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8월9일, 베를린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손기정과 남승룡이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땄다. 일본 대표팀에서 축하 파티를 마련했으나 손기정 일행은 참석하지 않았다. 조선 사람끼리 몰래 모여 우승을 축하했던 것이다. 두부공장 벽에 태극기까지 걸고 행사를 마련한 사람은 독일 교민 안봉근. 안중근 의사의 사촌 동생이었다.
알파포토스 제공
조선의 반응은 뜨거웠다. “목이 터지게 외치는 ‘손기정 만세!’ 소리는 기미년 독립 만세 소리에 방불한 바 있었다.” 당시 동아일보 이길용 기자의 회고다. 8월13일에는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 지방판이 함께 일장기를 지운 손기정의 사진을 실었다. 이때는 사진이 흐릿하겠거니 총독부도 그냥 넘어갔는데, 8월25일에 동아일보에서 다시 한 번 일장기를 말소하자 난리가 났다. 동아일보는 무기정간, 여운형이 사장으로 있던 조선중앙일보는 결국 폐간했다.
청년 손기정의 결기도 대단했던 것 같다. “사상범으로 찍혀도 별수 없지”라고 사석에서 내뱉었다거나 독립운동가 여운형과 친하게 지낸 사실을 보면 말이다. 그런 그도 공안기관의 감시에 시달려 마라톤을 그만두었다. 88년 서울올림픽의 성화 봉송주자로 수십년 만에 트랙을 밟으며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글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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