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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26 10:11 수정 : 2016.07.26 13:27

[밥&법] 동네변호사가 간다

청년실업이 무섭다. 지난달 청년실업률은 10.3%로 17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취업률이 70%가 넘는 30·40대에 비하면 15~29살 청년층의 현실은 너무나 참담하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말처럼 우리 사회에서 ‘사다리’가 사라졌다.

나의 의뢰인 군은 보이스피싱 조직의 전화 조직원이었다. 중국 칭다오의 허름한 공장형 건물에서 팀장의 지시에 따라 한국에서 빼내온 전화번호에 무작위로 전화를 해서 “○○경찰서 사이버수사대 △△△ 경장입니다. 고객님의 금융정보가 유출되었으니 지금부터 지시대로 따라주십시오”로 시작되는 대본을 읽었다. 사람들은 신뢰감 있는 그의 목소리에 속아 그가 안내한 대포통장으로 돈을 이체했고, 그 돈은 주로 한국의 노숙자 인출책들이 일당 10만원을 받고 뽑아 환치기책에게 건네준다. 돈은 환치기를 통해 중국 어딘가로 사라지면 찾지 못한다. ㅎ군에게 떨어지는 이익은 이체된 금액의 4%.

몇 년 전만 해도 중국의 전화 조직원은 주로 조선족이 담당했고, 그 배후로 조폭이 되지 못한 한국인 ‘동네 양아치’들이 잡혀 들어왔다. ㅎ군은 좀 달랐다. 아무런 형사 전과나 소년범 전력이 없었고 눈이 맑아서 그냥 ‘아는 동생’ 같았다. 구치소에서 만난 그는 말없이 닭똥 같은 눈물만 흘렸다. 내 사무실로 찾아온 군의 어머니는 장애인이었고 말과 거동이 불편했다. ㅎ군은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역 4년제 대학을 나왔지만 취업이 좀처럼 안 됐다. 어머니는 아파서 거의 누워 있는 날이 많았다. 남동생은 입 하나 덜겠다고 군대에 갔다.

취업을 알아보며 동네 일용직으로 일을 하던 어느 날, 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솔깃한 광고가 쪽지로 날아왔다. “중국 공장 취업. 월 400만원 보장. 관광과 취업, 어학을 한번에!” 전화를 걸었고 여권 사본과 주민등록등본을 보내게 되었다. 중국으로 출발하는 전날, 그는 비로소 그 일이 보이스피싱 관련 일임을 짐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민등록등본까지 노출된 마당에 두려워서 안 갈 수 없었다. 공항에서 모르는 청년들과 함께 중국 숙소에 도착하자, 그에게 돌아온 것은 발길질과 협박, 여권 압수였다. 그들은 군이 전화 조직원 일을 하겠다고 할 때까지 가둬두었다. 나중에는 ‘그래, 이렇게라도 5000만원만 벌어 집에 가면 포장마차를 차릴 수 있다’ 싶어 자포자기해 버렸다고 한다. 일을 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껴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종종 공동숙소에 누워 눈물을 흘렸단다. 떴다방처럼 생겼다 사라지는 전화 조직은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그를 한국으로 보내주었다.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수사망을 피할 수는 없었다.

군의 재판 날 검사는 징역 5년을 구형했고, 그의 어머니는 법정 방청석에서 목 놓아 울었다. 그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보이스피싱 피해는 늘어만 가고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중형을 선고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군이 취업이 되었더라면, 아니 창업이든 그 무엇이라도 가족을 부양할 길이 있었더라면, 그의 인생이 이렇게 멀리 와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1997년 아이엠에프 사태의 직격탄을 맞았지만 그래도 취업이 되던 시절의 마지막 세대였다. 대학을 나오면 그래도 두어 곳 취업이 되었고 실업계 고교를 선택한 친구들도 은행에 취업해 부지런히 적금을 부었더랬다. 근면성실하면 차를 사고 집도 샀다. 올라갈 사다리도, 일자리도, 집도 차도 사라진 청년들에게 2016년은 상실의 시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원인이 청년실업 문제를 점점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법인세 감세 혜택을 받고서도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지 않는 대기업, 불공정 거래 관행으로 인해 성장하지 못해 직원을 뽑을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 청년 창업을 하기에는 실패할 경우 바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빈약한 우리의 복지제도가 그것이다. 이것은 군이 아무리 성실히 노력한다고 해서 개선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해결은 정부가 해야 한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2016년도 고용노동정책 방향을 보면, 청년 일자리 창출을 중점적으로 한다면서도 그동안 9차례나 발표한 청년실업 대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간 제2, 제3의 ㅎ군이 또 나올 것 같다. 조수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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