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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05 19:03 수정 : 2016.10.05 21:59

안타까웠던 어느 중도좌파 지식인의 죽음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대구는 “극동의 모스크바”로,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20세기 초 평양과 서북지역이 기독교 운동의 중심이었고, 1930년대 대구와 경상북도 지역에 사회주의자가 많았다는 뜻이다. 지금과 다르다. 한 세기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독립운동가 박상희. 경상북도 지역의 내로라하던 중도 좌파 인사였다. 좌우합작 노선의 신간회에서 간부를 맡았고, 1930년대에는 언론 운동을 했다. 해방 직후에는 구미에서 ‘건국준비위원회’를 이끌었다. 1946년 10월1일, 대구 사람들이 봉기를 일으켰다. 경상북도 곳곳에서 경찰과 시민이 충돌하여 피를 흘렸다. 구미 지역은 피해가 적었는데, 박상희가 중재에 노력한 덕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10월6일, 진압 경찰의 총에 맞아 박상희 역시 피살되었고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박정희가 그의 친동생이고 김종필이 사위다. 1963년에 박정희의 이름으로 나온 책이 <국가와 혁명과 나>. 눈썰미 좋은 독자라면 이 책 구석구석에서 좌파 이념의 흔적을 발견할 것이다. 혹시 박상희의 영향은 아닐까,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또 하나의 운동가, 박상희의 정치적 동지였던 황태성을 다루며 이 문제를 더 이야기하고 싶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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