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8.30 10:48
수정 : 2016.08.30 15:57
당시 1위 삼성·현대 아닌 성창기업
김무성 부친 김용주씨도 15위에
부동산을 많이 가진 기업이 살아남았다. <한겨레>가 정보공개 청구 및 행정소송을 통해 확보한 전두환 정부(4공화국) 시절 대기업 부동산 보유실태 조사 문건을 보니, 1980년 한국 부동산 부자 기업군 40개 가운데 22곳이 살아남아 경영을 지속하고 있었다. ‘부동산 불패’라는 표현에 근거가 있는 셈이다.
<한겨레>가 1981년 4월 국세청의 ‘부동산 대소유자 명단’에 나온 토지·건물 등 부동산 부자 기업군 리스트의 2016년 상황을 분석해보니, 부동산 부자 기업들의 몇 가지 특징이 눈에 띄었다. 이 명단은 국세청이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올린 ‘기업 소유 부동산 현황 분석 보고서’에 첨부된 자료다.
먼저 부동산 부자 기업이 오래간다는 사실이 재확인됐다. 1980년 부동산 부자 기업 40개 가운데 36년간 지속되고 있는 22개 기업그룹 중 8곳은 2015년 ‘자산 5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61개’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다른 8곳도 20위 이하에 위치했다. 나머지는 삼성·현대 등 재벌그룹이었다. 1980년 조사에서 부동산 보유 33위였던 대한전선그룹은 현재 구조조정 중이다.
1980년 조사 당시 약 1억2999만㎡(3939만평)의 토지와 건물을 보유해 2위 삼성과 3위 현대 등 재벌그룹을 제치고 부동산 부자 1위 기업으로 조사된 성창기업은 현재 ‘성창기업지주’로 성창보드 등 4개 종속회사를 거느린 기업이다. 당시 성창이 보유한 부동산 면적은 여의도 면적(290만㎡)의 약 45배에 해당한다.
1916년 정태성씨가 창업한 성창기업은 지주회사와 계열사를 합쳐 지난해 약 1773억원의 매출액을 올렸고 목재산업을 통해 성장했다. 사업보고서를 보면, 정태성씨의 아들 정해린씨, 3세인 정연오씨 등 가족과 친인척이 28.9%의 지분을 갖고 있다. 창업자 정태성씨가 1982년 부산외국어대학교를 창립해, 정해린씨가 현재 이 대학 총장이다.
1980년 조사 때 약 4108만㎡(1245만평)의 부동산을 보유해 6위를 기록한 봉명은 2002년 아세아시멘트로 이름을 바꿨다. 이훈범 현 아세아시멘트 대표이사는 창업자 이동녕씨의 3세다. 가족·친인척 등 특수관계인 지분이 61.11%다.
둘째 전문경영인보다 2·3세가 경영을 세습받는 한국 기업들의 특징이 재확인됐다. 현재도 존속한 22곳 가운데 15곳의 기업그룹에서 창업자의 3세가 경영에 참여하거나 책임지고 있었다. 한때 경영을 책임졌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경영에서 물러난 설윤석 전 대한전선 사장을 포함하면 3세에게 경영권이 세습된 기업군은 16곳이다. 2세가 경영진에 있거나 책임자인 기업군은 5곳이었다.
박정희·전두환 정부는 기업이 사놓고 당장 사업에 쓰지 않는 땅을 ‘비업무용 부동산’으로 규정해 중과세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생존한 기업군 22곳 가운데 당시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는 1위 효성, 2위 현대, 3위 동양화학(현 오씨아이) 순서였다. 다만 비업무용 부동산의 판단 기준을 두고 정부와 기업 사이에 다툼이 있었고 훗날 일부 토지는 업무용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의 아버지 김용주씨가 창업한 ‘전방’(옛 전남방직)은 1980년 부동산 보유 15위 기업군으로 등장했다. 당시 정부는 미신고 부동산의 차명 보유 여부를 심층 조사했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비공개 대통령기록물도 생산된 뒤 30년이 지나면 원칙적으로 공개된다. 다만 재심사를 통해 다시 비공개로 지정될 수 있다. <한겨레>는 지난해 8월 대통령기록관을 상대로 이 문건을 포함한 전두환 대통령 기록물 61건을 공개하라고 요청했으나 대통령기록관은 ‘기업 및 기업인 소유 부동산 조사 결과 보고서’에서 부동산 대소유자 기업군 40개 이름·면적·가액 등 핵심 정보를 전부 가린 채 문서 일부만 공개했다. <한겨레>는 이에 불복해 행정심판을 청구했고 요구가 일부 받아들여져, 올해 5월 대통령기록관으로부터 문서 전체를 공개받았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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