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2.27 20:37
수정 : 2017.02.27 21:26
[밥&법] 동네변호사가 간다
“변호사님 죄송해요.” 구치소에서 마주친 ㅂ씨는 고개를 숙였다. ㅂ씨는 아직 앳된 학생 티가 남은 아가씨다. 자신은 치기공과를 졸업하여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부모님과 명문대를 다니는 오빠가 있다. 겉으로 보기엔 전혀 부족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ㅂ씨는 반복적으로 인터넷 사기를 벌였다. 중고○○ 사이트에 인기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 표를 싸게 판다고 거짓말을 하고 돈만 받아 잠적하는 식으로 방법도 매번 같았다. 벌금형을 여러 차례 받았고 지난번 내가 변론한 재판 법정에서 분명 눈물까지 흘리며 한번만 선처해 준다면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다짐하고 겨우 집행유예로 풀려났었다.
6개월 뒤, 나는 구속된 ㅂ씨와 구치소에서 재회했다. 다시 인터넷 사기를 벌인 것이다. 지나치게 엄격한 아버지와 잘난 오빠 사이에서 스트레스가 심했던 ㅂ씨는 늘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안타까웠지만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정한 양형 기준상 실형이 불가피하고, 집행유예 기간 중 다시 범행을 한 것이라 유예 조건을 위반했기 때문에 집행이 유예됐던 지난 형량까지 합쳐 장기간의 교도소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나의 의뢰인 ㄱ씨. 그는 명문대 전자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녔지만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을 한다. ㄱ씨는 충동적으로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는 버릇이 있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자신도 모르게 대형마트에서 이어폰, 계산기 같은 전자제품을 숨겨 나오곤 했다. 이번에는 유에스비(USB)를 숨겨 나오다 절도죄로 고소당했다. 자신도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결국 ㄱ씨는 재판이 끝나면 정신과 진료를 받기로 했다.
사람들의 전과기록을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ㅂ씨나 ㄱ씨처럼 같은 종류의 전과가 반복된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은 음주운전을 반복한다. 폭력전과가 있는 사람은 폭행과 상해를, 마약류 범죄, 남을 속이는 사기류, 도박죄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이 아주 다른 형태의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재판들을 변론할 때면 형사정책학 초기 이론인 생래적 범죄인설이 떠오른다. 과거 19세기 이탈리아의 범죄학자 롬브로소는 생래적 범죄인설을 통해 범죄자는 원래 범죄자로 태어난다고 정의했다. 일반인과는 아예 다른 종족이라는 것이다. 롬브로소는 의사였다. 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시절 롬브로소는 수많은 범죄자의 뇌 뼈를 연구한 끝에 뇌 모양 자체가 다르다며 범죄자는 범죄자로 태어난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범죄자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분리하는 수밖에 없다. 즉 오래 구금하는 것이다. 참으로 말도 안 되는 19세기 구시대 이론이 아닐 수 없다.
현대의 법심리학은 범죄는 그 사람이 처한 사회 환경적 원인과 판사의 판결 성향에 대한 정보 등 여러 복합적인 심리가 작용해서 일어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형법은 범죄를 반복하는 피고인들에 대해 더 오래 구금하는 것을 주된 해결책으로 삼고 있다. 바로 ‘가중처벌’ 규정이다. 법에서 그 행동을 교정하라고 형벌을 부과했는데도 교화되지 않은 것에 대한 벌로 ‘상습’이라는 죄명을 두고서 양형 가중 요소로 삼는 것이다. 그 결과 피고인은 더 오래 구금된다. 어찌된 것이, 원인 분석은 다르게 하고도 해법은 또 구금과 분리라니. 동종 전과를 반복하는 많은 피고인을 보고 있으면 감옥생활이 진저리나게 싫다는 경험, 그것만으로는 별 효과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형벌이 아닌 심리적 치료가 더 필요하다.
롬브로소의 생래적 범죄자설은 역사의 뒷길로 사라졌다. 왜 같은 종류의 범죄를 반복하는 것일까. 범죄란 아프고 힘들 때 일탈행동으로 그것을 덮어버리는 것에 익숙해져서 그 이상행동이 반복되는데도 이겨낼 힘이 없는 ‘마음의 패배자’ 상태가 아닐지.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인 일탈행위로 해결해 버리는 상태 말이다. 범죄를 반복하는 피고인들에게는 이런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조수진/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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