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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06 19:00 수정 : 2016.10.06 21:40

마오쩌둥 다음 대권, 그의 짧았던 시간을 아십니까?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화궈펑, 그의 이름이 생소하다. 그래도 한때 중국의 1인자였다. 본명은 쑤주. 1940년대에 일본 침략에 반대하는 게릴라 전쟁에 참여하며 화궈펑이라는 가명을 썼다. 한국식으로 읽으면 ‘화국봉’인데, ‘중화구국선봉’에서 딴 이름이란다. 마오쩌둥의 심복이었고, 1976년에 그가 죽자 대권을 넘겨받았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사인방’의 숙청. 문화대혁명을 주도한 장칭 등 네 사람을, 당시 사람들은 몹시 미워했더랬다. 10월6일 밤에 사인방이 전격 체포되고 다음날 10월7일부터 화궈펑의 시대가 열렸다.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권력을 잡은 시간은 짧았다. 경쟁자 덩샤오핑은 경력도 실력도 화궈펑을 능가했다. 문화대혁명 때 모질게 탄압받은 일도 이제는 덩샤오핑의 정치적 자산이었다. 반면 그 시절 권력의 요직에 있던 화궈펑은 ‘사인방은 잡아넣되 문화대혁명은 계승하자’는 둥, 과거사 청산에 영 어정쩡했다. 1978년 즈음에는 실권을 잃고 이름만 번듯한 자리로 밀려난다.

대권을 누린 시간은 불과 2년 안팎. 그 짧은 시간에도 ‘우상화 사업’이 요란했다. “영명한 화 주석의 영도로 승리 전진”이니 “화 주석과 우리는 마음이 하나” 따위 낯간지러운 글귀의 포스터만 잔뜩 남았다. 아이고, 부질없구나.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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