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6.27 22:52 수정 : 2016.07.05 11:03

[밥&법] 동네 변호사가 간다
서울 번화가 가게지만 매해 보증금 한숨
새 건물주가 구석 자리로 밀어내기까지
상가임대차보호법 도심선 무용지물 일쑤

정씨는 요즘 한숨이 늘었다. 멍하니 앉아 있는 일도 생겼다. 정씨는 지금 서울지방법원에서 사기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 경찰서 문턱에도 가본 일이 없던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정씨는 서울 번화가에서 금은방을 운영한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올망졸망한 남매를 키우며 가게를 지켜온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조금씩 늘어난 빚이 어느새 억대를 넘어섰다. 돈을 빌려준 지인들이 참다못해 고소를 했고 그는 법정에 서야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남편이 홀연히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부터인가, 2008년 이후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금은방을 찾는 손님들이 뜸해졌을 때부터였나.

5년 전부터 건물주는 임대차 계약이 만료될 때마다 건물 가격이 올랐다며 정씨에게 보증금과 월세를 각각 100만원씩 올려달라고 했다. 아니면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답답한 마음에 변호사들에게 물어보았지만 별 방법이 없다고들 했다. 보증금과 월세가 비싼 지역이라 상가임대차보호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장사는 잘되는 편이었지만, 수입은 점점 줄어들었다. 겉보기엔 번듯한 금은방 사장님으로 화려했지만, 수면 아래서는 끊임없이 발길질하는 백조처럼 힘만 들고 남는 것이 없었다. 건물주를 위해 장사를 하는 건지, 내 장사를 하는 건지 가끔 헷갈렸다. 그는 생각했다. ‘월세가 계속 오르면 어쩌지.’ 잠을 줄여가며 더 오래 장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3년 전 건물 주인이 바뀌었다. 새 주인은 건물 전체를 리모델링하겠다며 금은방 가게를 없애고 그 자리에 문을 내겠다고 했다. 정씨에겐 건물 안쪽 다른 자리로 가게를 옮기라고 했다. 금은방은 5층 건물 입구에 있어 목이 꽤 좋았다. 그는 매일 아침 금은방 앞 건물 입구를 반짝반짝 쓸고 닦았었다. 마치 자기 건물이라도 되는 듯. 8년간 가꿔온 가게 터를 비워주고 건물 안쪽 가게로 옮겨야 했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8년을 여기서 장사를 했는데 내게는 왜 아무런 권리가 없는 걸까.’ 가게를 옮긴 뒤 장사가 잘 안되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조금씩 돈을 얻어썼다. 보증금을 다 까먹은 그는 조만간 가게도 비워줘야 한다. 법원에서 선임해 준 국선변호인은 갚지 못한 돈이 1억원이 넘어서 실형을 받을 수도 있다며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있지만 지금 법 내용으로는 그를 보호해 주지 못한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5년간 재계약을 보장한다. 재계약 때 건물주가 올릴 수 있는 보증금과 월세도 9%로 제한하고 있다. 그렇지만 주택임대차보호법과는 다르게 상가는 보증금과 월세가 비싸면 보호해 주지 않는다. 서울 같은 대도시의 경우 적용받지 못하기 일쑤다. 임대차 관계를 둘러싸고 분쟁이 심한 주요 도심과 부도심 지역의 상가는 적용받지 못한다. 보호 범위는 도심 지역 상가 건물 가격 상승세에 비해 비현실적으로 낮다. 정씨처럼 장사가 잘돼서 상권 가치가 높아지면 상인들은 도리어 건물주가 월세를 올릴까 무섭다. 등기부에 인쇄된 소유권만이 절대 권리인가. 실제 그 건물에서 살 비비며 오래 장사하고 건물 가치를 높인 상인의 점유권도 보호되어야 상식적이다. 법은 상식의 실현이 아닌가.

연일 대기업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몰아친다고 해서 쓸쓸하다. 한창나이에 해고당하는 아빠들의 정착지도 결국 자영업, 상인이다. 지금도 두 집 건너 한 집은 장사를 하고, 우리나라 전체 노동인구 중 자영업자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월등히 높다고 한다. 정씨와 같은 사례는 흔하다. 신촌에서 홍대에서, 제2 제3의 정씨는 치솟는 상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장사가 잘되는 가게를 버리고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를 겪는다고 한다. 상인이 마음 놓고 장사할 수 있도록 법이 따뜻하게 보호해 줄 수는 없는 것일까. 죄가 없는 정씨의 재판을 변론하면서 변호인은 도대체 누가 죄를 지은 것인지 가릴 수 없고, 더 해줄 것도 없어 그저 을씨년스럽다.

조수진 변호사

(없는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관심이 많은 동네 변호사입니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밥&법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