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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28 11:57 수정 : 2017.03.28 19:06

왜 당신은 ‘우리’라고 말하는가

1941년 3월28일, 버지니아 울프가 세상을 뜨다

■ 버지니아 울프(1882~1941), <자기만의 방>과 <3기니>

같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인데도 차별이 존재한다. 여학생이 머무는 뉴넘칼리지보다 남학생이 쓰는 시설이 좋다는 것. 에세이 <자기만의 방>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 글을 읽고 나는 ‘뉴넘칼리지는 시설이 별로겠네’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천만의 말씀이었다. 케임브리지에 갔다가 나는 놀랐다. 담 너머로 본 뉴넘칼리지가 넓고 근사해서였다. 어지간한 한국의 대학보다 좋아 보였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주장할지도 모른다. “울프의 글은 (좋은 환경에서 나고 자란) 여성의 처지를 반영할 뿐, ‘보편적인 인간’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고 말이다.

오해 마시길. 나는 울프가 틀렸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별 고민 없이 남성은 묻는다, “세계 평화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라고. 울프는 날카롭게 되묻는다. “왜 ‘우리’라고 말하는가? 당신(남성)은 당신이고, 나(여성)는 나인데.” 에세이 <3기니>의 첫머리다. ‘보편적 인간’이란 남성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닐까. 현실 속 한 사람 한 사람은 각자 저마다의 처지가 있다. 뼈아픈 지적이다. 남성이 대신 말해주지 않아도 여성은 여성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다. 나도 여기서 입을 다물어야겠다.

김태권 만화가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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