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7.10 20:59
수정 : 2017.07.1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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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법] 성견후견제 도입 4년
치매환자·장애인에 후견인 연결
의사결정·재산관리 돕는 제도
친족 외 변호사 등 제3자도 가능
매년 청구 급증해 작년 4173건
병간호 등 보살핌 소홀하거나
재산 빼돌리는 사례 속속 발생
법원이 후견 개시 결정하고 감독
재판부 늘리고 담당센터 세웠지만
수십명이 수천건 살피기엔 역부족
“지자체가 1차 감독 나서고
복지부도 비용지원 등 공조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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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대 자산가 ㄱ씨(82)는 알츠하이머성 치매 진단을 받은 뒤인 2015년 초 법원으로부터 부인 ㄴ씨(77)를 후견인으로 하는 성년후견 개시 결정을 받았다. 가장 가까운 부인에게 자산 관리 등을 맡긴 것인데, ㄴ씨는 비싼 약을 사들이고 고가의 치료 비용을 냈다. 재정 상황이 나빠지자 ㄴ씨는 급기야 부동산을 처분하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장남은 올해 초 후견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의심스럽다며 법원에 후견감독인 선임을 청구했다. ㄱ씨의 재무 사정을 살핀 법원은 후견감독인을 두는 대신 직권으로 후견인 변경 결정을 내렸다. 가족 간에 재산 분쟁이 있고 부인 역시 고령인 만큼, 재산을 좀더 면밀히 관리할 수 있도록 전문가가 나서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ㄱ씨 후견을 맡은 사회복지법인은 지난달부터 ㄱ씨 재산 자료와 후견 자료를 넘겨받아 검토를 시작했다.
치매 환자나 장애인 등에게 후견인을 연결해 의사결정과 사무 처리, 재산 관리를 돕도록 하는 성년후견인 제도가 올해 7월로 시행 4년을 맞았다. 심신 상실 상태에 있거나 합리적 판단이 어려운 이들을 대상으로 한 과거의 금치산·한정치산자 제도에 비해 당사자의 행위 능력을 덜 제한하고, 가능한 한 후견인의 범주도 친족에서 변호사, 법무사 등 제3자로 확장했다. 지난해 전국 성년·한정·특정·임의후견심판 청구 건수는 4173건으로, 시행 이듬해인 2014년(2605건)의 두배 가까이 늘었다. 법원의 신상 및 재산 관리를 요청하는 장애인과 치매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뜻이다.
■ 법원, 후견인 부정행위엔 형사고발 강수도 성년후견 사건을 관장하는 법원은 여러모로 신중할 수밖에 없다. 친족이 정신적 제약이 없는데도 재산 때문에 거짓으로 성년후견심판을 청구하는 건 아닌지, 가족 간 재산 분쟁이 극심할 때 친족이나 전문가 가운데 누구에게 후견을 맡길지 옥석을 가려야 하기 때문이다. 후견 개시 결정까지는 그나마 일이 단순한 편이다. 후견이 개시되는 순간 법원으로선 후견 감독이라는 긴 여정에 돌입하게 된다. 피후견인이 병간호 등 적절한 보살핌을 받고 있는지, 재산이 올바르게 쓰이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상당수 후견 사건은 피후견인이 숨을 거두기 전까지 평생 지속되기 때문에, 후견 감독 건수 역시 누적될 수밖에 없다. 법원은 후견인으로 하여금 신상·재산 등에 대한 후견사무 보고서를 매년 제출하도록 하고, 후견이 잘 이뤄지지 않을 때 2~3개월 안에 재검토하는 심층 감독에 들어가거나 후견인의 업무를 감독할 후견감독인을 선임한다.
