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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13 19:33 수정 : 2017.03.14 10:26

[동네변호사가 간다]

지난해 초 송전선 전자파의 문제점에 대한 보도가 있었는데, 공교롭게 내가 사는 서울 상계동 동네가 소개되었다. 마을 앞산 송전탑에서부터 154㎸의 고압 송전선로가 주택과 유치원 등이 이어진 주택가를 따라 지중화되어 있는데, 인근의 전자파 수치가 높다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송전선로를 지중화하면서 한전 쪽이 차폐시설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지하 1미터 정도 깊이로 얕게 매설한 것이 문제인데, 눈에 보이지 않으니 잘 모르고 지냈던 것이다. 전문가와 함께 측정해보니 지중화 선로 구간 좌우 길가와 주택에서 10에서 많게는 150mG(밀리가우스)가량의 전자파가 측정되었다. 통상 일상적 공간에서의 전자파가 2mG 내 수준인 걸 고려하면 꽤 높은 것이다.

외국에서는 전자파의 위험성에 대해서 예전부터 사회적 논의가 있었다. 전자파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백혈병 및 암발생률이 높아진다는 보고가 있고,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자파를 발암물질 2B그룹으로 분류한 바 있다. 여러 선진국에서 장시간 노출 기준으로 전자파 인체안전기준을 엄격히 정하고 있는데, 스웨덴은 2mG, 네덜란드는 아동의 노출 기준을 4mG 이하로 규정한다. 아직 위험성이 과학적으로 완전히 해명된 것은 아니지만 건강과 안전의 문제이므로 ‘사전 배려의 원칙’에 따라 미리 대처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다.

송전선의 설치, 관리자인 한전(한국전력)은 이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국내의 전자파 노출 기준보다 한참 낮은 수준이니 걱정 말라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한전은 녹음기를 틀듯이 그렇게 답했다. 외국과 굳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국내 기준은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한 것이다. 현재 국내 기준은 산업통상부 고시에서 833mG로 정하고 있는데, 원래 이 노출 기준은 전자파 단기노출 기준이어서 인체에 관한 장기노출 시의 위험 기준이 되기 어려운데도 무비판적으로 비현실적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평소 공동육아, 마을 북카페 등으로 소통해온 동네 주민들이 자연스레 모였다. 우리 아이들의 안전한 삶의 터전을 위해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의원,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한전 등에 민원을 넣고 근본적 대책 마련을 요구하였다. 구청은 신속하게 움직였고 두번에 걸쳐 일부 구간의 차폐 공사를 진행하였다. 기술적, 재정적 어려움과 공사 구간의 한정성으로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못했다. 전기 설비의 성격상 개별 지자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결국 한전이 움직이지 않으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우리가 한전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말은 한곳에서 공사 선례가 만들어지면 감당이 어렵다, 현재 전자파 기준이 문제가 있더라도 바뀌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전형적인 복지부동이 아닌가.

우리는 벽에 부딪혔다. 이게 어디 송전선 전자파 문제뿐이겠는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 스스로 움직이는 경우를 찾기가 어렵다. 그저 현행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당사자들이 민원을 많이 넣으라는 친절한 안내까지 한다.

전자파 문제는 우리 생활 속에 너무도 깊이 침투해 있다. 그로부터 생활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이제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국민이 가진 불안감에 비춰 보면 정부나 한전의 감각은 지금도 한참 뒤처져 있다. ‘국민의 건강권’이 아니라 ‘전기 산업 발전’을 더 중하게 보는 듯하다.

이런 문제를 소송으로 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 국내에서는 전자파 노출로 인한 피해에 대해 법원이 한전의 법적 책임을 인정한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반면 최근 프랑스에서는 전자파 과민증을 앓는 여성에 대하여 장애수당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서서히 사례가 늘어갈 것이고, 사회적 인식은 커질 것이며, 연구가 계속되면서 언젠간 한전이 피해자들에게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할 때가 올 수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한전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책임있는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송상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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