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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1.23 19:33 수정 : 2017.01.23 21:04

[밥&법] 동네변호사가 간다

1950년 미국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는 어떤 종이를 들고서 “내 손에 205명의 이름이 적힌 명단이 있다. 공산당원이면서 국무성에서 일하고 있는 자들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로 인하여 수많은 예술가가 사상과 양심을 시험당하고 일자리를 빼앗겼다. 그가 몰고온 매카시즘은 몇 년 못 갔지만 대한민국에서는 40년 넘도록 매카시 노릇을 해온 사람이 있다.

김기춘이 드디어 구속되었다. 1974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부장을 시작으로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늘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그였다. 사찰과 공작정치, 고문 조작으로 범죄의 역사를 쌓고 국민의 인권을 짓밟아 왔지만 제대로 단죄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 그를 끝내 구속시킨 건 ‘블랙리스트’였다. 블랙리스트야말로 그가 벌여온 사찰과 공작정치의 본질을 보여준다.

블랙리스트의 사전적 의미는 ‘감시가 필요한 위험인물들의 명단’이라고 한다.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건 후 대통령의 지시로 김기춘은 청와대 비서실장 지위를 이용하여 청와대와 문체부를 조직적으로 움직여 1만여명에 이르는 위험인물 리스트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리고 전방위적으로 그들을 말 그대로 ‘쳐냈다’. 고 김영한 업무일지에는 “문화예술계의 좌파 각종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 등 그의 적나라한 지시가 써 있었다.

어떤 이는 정부가 명단을 작성한 게 그렇게 큰 문제냐고 묻는다. 과연 그럴까. 선거에서 누구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혹은 세월호에 대한 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지원 배제 명단에 올려놓고 작품을 못 올리게 하고 정부 지원에서 탈락시키며 각종 불이익을 주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행위다.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는 것 자체로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 인격권,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노골적으로 위반한 중대한 헌법 파괴행위에 해당한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블랙리스트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수십년간 사찰과 공작정치는 끊이지 않았고 블랙리스트는 계속 작성되어 왔다. 1970, 80년대에 당시 중앙정보부는 동일방직 노동조합 와해와 재취업 방해를 위해 조합원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관리·배포하였다. 1990년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가 민간인 1323명을 사찰하여 리스트를 작성·관리하고 있는 사실이 폭로되었고, 2009년에도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민간인을 사찰한 사실이 밝혀졌다. 피해자들이 국가배상청구를 하였고 법원은 블랙리스트 작성과 사찰이 국가의 불법행위임을 확인하고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였다.

그런데도 권력을 가진 자들은 어김없이 권한을 이용하여 국민의 정보를 취합하고 관리하려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니 블랙리스트는 지금도 이 나라 곳곳에 존재할 터이고, 김기춘이 사라져도 누군가는 계속 만들려고 할 수도 있다.

지금 광화문광장에서는 문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에 맞서 ‘블랙텐트’를 설치하고 농성을 하고 있다. 평소 법과는 거리가 있을 이들이 지난주부터 국가와 주동자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며 손해배상 집단소송을 시작하여 원고를 모집하고 있다. 이렇게 국가와 김기춘, 조윤선 등 주동자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묻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제발 이번이 우리가 기억하는 마지막 블랙리스트여야 한다.

송상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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