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5.04 20:47
수정 : 2017.05.04 22:04
하란사(1872~1919) 또는 김란사
1909년 5월5일, <황성신문>에 소개된 조선의 여성 교육자
교육을 받고 싶었다. 이화학당을 찾았으나 기혼여성은 받지 않는다며 거절. 교장의 면전에서 등잔불을 꺼버렸다. “내 인생이 이렇게 컴컴합니다. 빛을 찾을 기회를 주십시오.” 하란사의 인생에는 이렇듯 멋지고 거침없는 장면이 많다.
이화학당을 졸업한 후 미국으로 유학. 원래 김씨였으나 미국 관행대로 남편 하상기의 성을 따 ‘하란사’라는 이름을 썼다. 웨슬리언 대학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 미국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것은 남녀 통틀어 자비유학으로는 최초라고. 돌아와 이화학당의 교수가 된다.
<황성신문> 1909년 5월5일자 2면에는 ‘환영회 성황’이라는 기사가 있다. 대한제국 황실에서 여성교육에 앞장서는 하란사, 윤정원, 박에스터 세 사람을 경희궁에 불러 격려하는 행사를 치렀다는 것. 하란사는 나중에 독립운동에도 참여한다. 1919년 비밀임무를 띠고 출국했다가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일본 측에서 독살했다는 의혹이 있다.
한동안 잊혔다. 기생 출신이라거나 하씨 집안의 첩이라거나, 잘못된 정보도 돌았다. 1995년 건국훈장을 받으며 재조명. 남동생 후손의 증언으로 새로운 사실도 확인되었다. 이 당차고 늠름한 여성에 대해 아직도 궁금한 점이 많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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