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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22 21:24 수정 : 2017.05.22 22:54

[밥&법] 동네변호사가 간다

형벌의 중요한 구실은 범죄 예방 효과이다. 범죄 예방 효과가 있으려면 형벌이 범인에게 심리적, 경제적 타격을 주어야 한다. 벌금은 우리나라의 선고형 가운데 약 80%를 차지하는 주된 형벌이다. 그런데 부자에게 벌금형은 별 타격을 주지 못한다. 반면 가난한 서민가정의 가장에게 부과된 벌금은 전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기도 한다.

내 의뢰인 ㄱ씨는 집행유예형을 받기를 원했다. 술집에서 일어난 시비로 서로 폭행을 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의 전과나 사건의 동기를 감안하면 벌금 300만원 정도가 예상되는 비교적 가벼운 사건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실업을 당해 구직 중이었고 가족의 생계를 신용카드로 돌려막아가며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벌금이 나오면 낼 형편이 안 된다며 오히려 더 무거운 징역의 집행유예형을 선고받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집행유예형은 징역형을 선고받지만 당장 교도소에 가지는 않고, 정해진 유예 기간 동안 아무런 일 없이 일상생활을 하며 잘 지내면 징역형 집행이 영원히 면제된다. 반면 벌금은 못 내면 보통 1일을 10만원으로 계산해서 노역장에 구금되어 노동을 하게 된다. 결국 ㄱ씨에게 벌금 300만원은 30일의 징역이나 같았던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그를 위해 변호인인 내가 판사에게 선처 말고 더 무거운 집행유예의 형을 달라고 변론을 해야 했던 웃지도 울지도 못할 사건이었다. 그즈음 외국인학교에 자녀를 부정입학 시킨 범죄에 대해 아나운서 출신 현대가 며느리 노현정씨와 탤런트 출신 전두환 전 대통령의 며느리 박상아씨에게 벌금 1500만원이 선고되는 일이 있었다. 보도를 접하고 과연 그 1500만원이 그들에게 무슨 벌이나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씁쓸했다.

우리 형법은 벌금액을 정할 때 ‘총액 벌금제’를 사용한다. 판사가 벌금의 총액수를 법에서 정한 벌금액 내에서 선고하는 제도이다. 일률적으로 벌금액은 모든 범죄에 5만원 이상, 상한은 범죄마다 별도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면 형법상 일반 상해죄의 벌금은 1천만원 미만, 일반 사기죄는 2천만원 미만이다. ‘범인의 환경’을 고려하여 벌금액을 선고하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상한이 정해진 이상 재벌이라는 이유로 서민보다 지나치게 많은 벌금을 부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형벌에 대해 느끼는 고통의 양을 형벌 감수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부자에 대한 벌금형은 상당히 많은 액수여야 서민과 같은 양의 형벌로 느껴질 것이다. 또 가난한 사람에게는 그가 낼 수 있는 벌금이 선고되어야 노역장에 끌려가지 않는 진짜 재산형이다. 자유형에서 1일이 모두에게 24시간인 것처럼 재산형에서도 그 양이 모두에게 같은 부담으로 느껴져야 하지 않을까. 벌금형의 효력은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인 재산을 박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원천이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이 일률적으로 행위, 전과, 합의 여부 같은 것만을 벌금액 결정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평등을 가장한 불평등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스웨덴의 경우 벌금형을 일수벌금, 정액벌금, 표준화벌금, 기업벌금과 같은 여러 종류로 두고 있다. 프랑스도 일수벌금제가 있다. 일수벌금제에서는 판사가 1단계로 ‘벌금 일수’ 즉 몇일짜리인지를 정한다. 이것은 피고인의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에 따라 정해진다. 2단계로 ‘일수 정액’, 하루당 얼마의 벌금을 책정할 것인지를 정하는데 이것은 피고인의 경제적 능력에 맞게 정한다. 이것이 일수벌금제의 핵심이다. 구체적인 액수는 법원의 재량 사항으로 하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인의 1일 평균 순수입을 그 기준으로 함으로써 재력에 따른 벌금형이 주어지는 것이다.

새 정부의 민생사법 공약에 능력에 따른 벌금제도 도입이 있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벌금형에서까지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느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조수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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