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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03 23:04 수정 : 2016.10.11 11:54

[밥&법] “아시아 최초” 가맹점주 단결·단체교섭권 보장한 가맹사업법

“본사는 거대하고 조직돼 있잖아요? 반면에 우리는 흩어져 있는 동네 자영업자들이고. 이렇게 될 거라고는 처음엔 기대 못 했죠.”

지난달 30일, 경기도 광명시에서 만난 이창규씨는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사장님’이었다. 하지만 그의 명함에는 본죽 가맹점 사장들을 대표하는 본죽가맹점협의회 회장이라는 직함이 찍혀 있다. 2013년 오랜 기간 몸담은 회사를 퇴직하고 이곳에서 본죽 가맹점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런 길을 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본죽 본사는 지난해 체결한 상생협약을 성실히 이행해 프랜차이즈업계에서 상생협약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그 바탕에는 가맹점협의회의 오랜 노력이 있었다.

가맹점협의회가 처음 만들어진 건 2012년이었다. 당시 일부 매장의 비위생적 실태가 방송에 보도됐다. 이를 계기로 가맹점주들이 과도한 물류비 부담 같은 본사 횡포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때는 포털사이트에 카페를 개설한 소모임 수준이었다. 본사도 협의회를 협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공정위 제소도 준비했지만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런데 2015년 초 다시 한번 본사와 가맹점 사장님들의 갈등이 시작됐다. “지난해 초 본사 직원이 찾아와서 안 좋은 말을 하더라고요. 본사를 통해 식자재를 구매하는 비율이 적다는 거죠. 본사에서 대량구매를 해서 공급하면 더 싸야 하는데, 식당을 운영하는 내가 마트에서 장 보는 주부들보다 비싼 값에 물품을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죠.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어요.”

지난해 10월 이창규 본죽가맹점협의회장(오른쪽 셋째·당시 부회장)이 본죽 가맹본부 관계자 등과 함께 국회에서 상생협약을 체결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본사에서 구매하기로 지정된 핵심 식자재는 시장에서 사는 것보다 30%가량 비쌌고, 다른 식자재들도 20%가량 더 비싸 물류비 부담이 심했다. 또 계약 기간 10년이 만료되는 가맹점들을 상대로 매장 규모를 늘려 카페형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가맹을 해지하겠다고 위협했다. 가맹점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때부터 이씨는 가맹점협의회 활동을 시작했다.

본사는 대화를 하자는 가맹점주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계약 해지와 민형사 고소로 맞섰다. 하지만 상황은 과거와 달라져 있었다.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외 126명이 발의한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가맹사업법) 개정안이 2013년 7월 통과돼 2014년 2월부터 시행됐다. 신설된 가맹사업법 14조의 2는 “가맹사업자는 권익보호 및 경제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단체를 구성할 수 있고, 가맹본부에 대해 협의를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또 “협의를 요청받은 경우 가맹본부는 성실하게 협의에 응하여야 한다”는 의무 규정을 뒀다.

본죽가맹점협의회는 그해 5월 서울 영등포구 을살리기국민운동본부 사무실에서 90여명의 가맹점주가 참여한 가운데 창립총회를 열었다. 관할 세무서에 비영리법인 등록까지 마쳐 법적으로 인정받는 정식 단체가 됐다. 이씨는 부회장이 됐다. 그는 “개인사업자들이라고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았는데, 우리 스스로 단체를 구성하고 본사와 대등한 지위에서 대화할 수 있게 됐다”고 그날을 기억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본사도 계속 법을 무시할 수만은 없게 됐다. 그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본죽 대표이사가 증인으로 채택되는 상황에 이르자 결국 가맹점주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상생협약을 지난해 10월 체결하게 됐다. 상생협약에 따라, 10년차 가맹점에 대한 재계약을 보장하고 가맹점 인테리어 및 매장 양수·양도에 본사가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본사는 가맹점주들한테 걷은 판촉·광고비 집행 내역도 투명하게 공개하기로 약속했다. 또 식자재의 질을 본사가 체크하되, 핵심 식자재 외에는 본사 물품을 구매하도록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정종열 ‘길 가맹거래사무소’ 가맹거래사는 “가맹사업법 14조의 2는 경제 분야에서 민간사업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최초로 인정한 법”이라며 “자영업자들이 개별적으로 거대한 프랜차이즈 본사를 상대했을 때 발생하는 힘의 불균형과 갑을 관계를 바로잡는 출발점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미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가맹계약과 근로계약의 유사성을 인정하고 이들에게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인정하는 판례가 쌓이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한국이 최초 사례다.

미스터피자 가맹점주협의회가 본사를 상대로 지난해 8월 체결한 상생협약을 지킬 것을 요구하며 시위를 열고 있다.
아직 부족한 부분도 많다. 본죽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상생협약을 체결한 미스터피자 가맹점주들은 다시 거리에서 싸우고 있다. 미스터피자는 시중에서 7만원대에 구매할 수 있는 10㎏ 모차렐라 치즈를 9만원대에 공급하는 등 식자재에 대해 과도한 물류비를 챙겨왔다. 통신사 할인도 대부분 가맹점 부담으로 떠넘겨왔다. 미스터피자는 지난해 8월 물류비 인하, 광고·판촉비 내역 공개 등의 내용을 담은 상생협약을 체결했지만 가맹점주들은 본사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서울 서초구 본사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14년째 미스터피자 가맹점을 운영하는 김진우 미스터피자 가맹점주협의회장은 “현재로서는 본사가 상생협약을 지키지 않아도 아무런 처벌이나 제재를 받지 않아 이를 압박할 수단이 없다”고 했다. 김 회장은 “가맹점주들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이 도입된 것은 큰 진보다. 앞으로는 이것을 실효성 있는 제도로 만들기 위한 제재 수단을 도입하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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