 개입하고 증거 조작하는 것이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나는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한다. 국정원의 위법적 월권이 만들어낸 사회적 불신은 여기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럴 때 정말 국정원이 더 미워진다.

그의 진실을 가늠할 능력이 내게는 없으나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는 느낄 수 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법률상담이 아니라 상담과 치료일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말을 입 밖에 꺼내지는 못한다. 그런 식의 얘기는 당사자를 분노하게 할 뿐이다. 자신의 경험과 고통이 객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나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그가 분노에 휩싸이지 않은 채 돌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고소를 하든 소송을 하든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당하는 피해를 입증할 증거가요. 목격자든 피해를 당한 상황에 대한 녹음이든 녹화든, 물건이든 뭔가 있어야 합니다.” 결국 이런 지극히 변호사스러운 조언을 하게 된다. 증명의 어려움 앞에 어떤 분은 수긍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 말대로 그가 증거를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쏟는다면 나는 변호사로서 노릇을 제대로 한 것인가.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이처럼 극심한 고통을 안고 여러 변호사 사무실과 인권단체를 돌아다닌다. 어떤 분은 단체 사람들끼리 서로 얘기하면 알 정도로 유명해지기도 한다. 얘기를 들어보면 대개는 시발점이 된 어떤 구체적 피해가 있었고, 그것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채 눈덩이처럼 커져간 시간이 있었다. 최종적으로 고소·고발 등 법률상담의 형태를 띠지만 근원적인 지점이 풀리지 않는 한 실상 변호사나 인권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다. 이런 법률상담으로는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건 아닌지, 그의 가족이 함께 느낄 고통은 또한 얼마나 클 것인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불쑥불쑥 찾아와 고통을 호소하는 분들을 상대할 때마다 나는 마음이 무겁고 어떻게 할지 몰라 무력감에 빠진다. 단체의 활동가나 상담가들도 다들 어려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이들이 좀 더 일찍 제대로 법적인 또는 심리적인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한편 변호사와 인권단체, 상담 및 정신보건 관련 전문가들이 연계 시스템을 구성해 이분과 가족의 고통을 종합적으로 대응해볼 수는 없을까. 그리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런 분을 위한 종합적인 상담 시스템을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송상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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