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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29 10:55 수정 : 2017.03.29 11:08

지난주 재판에 갔다가, 재판장이 증인으로 나온 사람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는 모습을 봤다. “기억나는 건 기억난다고 하시고, 기억 안 나는 걸 나는 것처럼 얘기하면 안 됩니다. 법정에서 거짓말했다가 나중에 밝혀지면 큰일 나요.” 재판장은 이어 “요즘 높은 분들이 국회 청문회에 나와서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모습이 전 국민 앞에 생중계되면서 이상한 학습효과가 생긴 것 같다”며 증인들에게 성실하게 증언할 것을 재차 강조했다.

최순실씨 국정농단 청문회에 나온 증인들의 모습은 답답함을 넘어 분노를 부를 만했다. 증인석에 앉은 재벌 회장과 고위 공직자들은 “모르겠다”, “기억에 없다”는 말로 상황을 모면하려 했고, 속수무책인 의원들은 그저 호통이나 칠 뿐이었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보다 증인들이 국회에서 위증한 증거를 찾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최순실을 모른다’고 버티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막판 말바꾸기. “최순실이라는 이름은 이제 보니까 제가 못 들었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최순실을 알지는 못합니다.” 특검이 재판에 넘긴 30명 중 13명은 국회 청문회에서 위증한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국회 청문회가 증인들의 위증으로 뒤덮인 게 이번만은 아니다. 유명했던 1988~1989년 국회 5공 청문회에 나온 전직 대통령 전두환과 당시 계엄사령관 등은 “1980년 5·18 당시 군 작전 문제에 관여한 적이 없다”고 허위 증언을 했다. 1989년에 열린 13대 문공위 청문회에서도 허문도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언론 통폐합이나 언론인 강제해직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진술하였다가 위증으로 고발당했다. 그 밖에도 국회 청문회에 나와 증언한 내용이 허위임이 발각된 사례는 일일이 들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도 청문회에 나온 증인들이 여전히 허위진술을 일삼는 건, 위증을 했다가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가 실제로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전두환과 허문도 역시 위증으로 고발되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수사기관 입장에서 보면 위증죄가 입증하기 까다로운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객관적 사실’과 다른 증언을 했다고 모두 위증으로 처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른 내용을 말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야 위증죄 성립이 가능하다. 그래서 위증으로 기소된 사람들은 “당시의 기억이 지금의 기억과 다르다”는 식의 궤변으로 혐의를 빠져나간다. ‘최순실을 몰랐다’고 버티다 위증으로 기소된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 역시 재판에서 “국회에서 답변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았고, 글씨도 읽기 어려운 힘든 상황이었다”며 자신이 고의로 허위진술을 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위증 자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가 사법 전반에 팽배해 있다는 사실인 듯하다. 일반 사법절차에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또는 지인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거짓말을 해도 이를 중대한 범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다 보니, 위증이 밝혀져도 80% 이상이 벌금형 정도의 관대한 처벌로 끝난다. 위증을 해도 처벌이 약하니 위증을 할 유인이 크고, 위증이 많다 보니 수사기관이나 법원은 증언을 잘 믿지 않으며, 증인이 거짓말을 해도 그러려니 하며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회에서든 일반 재판에서든 위증에 대한 처벌 기준을 높이자는 의견이 많다. 대법원도 최근 위증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벌 기준을 높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위증하면 처벌된다’는 선례를 확실히 만드는 일이다. ‘블랙리스트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최순실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다’고 말한 최경희 전 총장, ‘최순실을 데리고 청와대를 드나든 적이 없다’고 말한 이영선 행정관, ‘대통령을 시술한 적이 없다’고 말한 김영재 원장의 국회 증언을 많은 사람들이 생중계로 지켜봤다. 정작 이들이 위증죄로 처벌받지 않는다면, 위증죄 조문을 아무리 잘 정비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국정을 농단한 사람들이 청문회에 나와 또다시 국민을 농락하는 모습, 이제 그만 볼 때가 됐다. 정민영/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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