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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9.22 18:59 수정 : 2016.09.22 21:31

그의 체포,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시작

일러스트 오금택
지학순은 강원도 원주의 주교였다. 지역을 위한 사회사업에 열심이었다. 그러다 보니 부패한 토호 세력과 마찰을 빚었고, 박정희 정권과도 부딪쳤다. 1974년 7월6일 바티칸에서 돌아온 지 주교를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김포공항까지 쫓아와 잡아갔다. 반정부인사였던 김지하 시인을 도왔다는 혐의였다. 8월12일부터 지 주교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그러자 가톨릭 사제들이 집단행동에 나섰다. 9월23일 원주에 사제 300여명이 모였다. <평화신문>에 따르면, 당시 “한국 교회에서 사제들 3분의 1 이상이 대거 참여한 셈”이었단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시작이었다. 이튿날 사제단 결성을 결의하고 26일에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활동은 계속되었다. 정권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1975년 2월17일에 지 주교를 석방한다.

1974년 지학순 주교가 서울 명동성당에서 유신정권을 비판하는 양심선언을 하고 있다. 지 주교의 양심선언은 명동성당이 민주화운동의 성소로 탈바꿈하는 전기가 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그다음은? 1980년대 이후로는 지 주교의 사회적 발언이 줄어든 것 같아 아쉽다는 의견도 있지만, 보기 나름일 것이다. 1990년대를 지나며 김지하 시인은 전향을 선언했는데 변절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 박정희 정권은 1970년대를 못 넘겼다. 그렇게 무너질 것을 왜 그리 모질게 굴었을까. 그리고 정의구현사제단은 여전히 활발히 활동 중이다.

글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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