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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06 19:59 수정 : 2016.07.06 22:11

중일전쟁 방아쇠 당긴 ’무모함의 화신’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1937년 7월7일 일본군 장교 무타구치 렌야의 무책임한 결정이 중일전쟁으로 번지고 말았다. 전날부터 일본군 1개 대대가 루거우차오(노구교) 동북쪽의 중국군 지역에 들어가 사격 훈련을 했는데, 이날 밤에 훈련을 마친 뒤 총소리가 났고 급히 점호를 해보니 병사 한 명이 모자랐다.

어찌 된 일일까. 일본군은 중국군이 발포했다고 주장했고, 중국군은 총 쏜 적 없다며 펄쩍 뛰었다. 옥신각신하던 중에 실종됐다던 병사도 멀쩡히 돌아왔다. 처음부터 별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때 연대장 무타구치의 전화가 왔다. “당장 공격해버려!” 8일 새벽 대대장은 명령대로 대포를 쐈고,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중일전쟁이 시작되었다.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무타구치는 왜 그랬을까. 당시 일본군에는 ‘일단 저질러 놓으면 어떻게든 이기겠지’라는 이상한 신념이 퍼졌던 것 같다. 비뚤어진 애국심이 “하면 된다”는 사이비 종교로 변한 셈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만주사변과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터뜨린 것이다. 무타구치는 1944년에 변변한 준비도 없이 인도 땅 임팔로 쳐들어갔다가 3개 사단이 괴멸하며 크게 패배한다. 일본에서는 무타구치의 뻔뻔함과 무능함이 오늘날까지 화제지만, 그것이 무타구치만의 문제였을까?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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