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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9.08 18:54 수정 : 2016.09.08 21:54

남침에 책임이 없는가? 정말 미국 간첩인가?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1948년 9월9일은 북한 정부가 수립된 날이다. 김일성은 부수상 자리를 김책과 홍명희와 박헌영에게 나눠주었다. 김책은 유격대 시절부터 김의 심복이었고 홍명희는 정치판에 발들인 지 얼마 안 된 소설가였다. 박헌영만이 김을 능가하는 경력을 쌓아왔으니, 박의 숙청은 정해진 수순이 아니었을까 싶다.

일제 강점기 박헌영은 이름난 독립운동가였다. 1925년부터 27년까지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 동료들은 목숨을 잃었고 겨우 살아남은 박헌영 역시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 그런데 1928년 병보석 중에 감시가 소홀해지자 해외로 탈출한다. 이후로 나라 안팎을 넘나들고 감옥을 들락날락하며 사회주의 운동을 펼친다. 이때 숨을 거뒀다면 우리는 박을 신출귀몰한 독립운동가로 멋있게만 기억했으리라.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해방 후에는 실망스러운 모습의 연속이었다. 해방 공간에서 갈팡질팡하던 박의 행보는 좌우합작에 큰 걸림돌이었다. 1948년 북한에 눌러앉은 다음의 행적도 논란거리다. 박이 남침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박이 미국의 지령을 받아 전쟁을 부추겼다’는 북한 쪽 주장을 따를 수는 없지만 말이다. 아무려나 박헌영은 현재 남에서도 북에서도 언급하기 불편한 이름이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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