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2.12 20:45
수정 : 2016.12.13 10:22
동네변호사가 간다
“제발 우리 아들 치료감호 꼭 좀 보내주십시오.”
ㄱ씨 어머니는 내게 매달렸다. 금쪽같은 자식을 어머니가 오히려 치료감호소에 감금해 달라고 애원하다니.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을지 모르지만 저소득층 변론에서 이러한 일을 종종 겪었다. 정신질환이 있는데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돈도 없고 간병을 할 여력도 없으니 제발 더 큰 일에 휘말리기 전에 국가에서 구금치료라도 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치료감호 치료라도 받을 수 있는 피고인은 가뭄에 콩 나듯 드물다. 예산 부족 때문이다. ㄱ씨는 수년 전에는 가벼운 대인기피 증상을 보였지만 점점 악화되면서 이제는 동네 사람에게 이유 없이 부엌칼을 들이대기까지 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구치소에 가
ㄱ씨를 만나 왜 칼을 들었냐고 물어보니 그는 한껏 경계를 하다가 겨우 “나에게 계속 욕을 해요. 잠을 잘 수가 없어요”라고 했다.
이번에는
ㅁ씨의 이야기. ㅁ씨는 낮에 주로 지하철을 통해 거리를 배회하는데, 그러다가 지하철의 어느 여성을 선로로 밀어 넘어뜨려 사람들의 신고로 체포되었다.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만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역시 구치소에서 마주한
ㅁ씨는 이렇게 말했다.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계속 나를 쫓아다녀.” 그래서 검은 옷을 입은 지하철 승객을 선로로 떠민 것이다.
첫번째 사례는 특수협박죄이고 두번째는 상해죄다. 대부분 잠시 구금생활을 한 뒤 풀려난다. 그러나 형벌이 문제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하다. 중한 정신질환으로 인해 범행을 한 경우 형벌과 함께 구금치료를 선고하는 ‘치료감호’라는 제도가 있다. 국립법무병원인 공주치료감호소에서 구금치료를 받게 하고 그 기간만큼 형 집행을 대신하는 것이다. 절차는 형사재판 중에 검사가 청구해서 정신감정을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판사가 국립법무병원에 감금 치료하라는 치료감호 명령을 형벌과 같이 선고한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어지간히 중증 정신질환이나 흉악범죄가 아니고서는 검사가 청구를 잘 하지 않는다. 정신감정비용, 입원비용, 치료비용이 모두 국가 예산인데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근 신문기사에 의하면 국내 유일한 국립법무병원인 공주치료감호소 수용인원이 정원 900명에서 35%나 초과한 1200명인 과밀한 상태라 병상당 공간, 환자당 의료진 수 등이 의료법이 정한 기준에 미달한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위의
ㄱ씨나
ㅁ씨 정도의 정신질환으로는 아마 치료감호를 받지 않을 것이다.
정신질환자들은 교도소에서 일반 재소자들과 섞여 구금생활을 하면서 많은 문제에 맞닥뜨린다. 석방된 뒤에도 아무 대책 없이 다시 가난하고 고단한 가족의 곁으로 돌아간 피고인들은 계속 문제를 일으키는데, 가족들에게 정신질환을 앓는 피고인을 돌볼 겨를은 없다. 문제가 생길 경우 합의하여 줄 여력은 더더욱 없다. 변호인으로서, 돈이 있는 피고인은 진료와 보호를 받는데 그렇지 않은 피고인들은 정신질환으로 범행한 것인데도 치료도 받지 못하고 나아가 반복해서 범행을 하면서 가중처벌까지 받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지난해 정신질환 범죄자는 2800여명으로 전체 수용자의 5.3%나 된다. 5년 전보다 87%나 급증한 숫자라고 하니 삶이 그새 더 팍팍해진 탓인가 싶다. 마음속 원인이 해결되지 않은 피고인들은 나가서 다시 문제와 맞닥뜨릴 것이고 자신과 타인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크다. 국가 예산으로 미리 해결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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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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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중증과 경증의 경계에 있는 피고인의 경우, 병원 의료진이 부족하고 중증 환자들이 있는 치료감호소에 구금하는 것만이 해결책인지도 의문이다. 그동안 형사처벌 과정에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국가 지원은 중증인 경우에 감금해서 치료감호에 처하는 것뿐이었는데 마침 이달부터 ‘치료명령’이라는 제도가 신설됐다. 경증의 정신질환이 있는 경우 구금하지 않고 집행유예를 하면서 그 조건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을 것을 명령하는 것이다. 치료비용은 자비 부담이 원칙이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국가가 부담한다. 이 제도가 잘 활용되어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조수진/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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