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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2.09 19:22 수정 : 2017.02.09 22:25

일러스트 오금택

육백년 버텼으나, 방화범의 어떤 화풀이를 피하지 못하다

일러스트 오금택

태조 이성계 시절, 1396년에 짓기 시작해 1398년에 완성. 현판을 태종의 아들 양녕대군이 썼다고 한다. 그 동생 세종대왕이 임금이 되어 숭례문을 고쳐지었다. 이후로 숱한 변란에도 상하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도 멀쩡했다. 일본에 국권이 넘어갈 무렵, 숭례문 주위의 서울 성곽을 헐었다(1907년). 그래도 문은 남았다. (1592년 한양 함락 때 가토 기요마사가 입성한 문이라서 철거를 피했다는 연구가 있다.) 한국전쟁 때도 무사. 목조건물이 육백년을 버티다니 대단한 일이다.

2008년 2월10일 불에 타 다음날 아침 잔해만 남은 숭례문의 모습.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2008년 2월10일 밤에는 무사하지 못했다. 방화 때문에 무너져 버렸다. 불이 난 사실도 늦게 알았고, 불을 끄는 일도 서툴렀다. 예산 부족 때문에 일어난 인재라는 평가도. 채종기 노인이 불을 지른 동기가 황당하다. 택지 개발로 자기 땅을 팔게 되었는데 보상금이 원하는 액수에 미치지 않아 화가 났다나. 개발, 부동산, 돈, 세상을 향한 분노. 한국사회를 압축해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복원과정도 말썽이 많았다. 단청이 벗겨지고 기둥이 갈라지기도 했다. 시간을 들여서라도 천천히 복원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다고 옛날 건물이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글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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