후견인의 부정행위나 관리부실이 두드러지면, ㄱ씨의 경우처럼 후견인을 변경하거나 형사고발하는 강수를 두기도 한다. 올해 초 법원은 지적장애를 가진 50대 남성 ㄷ씨의 후견인을 친족이 아닌 제3자인 변호사로 교체했다. 후견인인 둘째 형이 ㄷ씨 부동산 등 재산을 빼돌렸는지 새로운 후견인이 검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10월 제주지법은 뇌병변장애를 가진 ㄹ씨(53) 재산을 빼돌려 주택을 산 후견인 친형(54)의 성년후견 직무를 정지하고 횡령 혐의를 적용해 제주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 후견감독 허덕이는 법원…‘현미경 스크린’ 난망 차곡차곡 쌓이는 후견 사건 감독을 법원 혼자 하기는 쉽지 않다. 서울가정법원은 이달부터 후견센터를 마련하고, 7명의 조사관 및 참여관이 후견감독 실무를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또 신상후견감독을 챙기는 사회복지사 24명, 회계와 세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전문후견감독위원 42명 등을 위촉했다. 후견 사건 담당 재판부도 기존의 2부에서 3부로 늘렸다. 하지만 매년 수천명의 후견사무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봐야 하는 후견감독 사건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게 법원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법원은 후견감독인을 별도로 선임해 이중 점검 장치를 두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친족 간 재산분쟁이 심한 경우 법무사, 변호사 등 전문 후견감독인을 선임하면 공정한 재산 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용도는 아직 미미한데다, 그나마도 특정후견 사건이 대부분이다. 특정후견은 정신적 제약으로 일시적 후원이나 특정 사무에 대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일정 기간 동안 후견인을 붙이는 것을 말한다. 공공후견 지원사업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특정후견심판을 청구한 사건에서 지자체를 후견감독인으로 선임하는데, 지자체의 후견감독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사례가 생기기도 했다.
지적장애 2급인 ㅁ씨(26)는 2014년 11월 3년짜리 특정후견을 시작했다. 장애인활동보조인 ㅂ씨가 후견인을 맡아 장애연금과 기초생활수급비를 관리하고, 유치원에 다니는 ㅁ씨 딸에 대한 양육비를 관리하는 일 등을 했다. 공공후견 지원사업에 따라 경기도 ㅅ시가 후견감독인이 됐다. 하지만 ㅁ씨는 특정후견이 개시된 뒤 1년간 사실상 방치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연금은 ㅁ씨와 동네이웃들 음주 비용으로 쓰였고, 단칸방은 청소 등 기본적인 위생 관리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조사 결과, ㅁ씨 후견인이 후견 개시 직후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면서 후견인 활동을 계속하기 어렵다고 보고했는데, ㅅ시에서 이런 사정을 면밀히 파악하지 못해서 발생한 일이었다. 이런 사실은 지난해 3월 서울가정법원의 연례 후견감독 업무를 통해 파악됐다. 법원은 지자체의 후견감독인 업무에 문제가 있다고 경고하고, 다른 장애인활동보조인의 후견인 선임을 법원에 청구하도록 했다.
■ 성년후견 위한 복지부·지자체 공조 필요 전문가들은 촘촘한 후견감독을 위해선 지자체와 보건복지부 등의 지원과 공조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울가정법원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치매노인 등에 대해 1차 후견감독을 맡고, 법원은 지자체가 낸 후견감독 사무보고서를 보고 감독을 총괄하는 형태로 가면 이중 점검 장치가 마련될 수 있다”고 짚었다. 정부가 후견업무 비용을 지급하고, 지자체 등이 후견감독인을 맡는 공공후견 지원제도를 확대하는 것도 대안 중 하나다. 보건복지부는 기존의 성년 발달장애인에 더해, 최근엔 소득이 적은 치매독거노인에 대해서도 공공후견인을 제공하고 있다. 연내엔 홀몸 정신질환자 480여명에 대해 공공후견인을 붙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국선변호인처럼 법원에 전문성 있는 국선후견인을 두는 방안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후견업무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선 지자체의 적극적인 태도가 절실하다. 3~5년 동안 진행되는 특정후견의 경우 지자체가 후견심판을 재청구하면 후견이 이어질 수 있다. 서울가정법원의 전현덕 조사관은 “법원이 직권으로 특정후견 개시 결정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지자체나 검사 등 청구권자가 특정후견 종료 2~3개월 전 재청구를 하면 후견의 공백이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 오는 11월 말 3년의 특정후견이 종료되는 ㅁ씨의 경우, 법원이 종료 2~3개월 전에 특정후견심판을 재청구하도록 ㅅ시에 요청해둔 상태다. ㅁ씨에게 가정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옥살이를 하고 있는 ㅁ씨 남편이 내년 초 출소 예정이라 ㅁ씨와 딸에게 지속적인 신상보호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송인규 변호사는 “후견 사건이 폭증함에 따라 신상보호 등 각종 신청에 대한 법원 결정이 늦어지는 상황도 발생한다”며 “법원 감독 시스템도 체계적이고 즉각적인 개입이 가능하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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