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8.01 19:47
수정 : 2016.08.01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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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법] 동네변호사가 간다
용산화상경마장 이전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투쟁이 1000일을 넘긴 지 오래다. 애초 용산역 왼편에 있던 것을 지금의 전자상가 인근으로 옮겼다. 문제는 이곳이 학교와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이라는 것이다. 화상경마장은 경주마만 안 달릴 뿐 돈을 걸고 도박을 하는 곳이니 도박장이라 불러도 전혀 틀리지 않는다. 도박장만 문제가 아니다. 경마가 끝나고 돈을 잃은 사람들은 고성방가에 노상방뇨를 일삼는다. 술에 취하여 서로 싸우고 거리에서 잠을 잔다. 끔찍하고 공포스럽다. 현명관 마사회장을 포함한 누구라도 자신의 집 앞에 혹은 자신의 아들딸이 다니는 학교 앞에 화상경마장이 들어선다면 결단코 반대할 것이다. 그런데도 마사회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화상경마장 이전은 합법이라는 것이 이유다. 합법적 영업을 주민들이 반대하는 것이니 주민들은 불법이라는 함의가 깔려 있다. 마사회가 주장하는 합법이라는 말 속에서 대한민국의 법치가 얼마나 왜곡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법은 원래 지배의 수단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배자도 법에 기속되어야 한다는 법치주의 사상으로 이어졌다. 법 앞에 평등이라는 말은 그런 사조를 반영한다. 이제 법은 통치의 수단인 동시에 통치를 통제하는 원리로 격상된 것이다. 통치를 통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주주의 사상과 인권의 발전에 따라 권력자의 통치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억압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법치의 목적은 그저 통치의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통치를 통제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법치라는 말의 법은 정의롭고 좋은 법이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마사회가 말하는 합법의 법은 과연 정의롭고 좋은 법인가? 주거지역, 교육시설이 밀집한 지역에서 3년 넘게 도박장을 개장하도록 용인하는 대한민국의 법 체계가 정상인가? 학교보건법상 도박장 같은 유해시설은 학교 경계로부터 200m 안에 있는 경우 규제의 대상이 된다. 용산화상경마장은 성심여중고 경계로부터 215m 떨어져 있다. 15m를 넘긴 것이다. 마사회가 합법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다. 실정법의 규범력이 관철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법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실정법의 규율이 명백히 불합리할 때에 법은 바뀌어야 한다. 명백히 불합리하다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경마를 포함한 사행시설을 통합감독하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는 정기적으로 ‘사행산업건전발전종합계획’을 작성한다. 이 중 마사회가 지금의 부지로 용산화상경마장 이전을 추진하던 2008년치를 보면, “장외발매소(화상경마장을 지칭한다)의 사회적 폐해 등을 고려, 영업장의 생활밀집지역과의 격리”, 장외발매소 설치 허가조건 강화의 하나로 “기초 자치단체, 지방의회, 지역주민 동의 법제화”를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마사회는 지금의 학교,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에 도박장을 이전했다. 나아가 3년 이상을 모르쇠로 영업하고 있다. ‘합법’적으로 말이다. 그 ‘합법’에 맞선다는 이유로 지역주민, 성심여중고 선생님들은 불법이라는 딱지를 왕창 선물받았다. 마사회로부터 온갖 고소, 고발이 이어졌고, 형사재판에 회부된 분도 있다. 성심여중고 교장 김율옥 수녀는 학생들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종북의 딱지까지 선물받았다. 7월16일 박원순 시장은 주민대책위에 보낸 격려메시지에서 “명색이 서울시장인데 용산 경마장 하나 못 막아낸다”면서 자책감을 토로했다.
누구나 법치를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틈만 나면 법치를 강조한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법치는 국민들이 떼쓰지 말고 있는 법 잘 지키라는 것이다. 앞서 봤듯 이건 법치가 아니다. 사이비다. 사이비 법치를 내세우는 마사회, 이를 방관하는 박근혜 정부와 국회 앞에서 진짜 법치는 죽어가고 있다. 화상경마장 이전으로 주민들의 삶의 기반과 교육환경도 따라서 죽어가고 있다.
이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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