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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14 18:28 수정 : 2017.03.14 19:28

혁명이 일어났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960년 대선. 야당 후보 조병옥이 선거 직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자유당은 안심할 수 없었다. 부통령 후보 이기붕이 워낙 인기가 없었기 때문. 부정선거로라도 당선시켜야 했다. 이 일을 맡은 사람이 내무장관 최인규. 선거 전부터 관변단체를 동원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3월15일은 투표일 당일. 유권자의 40%에 해당하는 표를 미리 기표했다(4할 사전투표). 자유당 완장을 찬 사람이 돌아다녔고 야당 참관인은 사소한 빌미로 내쫓겼다. 조를 짜서 투표소에 들여보내 서로 감시하게 했다(공개투표). 노골적인 부정선거에 시민은 분노. 마산에서는 시위대와 경찰이 유혈 충돌을 일으켰다.

최인규는 “대단히 ‘피스풀’한 선거”라며 태연한 척했으나 실제로는 당황하여 긴급회의를 개최. 대책이랍시고 나온 방법이 ‘이기붕 표를 줄여서 발표’하는 것. 사태가 수습될 리 없었다.

이날 실종된 김주열 학생이 4월11일에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된다. 그가 최루탄에 맞아 숨지자 경찰이 시신에 돌을 묶어 바다에 던졌던 것.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온 국민이 들고일어났다. 부정선거의 끝은 혁명이었다. 이승만은 쫓겨나고 이기붕은 자살. 최인규는 이듬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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