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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09 18:40 수정 : 2018.04.09 19:04

김규식 (1881~1950)

1919년 4월10일, 상하이 임시정부 사람들이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정하다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1919년 4월10일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을 정한 날. 4월11일 또는 13일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정확한 날짜는 논란이 있다). 3·1운동으로 세상이 들썩이던 무렵이었다. 이 일을 해낸 사람은 상하이에 모인 수십명의 운동가. 이분들 중 여운형과 김규식에 나는 눈길이 간다.

김규식은 미국에 유학한 영문학자였다. 병치레로 늘 아팠지만 운동에 열심이었다. 훗날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냈다. 해방 후에는 중도우파로서 좌우합작운동에 나섰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납북.

내가 김규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음 일화 때문이다. 임시정부 요인들이 귀국한 직후의 일. 전설적인 노장 운동가를 만나고 청년들은 흥분했다. 손가락을 깨물어 충성을 다짐하는 혈서를 쓰겠다고 했다. 그런데 김규식은 반기는 대신 “왜 일본 사람한테 배운 짓을 하느냐”며 말렸다는 것(강원용의 회고). 젊은이를 꼬드겨 행동대원으로 써먹던 정치풍토에, 이런 어른은 귀하고 고맙다. 반면 이렇게 점잖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현실정치에서 버티기 힘들었으리란 시각도. 하물며 당시는 정치테러가 난무하던 해방공간이었으니.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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